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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Nov 19. 2023

브런치는 너무 어려워

작가의 서랍이 가득 찼다.


예전부터 하던 생각인데 브런치는 참 어려운 것 같다. 내가 쓴 글들을 나중에 꼭 브런치북으로 모아야 할 것 같다는 강박감과 브런치북을 위해서는 한 가지 주제로만 글을 써야 할 것만 같은 이상한 목표의식. 그래서 글을 열심히 쓰다가도 한참을 쓰지 않게 됐다.

'어제 쓴 글과 다른 주제의 글을 올려도 되는 걸까?' 매일 의문이 들었고, 점점 발행하지 않은 글들이 작가의 서랍에 가득 차기 시작했다.


좀 전에 작가의 서랍에서 발행하지 못했던 글들을 읽어보니 참 중구난방이다. 직장에서 있었던 이야기, 파이어족에 대한 갈망, 남편과 있었던 에피소드. 다양한 글들이 서랍 속에 가득 차 있었다. 발목양말과 겨울니트가 한 서랍 안에서 정리되어 있지 않고 널부러져있는 느낌.


하, 꾸준히 쓰고 싶은데 왜 이렇게 중구난방으로 글을 쓰게 되는 거지. 괜히 내가 싫어진다.



한참을 글을 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었다. 다들 다양한 에피소드들을 어떻게든 한 주제와 이어지게 잘 쓰고 있는 것 같았다. 타인의 글도 즐기지 못하고 나를 평가하기만 하며 스스로를 깎아내리고만 있는 모습. 이것마저도 싫다.




스무 살 때부터 난 블로그를 참 좋아했다. 시답잖은 일상을 써내려 갈 수도 있고, 별거 아니지만 내가 갔던 곳들을 기록하면서도 글을 남길 수 있고, 아침에 먹었던 카페를 소개하는 척 내 생각을 써 내려갈 수도 있어서. 여러모로 편안했다.


다시 블로그로 돌아가야 하나? 그래도 브런치가 더 내 마음에 드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한참을 고민했던 요 며칠. 그리고 그 고민의 결정을 나름대로 내려보았다.



그냥 블로그를 대하 듯 브런치를 대해 보. 맛집을 소개하는 척 내 생각을 써 내려갔던 블로그의 글들처럼, 괜히 회사에서 먹은 점심 이야기를 하며 오늘을 기록해 보는건 어떨까? 



어떤 날은 남편생각으로만 가득 찬 의미 없는 글을 쓰기도 한다. 가끔은 훌쩍 커버린 아들만 내 머릿속을 채워 아들이야기만 몇십 줄씩 써 내려가며 나름의 육아정보를 알려주기도 한다. 부동산 공부를 하루종일 한 날은 투자에 대한 생각을 한참 적으며 나와 비슷한 초보투자자들을 응원하기도 하고, 아침에 마신 커피 한 잔이 잠들기 전에 생각날 땐 그 커피이야기만 주구장창하는 뻘글을 쓰기도 한다.


블로그였다면 진작에 업로드했을 글들인데 브런치에서는 괜히 발행하지 못했던 서랍 속의 글들. 생각해 보니 내가 뭐 대단한 글을 쓰는 사람도 아닌데 쉽게 쉽게 쓰는 건 너무도 당연했다.



복잡하고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었던 날들도 글로 별거 아닌 것처럼 써 내려가면 아무것도 아닌 보통의 오늘이 되기도 했던 것처럼. 숙제처럼 느끼지 않고 별거 아닌 것처럼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하면, 어느 날 브런치도 즐기고 있는 내가 되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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