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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주 Jan 12. 2024

좋은 엄마란 말이 좋아서.

워킹맘인데도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나요?



아침에 눈을 뜨면 코앞에 아이의 얼굴이 있을 때가 있다.


남편얼굴이 묘하게 보일 때가 있고,

어쩔 땐 내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우리 둘의 얼굴을 잘 섞은 얼굴을 보니 우리 자식이 맞는 것 같아.



가까이에서 곤히 자고 있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괜히 볼을 꼬집고 싶기도 하고 작은 손을 쪼물딱거리게 되기도 한다.



그러다가 깰까 싶어 얼른 일어나는 아침.






퇴근을 하고 어린이집에 달려가

하원시키고 집에 오면,

보통 남편 오기 1시간 전에 도착한다.


그럼 둘이서 놀이터를 가거나 마트를 갈 겸 집을 나서는 편인데,


하루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 되기도 하고

워킹맘의 운명인 미안함과 죄책감을 씻는 시간이 되기도 하다.




회사에서 에너지를 소진하고 왔더라도

다시 에너지를 끌어올려

아이의 질문에 성의껏 대답을 하고,

아이의 뜀박질에 발맞춰 뛰어다니기도 하는

다른 일의 시작간.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피곤하지 않아요?라고 물어보면

피곤하다고 대답한다.




피곤해요-


진짜 진부한 대답인데

아이가 한번 웃으면 눈 녹듯이 사라져요.

참 신기하죠.






며칠 전, 늘 그렇듯 피곤한 날이 있었다.


없는 에너지 있는 에너지 모두 다 끌어올려

퇴근 후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던 날.


기진맥진하여 집에 들어와

이제 막 들어온 남편과 함께 저녁을 준비하며

아이밥을 먼저 먹이고 있는데,

남편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영주는 참 좋은 엄마야-




갑자기?


응, 그냥 영주는 정말 좋은 엄마니깐 알고 있으라고.





아이를 낳고 처음 일을 나갈 때, 아이가 이렇게 작은데도 일하러 나가냐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나도 예전 사진을 보면 이렇게 작은애를 두고 일하러 갔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작은 아이를 두고 워킹맘 생활을 시작했다. 본인의 행복을 위해서 그 어린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긴 엄마. 작은 아이를 두고 일하러 나가던 내가 늘 듣던 말나쁜 엄마란 소리.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 아이를 낳은 건 아니었는데도 한 번쯤은 좋은 엄마란 소리를 듣고 싶었나 보다. 


아니 좋은 엄마이고 싶었나 보다-




한 번은 남편한테 막 울면서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왜 넌 아이를 두고 일하러 나가는데 나쁘단 소리 안 듣냐고. 왜 나만 이런 이야길 들어가면서 살아야 하냐고.


죄 없는 남편에게 화풀이를 하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일을 그만두고

전업주부로 살겠다며

회사에 그만둔단 이야기도 했었던 날도 있었지.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참, 난리도 아니었다.






근데 참 사람 마음이 웃긴 게

막상 일을 그만두려고 하니,

그게 너무 아쉬웠다.


집에 있어보려 노력을 참 많이 해왔는데도

몸이 근질근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 일하러 나가야 할 거 같아.



그래서 그냥 받아들였다.


내가 나쁜 엄마임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살아왔는데 '좋은 엄마'라는 말을 들으니 기분이 이상했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기분.





나처럼 이기적인 워킹맘이 좋은 엄마라고?






가장 빨리 어린이집에 가서 가장 늦게 부모가 데려오는 아이. 그런 도하에게 늘 미안해 퇴근만 하면, 어린이집에 달려가고 가끔 이유 없는 반차를 쓰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곤 했다.


늦게까지 있을 아이에게 너무 미안해서-





“어머님! 엽이는 어린이집을 제일 오래 다녀서 자기 집처럼 편하게 생각해요. 혼자 있어도 잘 노니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아이가 낯설어하지 않고 잘 논다는 선생님의 위로가 되레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 하나둘 집으로 가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있었을 내 아이…. 혼자 남아 있는 동안 어떤 생각을 했을까? 매일 아침 1등으로 등원하고 제일 늦게 집에 가는 내 아이다.

'워킹맘 홈스쿨, 하루 15분의 행복'_ 김은영




아이에게 미안함과 죄책감만 가지고 있는 건 결국 '좋은 엄마'가 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실망과 슬픔에 집중한 결과라 한다. 실망과 슬픔에만 집중하면 함께 있는 시간마저 행복을 느끼기 힘들다.






결국 '좋은 엄마'는

누구든 될 수 있는 거였다.


워킹맘이라 같이 있는 시간이 많이 없으면 없는 대로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하면, 그걸로 충분히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


미안함과 죄책감에만 빠져 있지 말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아이에게 정성을 다하면 누구나 될 수 있다.





남편이 나에게 '좋은 엄마'라 한건 아마

시간이 없다는

핑계 한 번을 댄 적이 없었던

정성스러운 워킹맘이라 그런 게 아닐까.




배짱이 없다면 성실함이라도 내세우자. 베짱이처럼 배짱만 두둑이 내놓다가 겨울에 추위와 배고픔에 떨지 말고 차라리 부지런한 개미가 되자. 자기 주도적 학습 습관은 가정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온전히 아이 것이 될 수 있다. 하루아침에 길러지는 습관도 아닐뿐더러, 사교육을 한다고 해서 길러지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차근차근 쌓아 올린 습관은 훗날 아이에게 큰 힘이 된다.

'워킹맘 홈스쿨, 하루 15분의 행복'_ 김은영





시간이 부족하니 있는 시간은 꼭 아이에게 할애했다.

적어도 하루에 한 시간, 길면 두 시간.


꼭 아이와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었는데, 따지고 보니 책처럼 성실함이라도 가진 엄마가 된 거다. 1세용 한글책을 펼치고 스티커를 붙이며 나름대로의 엄마표 공부를 하곤 했고, 산책한다고 돌아다니며 이건 뭔지 저건 뭔지 끊임없이 대화를 하는 내가 가진 건 성실함이었다.


꾸준히,

정말 매일같이 아이에게 시간을 할애했고

그 덕분인지 원래 타고난 건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하는 말도 빠르고 똘똘하고

건강한 아이로 잘 크고 있다.




오늘 아침 어린이집에 도착하자 아이가

엄마 잘 갔다 와-

라며 밝고 큰 소리로 인사해 주었다.


엄마의 출근에 인사를 해주기 시작한 도하를 보니 미안하고 무거운 마음은 이만하면 충분한 것 같았다.



이젠 나도

스스로를 '좋은 엄마'라 말해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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