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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한 손절, 아이템 위험 신호 4가지

스타트업 생존 계획서

펀드매니저는 문과생이 가질 수 있는 직업 중 연봉이 가장 높은 축에 속할 것이다. 하지만 운용하는 자금 규모가 큰 만큼 부담감도 엄청나서, 투자 실패 시 자살하는 사람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펀드매니저들이 입사하고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무엇일까? 바로 '손절매'이다. 


투자를 시작할 때부터 "손실이 n% 나면 이 종목은 미련 없이 팔아버리겠다"라는 기준을 만든다. 더 큰 손실을 피하기 위해 이쯤에서 실수를 인정하고 포기하는 것이다. 핀테크 스타트업 천영록 대표의 트레이딩 룸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우는 3가지라는 영상을 보면 해당 내용이 잘 나와 있다. 



펀드매니저들은 아주 냉철하고 논리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조차도 손실이 커지면 이성의 끈을 붙잡기 힘들어진다. 본인이 투자한 종목이 계속 하락한다면, 손실회피 편향이 발생한다. 천만 원을 벌 때의 기쁨보다 같은 돈을 잃었을 때, 그 슬픔은 2.5배 정도 크다고 한다. 그래서 이성을 잃고 멘탈이 나가버리는 것이다. 


회사를 경영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오히려 더 어렵다. 수익률뿐 아니라 여러 가지 지표를 보면서 판단해야 하기 때문이다. 난 개인적으로 "아이템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아이템에 애착이 생겨 수익성이 없는 것이 뻔한데도 포기하지 못하는 것이다. 사람이 객관성을 잃는 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그러나 이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특히 당신이 경영자라면 말이다.


손절이 필요할 때 아이템이 보내는 신호

나의 개인적인 경험에 기반해서 4가지 신호를 제시해보려 한다. 그리고 손절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될지 알아보려고 한다. 나는 이것을 후퇴 전략이라고 부른다. 


1. 가격 파괴

유통업체는 <판매가 - 원가>에서 얻는 수익에 못지않게 택배비로 수익을 내는 구조다. 그래서 박리다매 형식을 선호하는 듯하다. 온오프라인에 관계없이 쿠팡과 대형마트 같은 유통채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은 최저가에 제품을 판매한다는 점을 홍보하고 고객을 끌어모은다. 그러기 위해선 제조사에게 공급가를 깎을 수밖에 없다. 


이런 유통업체나 유통채널에 입점하게 되면 수익성이 굉장히 떨어진다. 할인의 수준이 아닌, 가격 파괴가 일어날 수도 있다. 가격 파괴가 일어나면, 이제 그 아이템은 떠나보낼 때가 되지 않았을까? 수익성이 없는 제품을 아무리 많이 팔아봤자 택배기사님만 바빠진다. 가격 파괴는 생각보다 자주 발생하며 내 기준에서 후퇴 전략을 실행할 가장 첫 번째 전략이다. 



2. 가격 경쟁

안 그래도 치열했던 온라인 커머스 시장, 요즘은 개인 셀러들이 많아지면서 더 심해졌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가격 경쟁이 붙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한다. 특히 내가 소싱해온 제품이 도매꾹 같은 오픈되어 있는 위탁판매 사이트 제품이거나, 카피하기 쉬운 제품이라면 가격 경쟁에 빠질 가능성이 더욱 클 것이다.


가격 경쟁을 피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후퇴 전략 관점에서 보자면, 제품 자체로 차별화가 가능한 제품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차별화가 불가능한 제품도 분명히 있다. 유리잔 같은 경우 크게 차별화할 요소가 없다. 대신 이런 경우 브랜딩으로 차별화가 가능하긴 하다. 그냥 '유리잔'이라고 상품명을 짓는 것보다는 '달고나 커피 유리잔'이라고 지으면 더 많은 클릭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차별화도 한계가 있다. 그럴 땐 주저 없이 후퇴 전략을 실행할 때가 온 것이다. 


3. 평점이 4.0이 안 될 때 

와이즈플래닛이라는 국내 유명 마케팅 대행업체의 교육을 들은 적이 있다. 강사였던 김보균 이사는 이런 말을 했다. "제품 평점이 4.0 밑으로 떨어지면 아무리 잘 팔려도 판매를 중단한다." 아마 4.0이 맞을 것이다. 더 높을 수도 있다. 자세한 숫자가 기억이 안 나지만 나는 4.0점이 좋은 기준이라 생각된다. 이는 제품과 어플 모두 마찬가지이다. 평점이 4.0 밑으로 떨어지면 마케팅을 멈추고 내 제품을 비판적으로 바라보자. 그리고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되면 과감하게 후퇴 전략을 시작한다. 


4. 핵심 인재 이탈

전 회사에서 앱 서비스 개발 외주용역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개발자가 갑자기 언질도 없이 프로젝트 중간에 퇴사를 했다. 풀스택 개발자여서 혼자 많은 부분을 맡고 있었다. 물론 힘들었겠지만, 개발 기한이 그렇게 타이트하진 않았으며, 풀스택에 준하는 대우를 해주고 있었다. 절대적으로 보면 적은 보수였을지 모르지만, 최소한 회사에서 할 수 있는  최고 수준의 대우를 해줬었다.


우리는 결국 해당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긴 했지만 그 손해가 막심했다. 퇴사한 개발자가 받아간 인건비에 비해 짜 놓은 코드가 너무 적었다. 여기서부터 이미 적자가 난 것이다. 그리고 그 개발자가 나가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전된 업무 부담, 그로 인해 밀리는 다른 일들, 느려진 의사결정 속도 등을 고려하면 손해가 막심했다.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책임을 다 한 회사 대표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히려 클라이언트에게 솔직히 말하고 계약을 파기하는 쪽으로 유도를 했으면 어땠을까? 심지어 계약서도 쓰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만큼 서로 신뢰하는 관계였긴 했다. 그러나 내 생각에 '신뢰' 보다는 '생존'이 우선이다. 이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회사의 상황은 급격하게 안 좋아졌다. 회사가 망하는데 어느 정도 일조했다.


회사가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이다. 제품을 소싱해와서 마케팅을 공격적으로 하고 있는데 마케팅 담당자가 퇴사를 한다? 그런데 그 담당자가 유일하게 해당 제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었다면? 빨리 재고를 털고 나오길 바란다. 


신뢰는 나중에 회복할 기회가 있을 수도 있다. 아이템이 실패해도 다음 아이템에서 성공하면 된다. 그러나 생존에 관해선 두 번의 기회란 없다. 




후퇴 전략을 방해하는 심리

1. 매몰비용의 오류

많은 사람들이 매몰비용의 오류에 빠져 후퇴 전략을 망설인다. 내가 여기에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얼만데?! 절대 포기할 수 없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매몰비용의 오류이다. 하지만 경제학에서 매몰비용은 의사결정에 고려할 요소가 아니다. 이미 소요된 시간과 비용을 되돌릴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잔존가치만 보고 이일을 계속 진행할지 말지 정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이런 매몰비용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솔직히 쉽지 않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고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2. 아이템과 나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

내가 소싱해온 아이템이 실패했다고 나라는 사람까지 루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아이템의 실패를 자신의 실패와 동일시한다. 누구나 실패할 수 있고, 복잡한 비즈니스 환경에서 모든 것을 완벽히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실패를 통해 성장하며,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직원의 실패는 곧 회사의 중요한 자산이 된다. 그러니 내 아이템의 실패를, 혹은 내 의견이 반박당했다고 나라는 사람 자체의 존재가 부정당했다고 여겨선 안 된다. 이게 안 되는 사람은 절대 손절매를 못한다. 내 아이디어를 포기한다는 것은 내 자신을 포기하는 것과 같으니 말이다.


3. 손실회피 편향

손실회피 편향에 대해서는 위에서 잠깐 언급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손실을 회피하려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 손실은 너무나도 고통스럽다. 그래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다. 그런데도 계속 손실이 지속된다면? 그때부터 우린 이성의 끈을 놓기 시작한다. 그래서 일종의 그로기 모드에 들어가서 논리적 판단을 못하게 되고 점점 이상한 의사결정을 내리게 된다. 이렇게 패닉 상태에서 사람들은 자기 방어적 성향이 강해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손절하기보다는 이 아이템이 곧 성공할 수 있다는 이유를 찾기 시작한다. 지금부터는 확증편향이 발동한다. 내가 미리 답을 내려놓고 그 답에 부합하는 정보들만 수집하는 것이다. 그렇게 합리화 과정을 거쳐 해당 아이템을 끝까지 밀어붙인다.




내가 이 글을 적은 이유는, 내 자신 역시 위와 같은 실수를 자주 할 것이고, 심리적 오류에 빠져서 올바른 판단을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종의 지침서처럼 이 글을 적어두고 의사결정을 할 때마다 읽어보려고 한다. 대기업처럼 현금이 넘치는 회사라면 내 의견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나처럼 생존 지향적 사업을 하고 있다면, 소실대탐하는 것이 맞다. 작은 실패들을 손절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자. 



대구 경북 기반 스타트업 텐투고

프라이스 엔지니어 이재홍

퍼포먼스 마케팅 & 시장 조사 & 가격 전략 수립

e. 10togo.manager@gmail.com

thepriceengine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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