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무를 좋아한다.
나무를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내 경우엔 나무 페티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살아있는 나무든, 목공의 재료가 되는 나무든, 내 앞에 있는 모든 나무는 손으로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보고 가만히 입술을 대어보기도 한다. 가죽, 브라스(Brass), 종이, 면 등에도 자연주의적 사랑을 품고 있지만 나무의 물성과 텍스쳐를 대하는 나의 태도는 예배자에 가깝다.
미련한 구석이 있어서, 건축과 학생이던 시절엔 쓸데없이 수목도감을 가져다 외웠다. 주일학교 교사를 마치고 제자들을 중학교로 올려보낼 땐 서로 잘 자라자며 교회 앞마당에 독일가문비나무를 사다가 심었다. 취업 전 잠시 IT 과정에 적을 두었을 땐, 동기들과 Garden.com을 모방한 원예 사이트를 만들어보기도 했다. 'PC통신'이라 하면 요즘은 생소하겠지만, 그 시절 통신용 한글 ID를 최초로 도입했던 회사에 입사했다. 당시 직속상사였던 L부장님을 나는 특히 좋아했는데, 밝고 호탕한 그의 기질은 '소나무'라는 한글 ID와 잘 어울렸다. 결혼하고 집을 나오며 그렇지 않아도 손바닥만한 집 마당에, 양재동에서 산 산수유 묘목을 심었다. 매 대목마다 나무는 나의 리추얼이 되었다.
한국을 떠나 오기 전, 딸을 어린이집으로 데려다 주는 길목에 수령 3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었다. 일원동은 한때 조선 왕실 대군들의 집과 묘가 있던 동네라,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 뒤에도 이 나무만큼은 베어내지 않았다. 말하자면 마을 보호수인 셈인데, 서울에 살면서, 그것도 아파트 단지 안에서 이런 노거수를 볼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딸을 등원시키며 항상 이 느티나무 앞에서 일장훈계를 했다. 친구들하고 즐겁게 놀아라, 누가 때려도 참아라, 엄마 아빠 생각 많이 해라... 그리고 할아버지 나무를 한 번 보게하고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나무라고 세뇌를 시켰다. 아직 진중함을 모르는 아이 마음속에 잠시라도 진지함이 깃들길 바랐던, 일종의 '의식화교육'이었다.
어릴 적 곡성 동막 어귀엔 당산나무가 두 그루가 있었다. 둘 다 수령이 500년이 넘은 회화나무(Scholar Tree)인데, 군에서 보호수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었다. 동네 아이들은 매일 아침 당산나무 아래로 모여 얼추 인원이 차면 도상국민학교까지 난 신작로를 냅다 뛰었다.
학교를 째고 놀러가고싶은 날도 있는 법. 소리를 지르는 것인지 노래를 부르는 것인지, 아이들은 왁자지껄 노변에 도열한 미루나무들을 홱홱 지나쳐 달음질쳤다. 학교로 들어가는 길은 버얼써 지나쳤다. 아이들이 읍내방향으로 내달으며 박목월 시인의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 걸려있네"를 "미루나무 꼭대기엔 춘향이 빤쓰가 걸려있네"로 바꿔 부를 즈음 메타세콰이어 길로 접어든다.
영화 <곡성>에서 곽도원 배우가 오토바이를 타고 달리던 장면의 배경이 되기도 했던 이 메타세콰이어 길은 내가 학교를 들어간 70년대 중반에 조성이 되었다. 차 한 대 없는 한적한 지방도 위로 침엽수이지만 낙엽수이기도 한 메타세콰이어의 붉은 바늘잎들이 떨어질 때면, 그 광경은 어린 내게도 아름다웠지만 한편으로 이국처럼 낯설었다.
북미산 호두나무(Walnut Tree). 북미산 단풍나무(Maple Tree). 북미산 삼나무(Cedar Tree).
팩트체크를 해봐야 알겠지만, 나무 이름 앞에 '북미산(北美産)'이란 수식어가 들어가 있으면 왠지 더 단단하고 오래갈 거란 느낌이 든다. 로키가 연상되는, 북미의 한랭한 숲과 거친 환경을 이겨 온 나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목공을 해본 독자는 잘 알겠지만, 나무들을 그 재질과 쓰임으로 구분할 때 단단한 나무(Hard Wood)와 말랑말랑한 나무(Soft Wood)로 나눌 수 있다. 얼핏 로키의 수목한계선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 눈과 바람과 싸우며 일년 내내 푸른 상록침엽수들이 더 단단하고 강인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놀랍게도 반대다. 높은 곳에 있는 침엽수는 값싼 소프트우드, 낮은 곳에 있는 활엽수는 대개 비싼 하드우드이다.
침엽수 가지는 재질이 연하고 부드러워서, 일년 내내 가지에 두툼한 눈을 이고 추욱 늘어져 있을 수 있다. 가지가 견고하고 단단해서 낭창낭창 휘어지지 않는다면 젖은 눈을 못견디고 부러져 버렸을 것이다. 여름 끝 8월 말이나 9월 초에 한번씩 쏟아지는 대설은, 나뭇잎을 아직 떨구지 못하고 여전히 무성한 가지를 지닌 활엽수들에겐 재앙이다.
앞선 1편과 이번 편을 할애하여 로키산 나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산처럼 넓고 관대한 시선으로 이 이야기를 마무리해야겠는데, 한편으론 관대하지 못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이쯤에서 고백하고 넘어가야겠다. 무슨 이야기인고 하니.
아닌밤중의홍두깨 격으로, 여름 대설의 직격을 피하지 못해 가지가 부러져 있거나 밑둥까지 처참하게 찢어진 활엽수들을 보면 아쉽고 안타깝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뭔가 살짝 통쾌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좀 어려운데—쉬지못하고 일해야 하는 주말 출근길, 커다란 보트를 매달고 로키 방향으로 달리던 캠핑카가 고장이 났는지 길 한켠에 정차돼 있고 사람들(백인이라고 콕 찝으면 너무 속이 좁은가?)이 차 밖에 나와 있는 걸 볼 때—속 좁은 이민자 마음이 잠깐 "쌤통이다" 하는 그런 느낌.
대가 세기로 유명한, 결이 아름답고 촘촘해 비싼 가구가 되는 하드우드. 오크며 월넛, 메이플같은 고급수종의 단단한 활엽수 가지가 젖은 눈 무게에 호기롭게 개기다가 주욱 찢어져 버린 장면에 통쾌해하다니. 비주류 이민자의 열등감이 너무 대놓고 튀어나와버렸나?
이렇게 마음이 뾰족해져도 결국 나무는 너그럽게 받아준다. 당산나무 앞에서의 리추얼처럼, 내 마음을 다독거려본다.
도시 한복판인데도 아름드리 나무들로 가득한 숲이 있다는 건 참 부러운 일이다. 이곳의 삶은 여전히 불편함 투성이고 긴장된 생활의 연속이지만 산과 물, 공기와 숲... 이렇게 좋은 것들이 하나씩 늘어간다.
누군가 내게 한국과 캐나다 중 어디가 더 좋으냐고 묻다면, 지금의 나는 주저 없이 96 대 4로 한국이 압도적이라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좋은 점이 하나둘 늘어가고, 한국에서의 추억들이 서서히 빗바래져 어느덧 49 대 51이 되는 임계점이 온다면, 나는 '살고 죽을 곳'으로 이곳 캐나다를 선택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훗날 정말로 그런 선택을 하게 된다면, 그건 아마도 숲과 나무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