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숲 나무 이야기 1

나의 수목한계선

by Christmas Gin

마른 바람이 살갗을 차갑게 긁고 간다. 흐읍- 들이마신 밤공기가 기도를 바짝 긴장시킨다. 급히 내딛는 발 앞에, 나무를 떠난 지 오랜 사시나무 이파리들이 굴러와 바스락 밟힌다. 아기 손바닥처럼 동그랗고 앙증맞은 게 애달파서 한닢 주워 든다.


십 수년 전 이맘때 토론토에서 주운 단풍잎 하나를 어느 책에 끼워놨더라. 몇 권인가를 뒤적이다 알랭 드 보통의 책 안에서 바싹 마른 단풍잎을 찾았다.


한창 때는 뿌리에서 치올려진 수액으로 두근댔을 단풍잎 엽맥은, 책 안에서 얼마나 눌려있었던지 노인 손등의 혈관처럼 바싹 말라 불거져 있다.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아 본다. 오래된 책과 마른 잎은 비슷한 냄새가 난다. 서부 캘거리에서는 보기 어려운 단풍잎이다. 동부 토론토 노스욕 어느 골목 아름드리 메이플 나무 밑에서 주은 것이다.


캐나다의 아한대 추위를 능히 견뎌낼 수 있는 나무지만, 해가 가기 전에 잎을 모조리 떨군다. 여름이 가고 금새라도 겨울이 닥칠 것 같자, 헬리콥터 날개같은 씨앗을 빙글빙글 돌려 멀리 날려보낸 뒤, 채 붉어지지 않은 이파리들을 서둘러 떨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깨끗한 이파리를 골라 좋은 책 속에서의 안식과 회귀를 허락한 것이었다.


책갈피 속 옛 고엽(枯葉)과 오늘 주운 사시나무 이파리를 포개어 놓고 책을 다시 닫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마치 초인이라도 된 것처럼, 동부와 서부 사이 3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공간과 십 수년이라는 시간을 한 페이지 안에 접어 놓은 셈이 되었다.




고슴도치 등에 난 촘촘한 가시마냥, 하늘로 뻗은 상록침엽수가 로키산 수목한계선 밑둥을 덮고 있다. 캘거리처럼 침엽수림과 활엽수림의 두 생태계가 만나는 이행대(Ecotone)에서는 자작나무(Birch)나 미루나무(Poplar), 그리고 사시나무(Aspen)같은 낙엽활엽수가 더글라스 전나무나 가문비나무 등의 늘푸른바늘잎 나무와 공존한다.


이 낙엽활엽수들은 로키의 가을을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캐나다 하면 흔히 떠오르는 붉은 단풍은, 토론토같은 동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동네 사시나무숲. 대규모 콘도미니엄이 들어서느라 밀어버려 더 이상 볼 수 없는.


로키의 침엽수림대를 내려온 풋힐지대가 캘거리 목초지까지 너울너울 낮아지기 시작하면, 나무와 목초의 종류에 따라 구릉의 색깔들도 제각기 다르게 펼쳐진다. 전나무숲과 가문비나무숲과 같은 침엽수림이 자작나무숲, 사시나무숲의 활엽수림으로 바뀌면 짙은 청록에서 갈색빛이 도는 올리브색으로 숲이 옅어진다.


캘거리 주택가를 걷다보면 정원수로 심은 미루나무와 사시나무 이파리들이 가지에 달랑달랑 매달려 파르르르 떠는 모습이 애처롭다. 바람 부는 날이면 이파리들이 서로 몸을 비비며 '스스스스' 하는 소리를 내는데 쓸쓸하지만 제법 운치가 있다. '사시나무 떨듯 하다'라는 표현이 영어에도 그대로 있어서 'tremble like an aspen leaf'라고 한다.


Springborough라 불리는 우리 동네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옆 동네를 Aspen이라고 부르는데,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우리 동네는 '샘마을', 옆 동네는 '사시나무골'이라고 하는 격이다. 캘거리 평원에서 로키의 침엽수림으로 넘어가기 직전 활엽수림이 마지막으로 군락을 이루던 길목에, 20년 전 조성된 마을로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어느새 주택과 콘도미니엄 숲이 되었다.


작은 샘이 솟던 동네를 Springborough이라고 했듯, Aspen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당연히 이 지역이 사시나무 숲이어서 였을 것이다. 동네 이름에 나무이름, 샘이름, 언덕이나 골짜기 같은 지형을 따라 이름을 붙이는 건 세상 어디나 같다. 무슨 고개가 있으면 현(峴)자를 붙여 논고개가 논현동(論峴洞)이 되고, 칡고개가 갈현동(葛峴洞)이 되었듯이 여기도 마을 이름에 vale이나 dale, glen이 붙어 있으면 고개나 언덕에 있겠구나 하면 된다.




우리 동네에서 샘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대신 집집마다 미루나무(Poplar)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라고 있다. 나무 키가 일정한 것을 보면, 이 동네를 담당한 조경업자가 한번에 심었을 게 분명하다. 이 집을 사기로 결심하고 고용했던 인스펙터는 이 꺽다리 나무들이 몇 년 안에 지붕 위로 훌쩍 커서 빗물받이를 치댈 수도 있다고 했다. 사시나무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길쭉하게 자라는 이 미루나무들은, 좌충우돌하며 달려온 지난 십년 동안 지붕보다 높자란 지 한참이다.




어릴 적 응암동 백련산 매바위에 올라 서오릉쪽을 바라보면 멀리 너른 논 한 가운데 미루나무가 몇 그루인가 도드라지게 서 있었다. 언젠가 저길 한번 가보리라 맘 먹다가 한번은 기어이 두어 시간을 걸어 그 나무까지 갔다 온 적이 있었다. 박목월 시인의 노랫말처럼 '미루나무 꼭대기에 조각구름이 걸려' 있었다.


미루나무는 내 고향 곡성에도 있었다. 관아 동쪽에 병영이 있다고해서 동막이라 했다는 우리 마을 신작로엔 미루나무가 줄맞춰 심어져 있었다. 아이들과 그 길을 뛰어 학교를 다녔다. 웃동막으로 마실나갔다가 땅거미가 어둑어둑 해지면 삼촌 등에 업혀 돌아오곤 했는데, 잠결에도 '스스스스' 하고 울던 스산한 소리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스물이 되어 들어간 대학엔 사시나무(白楊)가 많아 백양로라 불리던 길이 있었다.




어딜 가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연결해 주는 사물이 있다. 나무가 그렇다. 바쁘고 비루하기까지 한 이민자의 일과 안에서, 내 마을에 어떤 나무가 있고, 바람에 어떤 소리를 내고, 타면 어떤 냄새가 나는 지 잠시 멈춰 서 관조할 수 있는 여유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나무 끝에 걸려있는 조각구름이 흘러가는 것을 보는 일조차 갑작스런 선물처럼 감격하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내 발 밑으로 굴러 들어오는 낙엽을 또다시 줍게 되는 날, 나는 책을 펴고 마른 잎들에게 회귀와 안식을 다시 한번 내어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캐나다 캘거리 이야기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