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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왈 Jul 21. 2017

거리의 오줌 싸는 아이들

중국 칭다오 이방인의 기록 05

지하철을 탔는데 바닥에 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디서 왔을까 싶어 둘러보니 그 원천은 한 아이의 아랫도리였다. 중국 생활에 적응했다고 내심 스스로를 쓰다듬어주고 싶었던 나였다. 그러나 이 상황은 충격이었다. 다시 중국 생활의 새로운 면이 펼쳐졌다. 또 다른 시작이었다.

    

세네 살 아이들의 아랫도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엉덩이 부분이 뚫려있다. 앉기만 하면 바로 일을 처리할 수 있는 형태다. 그 강렬한 첫 경험을 시작으로 거리에서 아이들의 오줌 누기가 계속 눈에 밟힌다. ‘내가 걷는 이 길에도 여럿 오줌이 저려져 있구나, 나는 그 위를 걷고 있구나.’라는 생각에 아찔하다.

     

아찔함은 안타까움으로 번진다. 아이들의 오줌 싸기는 중국어 수업 때도 화제였다. 외국인 학생들은 저마다의 경험을 공유하고 안타까워했다. 중국인 선생님은 장소 불문의 오줌 싸기 행위가 농촌에서 자란 부모들이 아직 문명화가 덜 되어 생겨난 문제라고 지적한다. 다행히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안도한다.

     

갑자기 나는 아이의 위생과 건강까지 우려하기 시작했다. 팬티도 입지 않은 채 엉덩이를 내놓고 아이들이 거리를 걷고 버스 좌석에 앉고 지내는 모습이 걱정된다. 수많은 병균이 항문으로 침투할 텐데.

     

그런데 하루에 한 번 마주치는 게 습관이 되니 다시 보인다. 부모는 오줌 마렵다고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자율권을 준다. 따로 속옷이나 기저귀를 챙길 필요가 없어 편리하다. 아이 건강엔 더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참을 필요가 없다. 자연이 부르는 그대로 행하면 되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사는 곳이 아스팔트 더미가 아니라 풀밭이었다면.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오줌 싸기는 자연에게 거름을 주는 행위일 것이다. 그러나 아스팔트 도로 위에서는 소변이 흡수되기보다는 길을 오염시키고, 악취를 풍겨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농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자연스러운 본능이었을 텐데. 아이들의 오줌 싸기 행위를 두고 수준이 낮은 부모의 잘못이라고 마냥 비난할 수는 없겠더라.

     

도시에서 아이들의 오줌 싸기는 규제, 교육, 정책의 대상이 된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가지 않는다면 이런 자연스러움이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대다수가 도시에서 생활하는 현실에서 그들의 행위는 행인들의 시각, 후각, 촉각의 피해를 낳는다. 그래서 결국 규제되고 점차 사라지겠지. 내가 살아온 땅이 그랬던 것처럼. 문명의 과정을 밟아 나가며 자연스러움은 사라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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