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곳o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왈 Jun 09. 2019

공간, 재생, 활용, 기억

옛집, 카페 <다랑쉬>를 생각하며

옛집에 대한 기억은 그의 문처럼 오랫동안 닫혀있었다. 내 기억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지만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던, 다시 돌아갈 일이 없었던 옛집. 그곳은 시내 중심가도 아니고, 소위 '힙한'  곳도 아니고, 지금의 집 주변도 아니었다. 근처에 갈 일은 없었다. 다만 그 주변을 우연히 지나갈 때면 그 집에서 보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 잠깐 기억 공간을 두드리기도 했다. 


네다섯 살배기 내 유년시절이 이 집에 묻어있다. 몇 해전 동생이 고양이를 기르기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집 담벼락에는 깜깜한 어둠 속 번뜩이는 고양이들의 눈들이 나를 지켜봤었다. 길고양이들은 우리 집을 좋아했지만 그 덕분에 나는 고양이를 줄곧 무서워했다. 대문을 들어서면 할머니가 살던 작은 집, 바깥채의 공간이 있다. 엄마, 아빠, 오빠, 나, 그리고 동생은 큰 집, 안채에 살았다. 할머니는 가마솥에 엿을 만들었다. 할머니 집에 가면 그 엿을 한가득 입에 넣고 빨아먹었다. 할머니의 온몸에는 엿을 바른 하얀 휴지들이 더덕더덕 붙어있었다. 어디 다친 곳, 가려운 곳 모두 엿을 발라 휴지를 붙이면 할머니에겐 최고의 약이 되었다. 바깥채와 안채 사이에는 우리 집의 작은 정원, 상추밭이 있었다. 연녹색 빛의 한껏 부풀린 주름들이 메운 밭을 가로질러 나는 큰 집으로 뛰어들어갔다. 거실 소파에서 대통령 후보 사진이 박혀 있는 작은 명함 크기의 홍보 전단을 갖고 놀았다. 소파 시트를 떼보면 종종 똑같아 보이는 얼굴들이 있었다. 아마 크리스마스 날이었을 것이다. 동생과 내가 아침에 일어나 보니 머리맡에 색깔만 다른 동일한 모양의 머리띠 두 개가 놓여있었다. 우리는 서로 빨강 체크 리본 머리띠를 좋아해 다퉜다. 결과는 부러진 머리띠와 대성통곡이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제주로 돌아온 오빠가 갑자기 옛집을 개조할 것이라고 했다. 내겐 자신이 상상하는 바를 실제로 표현해 볼 수 있다는 것, 더구나 우리들이 살아가는 공간을 건축하는 사람에 대한 부러움과 동경이 있다. 나는 ‘나’이지만 내 존재에서 환경을 뗄 수가 없다. 그 환경을 이루는 공간을 짓는 작업은 이 세상에 있는 존재라면 한 번쯤 해봐야 하는 일처럼 들렸다. 따라서 그 옛집을 다시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어보려고 한다라는 그의 말은 내 호기심과 상상력을 자극했다. 


오랜만에 옛집에 왔다. 집 안으로 발을 떼니 기억의 조각들이 하나하나 모습을 드러내었다. 할머니가 지내던 집이 이렇게 생겼구나. 꽤 컸구나. 지붕 속 서까래가 갈비뼈처럼 촘촘하게 정돈되어 그동안 이 집을 지탱해왔구나. 할머니의 얼굴, 몸동작이 눈 앞을 스친다. 1945년 해방 때 할머니가 관덕정 근처에 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각종 집을 지을만한 자재들을 직접 날라 지은 집이라고 오빠는 말했다.  


오빠는 바닥 구들장 돌을 어떻게 할까 고민했다. 큰 집의 방문들은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 유독 튀는 에메랄드 색 페인트의 콘크리트 기와들은 또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그는 늘 고민을 달고 지냈다.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다는 신념은 구들장 돌 아래 철근을 심어 작은 테이블을 만들었다. 방문은 책 진열장이 되기도 하고 같은 크기의 유리를 올려 또 다른 느낌의 테이블이 되었다. 28년 된 보일러 기름통도 새로운 삶을 찾았다.

  

거의 일 년이 걸렸다. 오빠는 설계 작업에만 그치지 않고 현장에 나가 돌을 직접 날랐다. 어느 날은 버려진 나무 자재들을 모아 현재의 콘크리트 지붕 내부의 무늬를 만들기도 했다. 일 년 동안 지역 목수, 건축 관계자, 행정기관, 가족들과 상의, 언쟁, 설득, 조정의 과정을 되풀이했다. 그의 설계안 중 몇 부분은 지켜낼 수 없었다. 그가 그린 이상의 그림에 대해 불가능하다고 평하는 목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일을 해야 했다. 오빠는 야위어 갔으며 또 단단해져 갔다.  


결국 집도, 사람도 해체와 재구성을 반복하고, 상처가 아물고, 야윈 몸에 살이 오를 때 즈음 옛집이 새로운 모습을 드러냈다. 집은 이전의 모양을 탈태했다. 그러나 이전 그대로의 모습들이 새로움을 입고 구석구석 위치해 있었다. 작년 중국 자금성을 방문했을 때 복원을 담당한 중국문화유산 재단 디렉터의 말이 생각났다. “복원은 이전 그대로의 외형을 되찾는 것에만 그치지 않는다. 동시대의 맥락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복원한 유산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더욱 큰 관건이다.” 멋진 집을 짓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공간 사용자가 그곳을 어떻게 쓰는가, 생활하는가에 따라 공간은 달라진다. 사용자도 그 공간으로부터 물리적, 정신적 영향을 받으며 변화한다. 이 새로운 옛집은 더 이상 우리 집만이 아니다. 한 건축가의 작품도 아니다. 공간을 찾는 사람들이 어떤 각양각색의 활용을 하며 어떤 가치를 더하는가에 의미가 있다. 앞으로 어떤 기억들이 어떤 이들의 기억 공간을 차지할 것인가? 그 기억들은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까? 설렌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취방=공연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