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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왈 May 11. 2019

익명성.공동체

프랑스 파리에서 마주친 공동체


파리 필하모니에서 기획한 전자 음악에 대한 특별전 Electro는 ‘익명성’이라는 단어를 내게 던져주었다. 기존 체제에 대한 젊은 층의 반항, 대안의 몸짓. 전자 음악과 록 음악은 그 결을 같이 한다. 그러나 차이를 생성하는 지점이 바로 익명성이다. 시카고, 베를린 클럽 등에서 게이, 레즈비언 등의 성 소수자와 흑인들이 전자 음악의 물결을 이루었다. 음악은 특히 성 소수자들이 신분을 숨기고 숨을 내쉬어 보는 공간이 되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그들은 신시사이저를 이용해 멜로디에 멜로디를 붙이고 레코드 판을 조작하며 노래를 실험했다. 그들은 어두움 속에서 춤의 광기를 드러내었다. 가면을 적극 이용해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음악에 더욱 몰입했다. 익명성이 나를 끌어당겼던 것이었다. 때로 어두운 공간, 드라이아이스 하얀 연기, 시각을 덮는 광선, 고막을 자극하는 음악 덕분에 나 자신을 조금이나마 벗어낼 수 있었다. 껍데기가 내 전부가 되어버리는 상황을 막으려고 했다.


익명성을 원하기에 우리는 도시로 가는 것일 수도 있다. 모든 주민이 나를 아는 조그만 동네에서 벗어나고자, 관계에서 오는 피로를 차단하고자 우리는 도시의 수십 만, 수천만 명의 군중 속 한 점이 되기를 자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외로움을 느낀다. 도시 안에서 적극 공동체를 구성한다. ‘소셜다이닝’과 같은 행사를 만들기도 한다. 각종 취미 모임에 참여한다. 혹은 가상공간으로 들어가 매일 다른 이의 생활을 확인하고 반응한다.


Les Grands Voisins는 파리의 대안 공동체다. 일자리가 없는 시민, 법적 신분을 신청하고 있는 난민, 사회적 기업, 비영리조직 등이 그 구성원이다. 한 비영리 조직은 폐업 처리된 병원 공간을 재활용해 실업자, 난민들이 도시에서 발 딛고 살아갈 수 있는 이 공동체를 시작했다. 이들은 여기서 거주하며 생활한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거나 입주한 사회적 기업, 비영리조직의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난민들이 자신의 고향 맛을 선보이는 음식점을 창업한다. 공간 내 카페, 바, 중고물품 상점에서 일하기도 한다. 공동체 공간을 수리하는 일에 나서기도 한다. 그 외에도 아프리카 장신구를 제작하거나, 식물을 키우고 판매하는 각종 공방이 있다. 한 켠의 공간에는 사회적 기업, 비영리조직의 사무실들이 모여있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글을 쓰고 있을 때 한 프랑스인이 내 옆 자리에 앉아 난민 주방장의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그에게 이 곳은 파리에서 가장 멋진 곳이다. 그는 농업 공학을 전공했고 향후 자신의 고향 지역으로 돌아가 도시 농업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했다. 그의 친구는 여기 입주한 스타트업에서 일한다. 장애인들이 제작한 작은 버섯 재배 상자를 파리 시민에게 판매한다. 도시의 주민들은 집집마다 버섯을 키우고 수확하는 체험과, 그를 통해 오는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오늘 금요일 정오에는 Les Grands Voisins 조직원뿐만 아니라 다양한 파리 시민, 나와 같은 여행객이 이곳에 자유롭게 모여 있다. 이러한 지지자 혹은 취향 공유자들로 공동체는 지속하고 풍부해진다. 


게이, 레즈비언과 같은 사회의 소수자들은 익명성을 추구했지만 결국 이들도 모여 공동체를 만들었다. 전자 음악과 클럽. Les Grands Voisins 도 실업자, 난민들을 포함하는 공동체를 창조했다. 우리는 결국 모인다. 끼리끼리 뭉친다. 소외되지 않기 위하여, 외롭지 않기 위하여. 어떤 공동체일 것인가가 바로 문제다. 감히 체제에 속할 수 없는 반항의 존재일지라도, 익명과 같은 단어로 그들의 존재를 긍정해줄 수 있는 공동체인 것인가가 중요하다. 고여 썩은 물이 되지 않기 위하여, 혹은 더 이상 새로운 물줄기가 없어 말라버리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연결의 끈을 놓지 않는다. 도시이던 마을이던 또는 어떤 형태의 장소이던 우리에겐 그런 공동체가 필요하다. 다양한(나와 다른, 우리와 다른) 소수자들이 모여드는, 서로 이야기하는, 생존 그리고 존재할 수 있는, 계속 새로운 대안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흐름이 있는 공동체. 



Electro 전시. 관람객은 헤드셋을 끼고 전시를 관람한다. 전시장 구성은 마치 어느 한 클럽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Les Grands Voisins. 평일 낮에도 꽤 많은 이들이 점심식사, 커피 등을 즐기러 이곳에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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