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첫째 주,
4개월간의 구원투수 노릇을 하다가 인원 부족에 허덕이던 파트너 M팀으로 나는 인사발령을 받았다.
그는 항상 큰소리와 조금은 직선적인 코멘트로 인해 같이 일하는 팀원들이 조금씩 감정적 그리고 물리적으로 허덕이는 분위기를 종종 관찰했기 때문일까? 살짝 긴장한 기분으로 첫 날을 맞이 했다.
2년을 다른 파트너와 일을 하다 보니, 나는 그의 익숙지 않은 목소리 톤과 발음으로, 조금씩 늦게 대답하고, 디자인 방향의 요지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업무 스타일이 다르다 보니 내가 기존에 이 회사서 일하던 방식이 그가 기대했던 혹은 고민했던 부분이 충족시키지 못했었나 보다.
며칠이 지난 뒤 결국 어느 날 아침 일이 터졌다.
내 자리로 온 그는 큰 소리로 "왜 매일매일 자기에게 작업한 걸 보내지 않냐?"는 것이다.
앞서 쓴 글에서와 같이, 2년간 나에게 파트너 그리고 Line Manager라는 직책은 업무에 대한 메니징 그리고 큰 그림을 잡고 방향을 결정하는 사람이었지, 모든 아이템을 그들과 공유하고 토론하는 포지션이 아니었다.
나도 직장생활을 1-2년 하지 않았기에, 프로젝트 총괄에 따라 업무방식도 다르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아마도 2년간의 영국 건축사무실 업무환경에 굳어져 있었나 보다.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멍청한 짓이었네 ㅎㅎ 반성 또 반성한다.
(모두 이런 실수 하지 말아요… 자기 스탠스를 유지하는 건 필수! - 책임자 스타일 파악하는 건 필요!)
화를 내는 파트너와, 굳어버린 나.
예를 들어가며 설명하는 파트너와, 너무 빠른 설명에 문장 하나하나 이해하지 못한 나.
글을 쓰는 지금도 그날 속상했던 내가 너무 또렷이 생각난다.
신입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나의 생각과,
M도 '신입도 아닌 녀석이 , 이렇게까지 못 알아들을 줄이야...'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혼내기 위해 나의 자리까리 찾아온 그는 그렇게 내가 작업하던 스케치와 업무를 통째로 들고 돌아갔다. 어찌나 막막하던지;;;;
열심히 혼난 뒤 미안하다고 했지만, 사실 순식간에 지나간 그의 스피킹은 그냥 알아듣지 못한 채 지나갔고(아마 알고 있었을 거다. 이 녀석 내 가이 야기한 거 다 못 알아들었다고…..) 옆에서 나를 안타깝게 보던 동료가 몇 가지 자기가 들었던 내용을 뒤에 설명해 주었다.
그가 같이 일한 지 벌써 5년이 넘었다. 지금 뒤돌아보면 그가 지적한 사항은 크게 5가지였을 것 같다.
1) 이해하지 못했다면 Yes라고 이야기하지 말아라.
2) 비슷한 분위기 혹은 레퍼런스 이미지들을 보여달라고 해라. 커뮤니케이션에는 언어 외에도 많은 방법이 있다.
3) 매일매일 작업한 거는 그날 밤에 항상 팀장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cc로 보내달라. 자신은 새벽에 일어나서 받은 이메일 그리고 디자인 디벨럽 사안에 대해서 충분히 스케치를 해서 네가 출근하기 전에 보내줄 것이다.(지금 그는 시니어 파트너임에도 여전히 새벽부터 밤까지 일만 하는 것 같다. 존경과 지긋지긋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4) 아시아에서 일하듯, 자신을 어려워하지 말아라. 그리고 자신은 마이크로 매니징 및 디자인 요소 하나하나를 놓치고 싶지 않다. 편하게 질문해라.
5) 발표 및 보고를 할 때 항상 스토리보드를 만들듯, 헤딩을 먼저 이야기해라.(특히 영어가 유창하지 않은 사람일 경우).
5가지 요소를 명확히 아는 이유는 그 이후, 다른 아시아에서 온 친구들에게 항상 하던 Bullet points 였다.
여하튼, 엄청 혼나고, 하던 업무를 뺏긴 채 며칠을 조마조마했었다.(과제가 주어지지 않는 업무시간은 정말 지옥 같다.)
'이러다가 또 다른 팀으로 옮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불안하던 끝에, 운 좋게 내가 그나마 퍼포먼스를 잘 보일 수 있는, 건물 전체 파사드를 스터디하는 과제가 내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잘한다기보다는 다른 과제에 비하여(평면 레이아웃 계획이나, 코디네이션 미팅과 달리) 이미지 결과물로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앞서 지적받은 사항들을 보완하고 결국엔 몇 달 뒤 더 나은 "나"에 대한 이미지 개선을 할 수 있었다.
사실 몇 년 동안 같이 일하며 사고 친 이야기를 하자면 몇 날 밤을 새워도 끝날수 없겠지만. 아찔했던 몇몇 사건들을 다음에 또 써보길 기대하며 기억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