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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Sep 23. 2019

오늘의 나를 만든 책들

책이랑 놀다 보면

  어린 시절 한 때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밥을 굶는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회초리를 드시며 격렬히 반대하셨다. 스스로 키운 꿈이 꺾이고 나니 학교 공부에 열의가 나지 않았고, 억압적인 분위기의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 한 뒤로는 더더욱 공부에 시들해졌다. 학교 공부는 등한시했지만 호기심은 많아 세상일에 궁금한 게 많았다. 그걸 책을 읽으며 풀었다. 예수님은 진짜 신의 아들인지, 잘못된 길로 빠진 청소년들은 어떻게 되는 건지, 데미안의 ‘아프락사스’란 말 뜻은 무엇인지, 어린 왕자는 왜 또 그리 유명한지, 제인 에어며 주홍글씨를 읽으면 뭔가 삶의 참 의미를 알게 되진 않을지. 한국 단편소설인 감자, 동백꽃, 운수 좋은 날 등도 즐겨 읽었다. 대학에 가선 한국 현대사와 경제학, 생각하는 법을 알려주는 철학 책을 읽었다. 책 내용이 나의 삶과 관련되어 있고 나의 삶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깨달은 게 그즈음이었던 것 같다. 세상에 대한 온갖 호기심을 책으로 풀던 시절이었다. 


  살면서 문제가 생기거나 뭔가 잘 몰라 답답할 때에도 무조건 책으로 해결책을 찾았다. 부부관계의 문제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부터 시작하여 책으로, 출산 직후 육아도 <황금빛 똥을 누는 아이>부터 주욱 책으로 공부했다. 돈이 아쉽길래 당시 붐이었던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를 먼저 읽고 <만원으로 시작하여 가장 빨리 1억 만드는 펀드 투자>를 빨간 줄 쳐 가며 공부해서 실전으로 소액이지만 수익도 내보았다. 밥벌이를 위해 해커스 시리즈로 영어공부를 했고. 아이들이랑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몰라 편해문 님의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 방승호 님의 <우리 집 모험놀이>를 읽고 따라 해 보고, 아이와 좋은 관계를 갖고 싶어 최성애 님의 <회복탄력성>, 이임숙 님의 <엄마의 말공부>를 읽었고, 엄마로서 바른 가치관을 세우려고  <아이의 사생활>, <부모와 학부모 사이>, <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 등등을 읽고, 아이들도 책을 읽히면 좋겠다 싶어 마쓰이 다다시 님의 <어린이와 그림책>, 백화현 님의 <책으로 크는 아이들>을 읽고 삶에 적용해 보려고 애썼다. 신기하게도 관심분야의 책이랑 씨름하다 보면 그 분야를 보는 나름의 기준이 세워지고 나만의 안목이 길러졌다. 그렇게 살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대로 책을 보면서 알고 싶은 분야를 확장해 왔던 것 같다. 궁금하고 필요한 실용적 지식과 정보를 취하고 내 삶에 이용해 보는 단계였다고나 할까. 


  여전히 일상의 필요에 의해 잡다하게 읽긴 하지만 요즘은 인간의 감성과 지혜로움에 대해 끌리다 보니 고전소설이나 에세이들을 즐겨 읽는다. 소설 속에 나오는 다양한 삶의 양상과 인간 군상들을 간접 경험하고 내 삶과 생각을 견주어 보는 것이 즐겁고, 마음을 간질이고 촉촉하게 만드는 에세이의 깊이 있는 울림이 좋다. 1 더하기 1이 때에 따라선 0도 되고, 3도 되고, 사람마다 답이 다를 수도 있음을 알게 해주는 유연하고 깊은 이야기들이 점점 더 좋아진다. 새롭게 발견한 내 마음에 와 닿는 문구가 반갑고 가끔 내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이야기가 있음에 놀랍다. 즐겨 읽는 책의 종류가 달라져서 그런 건지 안 되는 건 포기할 줄 알게 돼서 그런 건지 요즘 내가 좀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가족들을 포함해 다른 사람들을 내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변화시키지 못해 안달이었고, 변화가 없거나 기대에 못 미칠 땐 실망하며 못내 더딘 변화 속도에 답답해하며 살았다면, 요즘엔 의도를 가지고 사람을 대하고 싶지 않고, 내 맘에 들지 않는 말들과 사람들에 대해 일일이 시시비비를 가리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냥 흘러가게 두는 게 예전만큼 어렵지 않다고나 할까... 내가 만든 틀에 덜 매이게 되었달까... 마음이 사뭇 가벼워졌다. 


  '책은 사람을 만들고 사람은 책을 만든다'는 문구처럼 어려서부터 지금껏 읽은 책 읽기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왔고, 어렵다고 느꼈던 삶의 여정을 그럭저럭 헤쳐가게 해 주었다. 호기심으로 시작해 필요한 지식과 정보의 습득을 위해, 그리고 감성 충만한 내면의 성숙을 위해 오늘도 나는 책을 읽으려 한다. 누군가 내게 "책은 왜 읽어야 할까?"라고 묻는다면 나는 "책을 읽지 않고 살 수 있을까?"라고 되묻게 될 것 같다. 앞으로는 또 어떤 분야의 책들과 놀게 될지 모르겠다. 새로운 분야의 책들과 만나 변화하게 될 나 자신의 새로운 면모는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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