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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Oct 07. 2019

좀 더 나은 존재가 되라는 신의 뜻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읽고

  동심을 잃어버려서 그런지 마법, 환상, 신화 등 뭔가 신비함에 쌓인 단어들에 흥미를 못 느낀 지 오래다. 내가 사는 현실 세계와는 무관한,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믿기 때문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에는 그런 신기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납으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철학자의 돌과 불로장생의 묘약! 이 두 가지를 만드는 사람이 연금술사이고, 이 과업이 바로 그들이 말하는 '위대한 업'이자 '만물의 정기'라고 한다. 실제로 파울로 코엘료도 불로장생의 묘약에 매료되어 삶의 많은 부분을 연금술을 익히는데 쏟았다고 한다. 이런 비밀을 알려주는 책들이 전해 내려오고, 그걸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고, 성공한 연금술사들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니까 이게 정말 가능한 일이라고?' 나도 모르게 솔깃해진다.


  저자는 세상을 여행하고 싶어 하는 꿈을 가진 스페인의 양치기 목동 산티아고를 통해 만물을 창조한 신의 비밀을 전한다. 신의 비밀이란, 신이 만물을 창조할 때 인간뿐 아니라 세상 만물이 모두 좀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진화하게 만들었으므로 인간도 사랑의 힘으로 각자 "자신의 신화"를 실현하며 보다 나은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납이 금으로 바뀔 수 있는 것 또한 그런 연유이며 이 연금술이 신의 뜻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한다. 결국 인간을 포함한 만물은 그 창조자인 신의 뜻 즉, 보다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그 뜻에 따라 살아야 한다는 의미로 나에겐 해석된다.  


  소설은 팝콘장수와 크리스탈 상인, 그리고 연금술의 비밀을 알아내려는 영국인의 이야기로 꿈을 대하는 다양한 방식을 보여주고, 파티마의 사랑으로 사랑이 "자아의 신화"를 쫓는 데 방해가 되는 일이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책의 말미에 산티아고가 만난 연금술사는 말한다. 꿈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 땅 위의 모든 이들은 늘 세상의 역사에서 저마다 중요한 역할을 이미 하고 있으며, 자신들의 삶 속에서 만물의 정기와 신의 비밀을 발견해 낼 수 있다고 말이다. 읽는 내내 어릴 적 꿈을 소환해내며 이제라도 실현을 위해 애써야 하는 건가 내심 걱정을 했는데 지금 내가 처한 위치에서 좀 더 나은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메시지라면 일단 안심이다. 갑작스러운 꿈 찾기로 부산 떨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리고 비슷한 맥락으로 떠오르는 책이 있다. 몇 년전 가을에 읽었던 이정록 시인의 <어머니학교>라는 시집이다.


    그믐달


가로등 밑 들깨는

올해도 쭉정이란다.

쉴 틈이 없었던 거지.

너도 곧 좋은 날이 올 거여.

지나고 봐라. 사람도

밤낮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 아니다.

보름 아녔던 그믐달 없고

그믐 없었던 보름달 없지.

어둠은 지나가는 거란다.

어떤 세상이 맨날

보름달만 있겄냐?

몸만 성하면 쓴다.


  시를 읽다 보면, 산티아고가 양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살피면서 양들의 언어를 알게 되고, 침묵으로 고요히 사막을 응시하고 살펴 사막의 언어를 알게 되었듯이, 시인의 어머니도 자식을 낳고 농사를 지으며 열심히 사는 그의 삶 속에서 사는 지혜와 세상의 이치를 깨쳤음을 느낄 수가 있다. 파울로 코엘료가 전하는 만물의 경지란 여전히 아지랑이 같지만, 시인의 어머니처럼 주어진 몫을 하며 세상사의 이치를 깨닫는 것이라면 다행히 백 퍼센트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세상의 진리는 하나라던데 그러고 보면 저 시인의 어머니가 깨친 것이나 소설 속의 산티아고가 깨친 것이나 다 통하지 않겠는가. 마음 가는 데부터 두어야겠다. 더 나은 존재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니 내 몫의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아내는 것으로 시작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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