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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14. 2019

점 보러 다녀보니

사람 마음이라는 게

  큰 아이 동창 엄마를 만났는데, 그 분 딸이 서울 어느 대학에 수시로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 주신다. 진심으로 축하해 드리며 "어머, 6년 전 점쟁이 말이 맞았네요! 작은 딸은 '인' 서울 할 거라고 했었잖아요." 했다. 6년 전에 그 엄마는 자기 딸 둘의 진학 점을 보았던 이야기를 나와 나누었던 적이 있었다. 그분은 그 사실을 내내 기억하고 의지하곤 했을까.


  살면서 '점'이라는 걸 처음 인지하게 된 때는 결혼 전에 양가 부모님이 궁합을 보면서였다. 띠가 안 맞아 별로 좋은 결합은 아니라는 역술가를 두 어명 거쳐 결국 무해무득이라 하는 분을 만났고 잠시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가라앉히고 결혼을 했다. 역술가들이 결혼을 반대하고 나설 때 참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니 자기들이 뭐라고 갑자기 내 인생사의 중요한 순간에 끼어들어 감 놔라, 배 놔라 좌지우지하는 거지?' 그 말들을 예사로 듣지 않고 경청하며 나에게 주의를 주는 부모님도 다시 보였다. 당시에 내가 깨우친 해결법은 좋은 궁합이라고 또는 최소한 무해무득이라고 하는 역술가를 만날 때까지 계속 보는 것이다. 어차피 내 마음 편하자고 보는 것이므로. 어떤 말을 믿고 안 믿고는 내 맘이니까.


  결혼하고 나자 아이를 낳은 나는 돈을 벌러 나가지 못했고, 유학을 준비하며 긴 공부를 시작한 남편 또한 돈을 벌지 못했기에 시부모님이 도와주시기는 했지만 살기가 참 팍팍했다. 답답한 마음에 발걸음이 자연스레 점집으로 향했다. 매 번 용하다는 다른 곳으로 갔는데, 처음 간 집은 남편 나이 37, 38세면 공부도 끝나고 직업도 잡을 거라고 했다. 살아보니 아니었다. 또 다른 집은 40세에는 평생 직업을 갖는다고 했다. 그것도 아니었다. 지원한 곳에 떨어지기를 거듭하며 계약직으로 전전긍긍하다가 43세에야 정규직을 갖게 되었다. 이때를 정확히 맞춘 역술가는 없었다. 남편이 직업을 갖고 나서 온 가족이 한숨 돌렸는데 직장에 맘 붙이기 힘들다고 이직을 하고 싶다며 또 역술가를 찾아갔다. 3년을 기다리면 시간의 수레바퀴가 돌아 본인이 원하지 않아도 이직의 기회가 온다나 뭐라나... 3년이 에저녁에 지났지만 이직은 하지 않았다. 뭐가 맞는다는 건지 모르겠다.


  살던 집을 내놓았는데 경기가 안 좋아 집 보러 오는 사람이 없었다. 또 슬슬 불안이 엄습하자 남편이랑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이번엔 타로카드 역술가를 찾아갔다. 9월 즈음 보러 갔는데 12월까지는 집이 나간단다. 믿고 기다려 본다. 허탕이다. 나간다니 느긋하게 기다렸다가 발등에 불만 떨어져 결국엔 제 값을 다 못 받고 급하게 처분하고 말았다. 이놈의 점집, 다시는 가나 봐라.


  불안하고 답답하고 막연할 때 사람의 심리는 자연스레 미래를 미리 알고 걱정을 피하고 싶은 심리가 있나 보다. 재미로도 보지만 주로 마음이 힘들 때 비용이 만만치 않은 걸 알면서도 점집을 찾는 이유이다. 결혼 즈음부터 시작된 나의 점 본 경험을 종합해 보자면, 원하는 어떤 일의 특정시기를 예측하는 데에 점집을 찾는 것은 큰 도움은 되지 않는 것 같다. 시험 합격의 해나 부동산의 매매 시기 같은 것 말이다. 다만 긴 인생의 전체적인 기운에 대한 설명은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평생을 4계절로 나누어 각 계절이 바뀌는 대략의 시기와 흐름은 누구에게 묻든 크게 보아 공통적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성패에 당장 갈급하지 않고 긴 안목으로 삶을 바라 볼 여유를 갖기 위해 점을 본다면 그리 무의미한 일은 아닌 것 같다. 사실 어떤 사람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현재 시간을 어떻게 쓰고 있는가를 잘 관찰해 봄이 일리가 있는 것 같다. 오늘 보낸 하루, 하루가 더해져 결국 미래가 되는 것이 당연하니 말이다.


  점을 몇 번 보고 나서 한 가지 나중에 드는 생각은, 그래도 그들이 말해 준 희망 덕분에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만약에 누군가가 "가세가 필 때까지 최소한 10년은 기다려야 합니다." 했다면 그때도 내가 이를 악물고 10년을 버틸 인내심을 낼 수 있었을까. 4년, 3년, 또 3년 이렇게 잘라 기다리게 한 데에는 그런 큰 의미가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역술가들을 만났던 시간과 비용이 아주 헛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설령 지나고 보면 헛된 희망이었음에 한심해하다가도 여하튼 또 희망의 힘으로 힘든 시기에 내 자리를 무사히 지켜내게 해 준 고마움이 있기 때문이다. 맹신하지 않고 마음의 중심을 잡고 사는 데에 도움이 된다면 그리 해로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맞추고 안 맞추고 와는 별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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