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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Nov 14. 2019

무서운 치과치료가 주는 단상

통증이 주는 신호

  음식을 씹을 때마다 어금니가 아팠다. 평상시에 양치질을 게을리 한 죗값을 치러야 하는 때가 왔음을 알았다. 안 떨어지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어 치과 진료실로 향했다. 신경치료가 필요하단다. 눈을 가린 채 진료석에 누워 입을 벌려 무방비 상태로 속을 보여주는 게 한 편으론 왠지 수치스럽고, 괜한 의료사고나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움과, 날카로운 바늘로 찌르고, 깎고, 갈아대는 기계음들 사이에 온 몸의 세포들이 잔뜩 경직되어서 진료가 끝나고 나면 양 쪽 어깨가 마치 돌덩어리가 된 듯하다. 진료를 받고 온 날 밤은 마취가 풀린 후의 통증에 잠을 못 이룬다. 약이 몸에 간섭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진통제를 먹지 않으니 맥박이 뛸 때마다 통증이 거센 파도처럼 잇몸 주변을 강타한다.


  긴 시간 통증과 씨름하다 보니 그 양상을 관찰하게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통증의 강도가 한결같이 같은 게 아니었다. 마취가 풀린 후 4, 5시간 동안은 어디가 통증의 근원지 인지도 모를 정도로 위아래 턱이 얼얼할 만큼 강하게 욱신거리다가 밤이 되면서는 30분, 1시간 간격을 두고 강하게, 약하게를 반복한다. 다음 날 아침 즈음되면 통증이 거의 사라지고 미약한 욱신거림만 남게 되는 게 패턴이었다. 고통스러운 가운데도 신기한 관찰 결과였다.


  신체적 통증을 겪는 것은 언제나 힘들고 괴로운 일이다. 인간은 통증을 피하기 위해 진통제를 개발하고, 술이나 마약 같은 것들로 일시적으로 도망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통증은 몸의 고마운 반응이다.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겼으니 돌보아야 할 때라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신호에 따라 적절히 몸을 돌보는 것은 더 큰 통증과 병을 예방하는 좋은 방법이기도 하다. 통증에 일찍 반응할수록 치료기간도 짧고 처치도 간단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대개는 첫 신호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몸을 함부로 대하다가 병을 키운 뒤에야 후회를 하며 병원을 방문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곧잘 한다. 혹시 신체적 통증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을 대할 때에도 이와 같지 않을까. 너무 가까워 소중한 지 모르고 초반에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무시하다가 결국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후회하게 된다던가 하는 일 말이다.


  5년을 사귄 연인이 있었다. 소박한 여인은 각종 기념일이나 생일날에도 남자 친구에게 선물을 받기보다는 함께 보내는 시간에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남자 친구는 초반엔 여자 친구를 성심껏 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 친구의 소박한 성품의 배려에 익숙해져 심지어 그녀의 생일까지도 무심히 지나쳤고 급기야는 여자 친구의 말을 진지하게 듣지 않게 되었다. 그는 여자 친구가 자신의 집안 경조사에 꼬박 인사를 챙기는 동안 한 번도 여자 친구의 부모님의 생일을 챙긴다거나 하지도 않았다. 여자 친구는 남자 친구의 심해지는 무심함에 서운함을 토로했지만 남자 친구는 진지하게 듣지 않았고 그러다 결혼 이야기가 오갔지만 이미 여인은 결별을 결심한 뒤였고 결국 그들의 관계는 끝이었다. 남자는 뒤늦게야 후회를 하고 그녀의 마음을 뒤돌리려 애를 썼으나 이미 그녀의 결심은 단호했다.


  결혼한 부부들의 관계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심리적 거리는 가까울 때도, 멀어질 때도 있지만 어느 때고 상대방이 보내는 '나 좀 힘들어.' 싸인은 놓치지 않아야 한다. 이 힘든 때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고 회피로만 일관한다면 언제든 위기의 벼랑 끝이나 상대가 쌓은 거대한 장벽 앞에 선 무력한 자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다는 옛말도 그래서 있나 보다. 그렇지만 또 세상에 어려운 게 아무 일 없는 것 같은데 평상시에 잘하는 거다. 산다는 게 참 머리로는 알겠는데 행하기가 어렵다.  


  세 번째로 치과에 진료받으러 가자니 가기 싫은 마음이 가득했다. 그것도 이번엔 2시간이나 걸린다는데... 오늘은 또 얼마나 아플까 싶어 포기하고 싶고, 회피하고 싶은 마음이 절절하다. 다행히 그래도 가야 한다는 이성이 잘 작동해서 네 번째 진료까지 무사히 받고 한 숨 놓았다. 끝내고 나니 얼마나 홀가분한지! 이제 치아 돌보는 걸 게을리하지 말아야지 굳게 마음을 다진다. 아주 망가지기 전에 내 몸을 돌볼 수 있는 또 한 번의 기회가 주어짐에 감사하다. 오른쪽 무릎도 살살 아픈데, 그쪽도 병원에 가 볼 때가 된 건가... 여기저기 돌봐달라고 보내는 몸의 신호가 달갑지 않지만 그래도 고마워해 보려고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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