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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20. 2019

이 시점에서 글쓰기에 대해

  어느 날부터인지 시나브로 이제 글을 쓰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고, 그 기분을 따라 어설프기 짝이 없는 사념들을 A4지에 메워놓기 시작했다. 쓴 글이 말이 돼던 안돼던 일단 다 메워놓으면 그게 그렇게 뿌듯했다. 뭐든지 금방 지겨워하는 성품이라 미래를 장담할 순 없지만, 여하튼 그 뿌듯함이 좋아 내용의 졸렬함에도 불구하고 계속 쓰고 있다. 쓰다 보니 소재 찾기라던가, 쓰는 과정에 염두에 두는 점, 글을 써서 좋은 점 등 글에 대해 중구난방 생각이 들었다. 한 해가 저무는 연말이라 그런지 부족한 식견과 소견으로나마 그런 것들을 잠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소재는 주로 과거의 경험과 현재 일상에서 겪는 일화들에서 나오는 것 같다. 어떤 일을 겪고 궁금함이 들거나 마음에 남는 어떤 생각을 만난다. 한동안 그 생각을 머릿속에 띄워놓고 살다가 우연히 보던 책이나 영화, TV 프로그램, 뉴스 기사,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연관된 내용을 접하게 되는데 그럴 때 생각이 우후죽순 솟기 시작하고 그걸 글로 옮겨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글로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내가 정말 무엇을 쓰고 싶은지 주제가 가닥이 잡히면 다행히 글이 술술 풀어지고, 쓰고 난 후 뭔가 말끔해지는 기분이 든다. 소재는 있지만 잘 안 써질 때도 물론 많다. 어떤 경험에서 느껴진 게 있어 글로 표현하고는 싶은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명료하지 않을 때 쓰기가 고역이다. 생소한 주제일수록 두서없이 솟는 생각들의 뿌리를 찾아나가는 과정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모든 생각이 서로 얼키설키 연결되어 있어서 이번에 쓰는 글에서는 범위를 어디까지로 할지 정하기가 헷갈리기 때문이다. 어렵게 뿌리를 찾은 후에는 가지치기를 한다. 이번에 내 글에 담아야 할 내용에만 집중하고, 연결은 되지만 핵심을 흐리게 하는 것들은 아쉽지만 냉정하게 쳐내야 요점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평범한 소재들 안에 나만의 시각으로 알맹이를 넣는 일, 상상력과 창의력 부족한 내겐 항상 어려운 일이다. 

 

  글을 쓰면서 염두에 두는 점은 허영끼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걸 늘 잊지 않으려는 것이다. 애정결핍인지, 관종인지, 덮어놓고 쓰다 보면 어느새 은근히 자랑질하고 있는 나를 맞닥뜨린다. 재작년인가 박경리 문학공원에 들른 적이 있다. 공원 내에 길을 따라 걷다가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 같은 게 입간판 같은 곳에 적혀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작가가 되려는 건 타인의 인정을 받아 유명해지고 싶다는 허영에 찬 마음이라는 걸 갈파하신 게 있었다. 애써 파지 않았던 내 마음의 바닥을 훤히 꿰뚫는 따끔한 일침이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허영끼를 내려놓고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솔직하게 쓰려고 노력한다. 어디까지 솔직해야 하는지 종종 갈등하기도 하지만, 솔직함으로써 만나는 타인의 공감은 허영이 만나게 하는 타인의 일회성 눈길보다는 진실하다고 생각한다. 글쓰기가 돈벌이로 이어지지 못하는 처지로서 언제까지 솔직하게 좋은 글을 써보려고 애쓸지 알 수는 없지만, 한 가지 위로로 삼는 것은 베스트셀러가 항상 좋은 책은 아니라는 점이다. 또 많은 좋은 글들과 책들이 주목받지 못하고 흘러가는 게 늘상 있는 일이라는 거다. 멘탈 승리인가? 아무렴 어떤가, 좋은 글을 쓰려고 어쨌든 노력하면 되지...


  글을 쓰면서 좋은 점들이 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중간에 간섭 없이 길게 전달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대화는 핑퐁처럼 주고받으며 말하는 게 생리이고 그게 재미라 한 사람만 길게 말하는 건 금방 지루해지고 다른 이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글은 읽는 독자들이 최소한 몇 분 동안은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마음을 이미 가지고 있다. 그래서 대화 중에 하고 싶은 말이 좀 길어지겠다 싶을 때에는 집에 돌아와 생각을 정리하며 글을 쓰면 좋은 것 같다. 뭔가 글이라는 소통의 도구를 하나 더 가지고 있는 기분이 좋다. 게다가 한 번 글로 다룬 주제는 일단은 그 글로써 사고가 일단락이 된다. 살면서 다뤘던 주제에 생각의 변화가 오더라도 쓴 글의 결과물을 토대로부터 생각하게 된다. 사고의 과정이 좀 압축된달까. 게다가 나의 생각과 행적들이 늘 한 곳에 있으므로 당연히 잘 휘발되지 않는다. 휘발되지 않으니 그 위에 새로운 사고들을 쌓을 수가 있다. 잊는 게 다반사인 나로서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글을 읽어주시는 주변 분들에게 더 이해받는 기분이 든다는 점도 좋은 점이다. 예전보다 뭔가를 설명하기 위해 장황하게 말할 필요를 덜 느끼기도 하고, 더 친밀하게 대해 주시는 것도 참 고마운 일이다. 


  글을 쓰면서 더욱 매진해야 할 부분은 글에 나만의 색깔을 넣는 일이다. 온갖 관념과 경험들이 부유해 떠다니는 세상천지에 나만의 것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과연 있기나 한지 모르겠으나, 그럼에도 그런 것들의 조합이나 표현에 있어서 새로운 관점으로 보기를 더욱 연습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것이 스스로에게 바라는 점이다. 사실 내게 제일 약한 부분이지 않나 싶다. 글 쓴 지 얼마나 되었다고 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게 가당키나 하겠냐만 여하튼 드는 생각은 드는 생각이므로 그것들을 모아 지금 시점에서 한 번 정리한다는 의미로 남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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