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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an 05. 2020

같은 실수하는 내가 싫어져서

  안 그러고 싶지만, 스스로에게 실망하는 마음이 속을 꽉 채울 때가 있다. 자신감이 뚝 떨어지고, 유머감각을 잃게 되고, 납덩이모냥 무거워진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다짐했던 실수를 반복할 때 그렇다.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고 일신 우일신하고 싶은 마음 가득한데, 이 날까지 살아오면서도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한 나를 보며 구제불능인가 싶어서 말이다.


  내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사람이라는 걸 돌연 인지하게 되었던 계기가 있었다. 병원에서 둘째를 낳고 아이에게 젖을 물리려 애쓸 때였다. 한쪽이 반 함몰유두라 갓난아이가 앙 물기가 어려워하던 양을 어머니께서 보시고 타박을 하셨다. "아니, 큰 애때 그런 줄 알았으면, 대비를 했어야지. 애가 힘들어서 어쩌니." 순간 '아, 나는 똑같은 실수를 알면서도 하는구나!' 이런 자각이 이때를 기점으로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그러고 살면서 보니 정말 같은 실수를 참 많이도 하며 살고 있는 내가 보였다. 제일 흔한 게 가족에게든 남들에게든 욱해서 언성 높이는 것, 자랑질하고 싶은 마음을 못 삼키고 눈치 없이 뱉고 마는 것, 등등. 뒤돌아서며 "또, 또..., 또 그랬다. 너 정말 미쳤구나!" 마음속으로 아무리 중얼거려도 반복되는 실수만큼 반복되는 실망감과 좌절감의 파도타기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거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호감 있는 사람으로 남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만, 좋은 감정으로 만나던 사람을 편안한 마음으로 보지 못하게 된 일들이 주기적으로 마음에 머물며 괴로워지곤 한다. 왜 그랬을까 골똘히 이유를 찾아보기도 하고, 내가 너무 과민하게 골몰하는가 싶어 억지로라도 가볍게 흘려보내려고 노력도 해 본다. 그렇지만 그런 생각들 말미에 결과적으로는 공감력 낮은 나의 대인관계의 미숙함이 공통 원인이 아닐까 하는 자책이 든다.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반복된다는 생각에 괴로움이 더해지며 말이다.


  이 괴로움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또 살 궁리를 해 볼 수밖에 없다.


  실수에 관한 말이 있다. <나의 실수엔 엄격하고 남의 실수엔 관대해라.> 괜한 남을 비난하지 말고 똑같은 실수하지 않도록 스스로나 성찰하며 살아라 뭐 이런 뜻 이리라. 그런데 살다 보니 어떤 실수를 한 번만 한다는 건 매우 매우 드문 일이기도 하거니와 실천하기도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인 것 같다. 사람 마음이란 게 살아온 습성이 너무나 강해서 그런 것도 같고, 유혹에 약해서일 수도 있고, 안일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게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심한 바를 바로 실천에 옮기며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스스로가 그럴 수 있다고 자신을 높이 평가할수록 자신의 실체와 기대의 간극이 더 커져 오히려 더 깊은 좌절감과 우울감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원래 약한 사람이라고 받아들이고 인정하려고 한다. 나든, 남이든 알면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게 사람인 거다. 아무리 '다시는 안 해야지.' 스스로 다짐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안일한 마음이 들며 하던 대로 똑같은 과오를 범하는 존재, 그리고는 자신에게 실망하면서 동시에 또 한 번 "다음에는 기필코 다시는!!" 하는 결의를 몇 번이고 다지는 존재. 그게 나고, 그게 사람이라고 정리하기로 했다.


  동네 어떤 그림책 강연에선가 주워들은 이야기도 떠오른다. A가 어느 날 뭔가를 결심했다고 하루아침에 B가 되는 법은 없단다. A가 B가 되기까지는 그 사이에 B가 되고자 끊임없이 마음을 다잡는 수많은 A'와 A", A''', A''''... 들이 있단다. 아무리 노력해도 어쩌면 영영 B는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단다. 그렇지만 A'는 A보다, A" 또한 A' 보다 진일보한 엄연히 다른 존재라는 거다. 맨날 같은 실수를 한다고, 맨날 결심해도 제자리라고 괴로움에 마음만 축 축 쳐지는 내게 얼마나 위로가 되는 귀한 말씀인지.


  힘내서 다시 살련다. 나는 여전히 미숙하고 앞으로도 주욱 미숙하겠지만, 반성하고 성찰하는 의지를 놓지 않는 한 아주 작은 반 걸음이라도 내딛을 수 있다고 믿으며 말이다. 게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나의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너그럽게 좋은 관계를 나눠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한 분, 한 분이 귀하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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