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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an 09. 2020

주민자치회 활동해보니

  낙엽이 제법 쌓여 가던 지난가을, 동네 뒷산에서 초등 저학년 즈음되는 아이들 10여 명이 그 부모들과 반원 형태로 내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올라오는 길에 주워 온 Y자형 나뭇가지에 고무줄을 달며 새총 만드는 법에 관한 나의 설명을 듣는 중이었다. 그리고는 만든 새총에 도토리를 장전해 "다람쥐야, 맛있게 먹어.", "겨울 잘 나고 내년에 만나." 등을 외치며 숲을 향해 날렸다. 한껏 고무줄을 잡아당겼다가 탕하고 튕겨낼 때 그 자유로운 쾌감이 아이들을 휘감는 듯했고, 쏜 도토리가 키 큰 나무들 사이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양을 신기해하며 쫓는 아이들의 눈망울이 반짝였다. 좀 놀아봤던 어린 시절 추억이 떠올랐는지 시범을 보인다며 덩달아 신이 나 옛 시절 재주를 한껏 뽐내는 아빠들도 귀여우시다. 숲에서 나뭇가지 만져 보고, 도토리를 쏘아 날려 보내며 하늘 보고, 아빠랑 아이들이랑 아웅다웅 한 번 하고, 산에 사는 다람쥐랑 청설모 생각 한 번 하고 내려가는 가족들의 뒷모습을 보자니 괜스레 뿌듯했다.  

 

  이 새총 만들기는 우리 동네 주민자치회의 사이좋아숲이좋아 분과가 연중 진행했던 숲 체험 중 '도토리랑 놀자' 프로그램의 일부였다. 이외에도 산의 이곳저곳에서 도토리로 팽이도 만들어 돌리고, 다람쥐들 겨울 잘 나라고 도토리들을 산에 묻어주고, 마지막으로 가족끼리 데크에서 도토리묵무침도 오순도순 만들어 먹었다. 햇살이 눈부시게 따뜻한 어느 가을날, 동네 뒷산에서 가족끼리, 이웃끼리 오붓하게 즐기던 시간들이었다. 나 혼자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인데, 분과원들이 마음을 맞추니 정말 상상에 불과했던 동네 숲 놀이가 현실이 되었다. 우리는 '도토리랑 놀자'말고도 숲 요가와 숲 치유 명상 프로그램도 운영하였고, 주민센터 강당에서는 아카데미 프로그램으로 세법이나 건강관리, 정리정돈, 컬러 테러피 등의 주민 대상 강연도 연 8회 진행하였다. 많은 주민들이 각자의 관심사에 따라 산과 주민센터에 들러 정보를 접하였고 활동을 함께 하였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회의 일을 해본 경험으로 마을 일도 재미있을 것 같은 어렴풋한 추측을 하며 동네의 주민자치회 활동을 시작했다. 한 달에 한 번 전체 정기회의와 분과회의 참여가 뭐 그리 시간이 많이 들겠나 싶어 발을 들여놓았는데, 벚꽃 축제 준비다, 마을 총회 준비다 등등 어느새 빈 틈 없는 스케줄에 정신없이 시간이 가고 있었다. 처음엔 새로 만난 분과원들도 낯설고, 생각보다 내 시간을 많이 내어야 하고, 너무 일중심으로 몰아가는 것 같은 감도 있고, 회의만 했다 하면 자기 말만 옳다고 하는 분들을 보며 머리도 아프고 해서,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 늦은 밤에 귀가하며 혼잣말로 투덜거리기도 하고, 다음 회의는 기필코 빠지리라 다짐도 하며 나름 계산기 두드리곤 했다.


  축제와 총회로 분주했던 봄이 가고, 아카데미와 숲 체험으로 꽉 채운 여름과 가을을 보냈다. 버티다 보니 주민자치회 활동에 좀 익숙해지면서 투덜거림은 점차 들어가고 새로운 것들이 한 둘 눈에 들기 시작했다. 자녀가 고3인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마을 일로 자신의 삶을 당당히 사는 멘탈 갑의 풍류2가 분과 선배 맘들을 보며 '멋지다,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싶기도 했고, 이기적인 세상에 동네의 길 고양이들까지 사랑하는 꽁냥꽁냥 분과원분들의 마음은 어떤 경지인지 헤아려 보기도 했다. 느낀 점들 중 제일 값진 배움은, 세상은 각자의 부족한 점을 메꿔주는 다양한 사람들의 협력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실감했다는 점이다. 우리 동네 인구수는 3만 명에 약간 못 미치는데, 40대부터 70대까지 넓은 연령대의 분들이 다양한 역량과 개성으로 주민자치회 활동을 함께 하였다. 누구는 손재주로, 누구는 아이디어로, 누구는 발품으로, 누구는 전체를 보는 눈을, 누구는 디테일에 정성을, 누구는 홍보로, 누구는 최신 기술력으로, 누구는 흥으로 등등 각자가 가진 것들을 나누다 보면 필요한 부분이 메꿔지며 일이 되어갔다. 사람들 모이는 곳에 소소한 언쟁과 갈등이 없을 수 없지만 서로 자꾸 겪으며 상호 이해의 노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고심 끝에 갈등의 돌파구가 마련되는 일도 지켜보면서 삶의 지혜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부족하지만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며 각자의 강점을 모아 마을 일을 도모하고 실천해낸다는 게 얼마나 신기하고 기분 좋은 일인지, 그것도 내가 사는 동네에서 이웃들과 말이다.


  연말에 한 지인이 1년 간 참여한 여러 가지 활동 중에 어떤 모임이 가장 힘이 되었느냐고 내게 물어보셨다. 잠시 생각해보니 신기하게도 초반에 가장 투덜대었던 주민자치회 활동이었다. 열심히 하시는 다른 분과원들에게 나도 모르게 동화되었는지 투덜대면서도 시간과 노력과 정성을 가장 많이 쏟았고, 그만큼 내가 쓸모 있게 쓰였다는 보람감도 컸기 때문이지 싶다. 나에게 주민센터는 더 이상 각종 증명서나 떼러 가는 곳이 아니게 되었다. 삼삼오오 모여 우리 동네에서 하고 싶은 일을 상상하고, 그 상상을 현실로 옮겨보려고 머리 맞대고 끙끙, 뚝딱뚝딱거리는 우리 동네 꿈공장인 것 같다. 오지랖이 넓어 충동적으로 발을 들였을 뿐인데, 내가 쓸모 있게 쓰이는 게 기쁘고,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게 더 재미있어졌으니 올해도 또 즐겁게 참여해 보려 한다. 사는 재미 하나 더 갖고 싶은 분들, 마을 활동 참여를 적극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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