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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Dec 15. 2019

삶의 여덟 가지 키워드를 고른다면,

박웅현 님의 <여덟 단어>를 읽고

  삶에서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을 여덟 가지로 추려 보라고 한다면 난 무엇을 고를까? 과연 여덟 가지나 될까 싶기도 하다. 보통은 별생각 없이 사니 말이다. 생각하며 사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단 생각하며 살겠다는 꾸준한 의지가 필요하고, 세상일과 자신의 내면에 대해 늘 호기심과 의문을 가지는 습관이 몸에 배어야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의지가 약해지면 곧 촉이 둔해지고 그저 "사는 게 별거 있어.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하며 사는 대로 생각해 버리기로 회귀하기 십상이다.  <여덟 단어>를 읽다 보니 광고홍보 전문가인 박웅현 님은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주변의 일상을 하나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고 끊임없이 파고들며 자문하고, 자답하고자 고전의 지혜를 찾는 사람이라는 게 깊이 느껴졌다. 생각하는 사람으로서의 좋은 롤모델을 또 한 분 만난 것 같아 반갑다.


  생각하며 사는 그가 택한 삶의 키워드 여덟 가지는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귄위, 소통, 인생이다. 아마도 저자에게는 이 목차의 순서가 그의 삶에 중요도의 순서가 아니었을까. 이 순서대로 저자의 경험담과 많은 인용을 들며 자신의 의견을 펼쳐 나간다. 나는 제일 먼저 소통에 관심이 갔다. 어떻게 하면 솔직하면서도 세련되게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지,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하게 깊이 있는 주제를 이야기할 수 있는지가 늘 하는 고민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혹시 그런 내 고민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먼저 펼쳤고, 더불어 박웅현 님의 소통관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그의 소통관은 정리하면 세 가지이다. 첫 번째, 다름을 인정하라. 남과 여, 직장 상사와 직원의 생각 방식은 당연히 다르므로 이를 인정하고 역지사지하는 것이 소통에 큰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두 번째, 맥락을 파악하며 이야기하라. 이것은 누군가를 만날 때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하는지에 대해 파악하는 능력이며, 이는 눈치가 아니라 교양에 가깝다고 말한다. 허영 많은 나는 곧 죽어도 교양 없다는 말은 듣고 싶지 않으므로 이 구절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맥락을 짚으려면 당연히 상대방의 상황을 잘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내 이야기만 하고 싶은 걸 꾹꾹 누르고, 마주 앉은 상대에게 관심 어린 질문으로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뜻밖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듣게 될 때도 물론 있다. 하지만 정말 관심이 잘 안 가는 이야기만 잔뜩 듣고 답답한 기분으로 귀가할 때도 많다. 그렇게 여러 번의 시도로 느끼게 된 바는,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고 살아온 습성이 참으로 뿌리 깊다는 점이다. 일천한 노력으로 소통이 잘 될 리 만무하니 일단은 더 노력해 본다. 박웅현 님의 소통관 세 번째는 생각을 디자인해서 말하라이다. 예를 들면, 히딩크 감독의 [나는 아직도 배고프다] 같은 말인데, 더 이상의 부연설명이 필요 없다. 중요한 경기를 앞에 둔 그의 마음가짐이 명쾌하게 이해가 되는 말로서, 이런 말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다는 것이다. 이런 디자인된 말들은 당연히 즉흥적으로 되지 않는다. 상황에 대한 몰입과 핵심을 뽑아내는 사고의 과정을 거쳐 다듬어진 후의 결과물일 것이다. 결국 소통의 핵심은 생각나는 대로 장황하게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 역지사지와 맥락 있는 대화를 하되, 자신의 의견은 핵심만 뽑아 세련되게 전달하라는 것 같다. 역시 어렵다. 무엇보다 항상 생각하며 살아야 가능한 일이다.


  <여덟 단어>를 읽으며 인상 깊었던 점은 여러 주제에서 교육의 폐해가 다루어졌다는 점이다. 우리의 자존을 높이는데 가장 방해되는 요인으로 비교와 경쟁 중심의 교육을 들었으며, 고전 편에서도 풍요로운 삶을 사는데 도움이 되는 클래식과 명화, 문학들, 역사 유물들의 진정한 가치를 느끼지 못하도록 조장하는 것도 암기 위주의 지식교육이라고 한다. 고전을 외우지 말고 느끼게 하라는 저자의 주장에 100% 동감이다. 본질 편에서도 교육의 본질은 교양과 삶의 태도를 가르치는 전인교육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나 스펙과 학벌 등의 포장에만 연연한다고 한다. 사회에서 경쟁력이 될 실력을 쌓으려면 스펙과 학벌보다 나의 본질을 찾는 게 중요하고, 본질을 무엇으로 할지는 결국 자기 판단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스톱이나 애니팡 게임을 잘하는 건 당장의 스트레스는 풀겠지만 5년 후에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진짜 도움이 될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하는데, 여기서 약간 동감이 어렵다. 고스톱이나 애니팡을 잘하는 건 별로 본질이 될만한 일이 아니므로 빼고 가는 게 옳다고 넌지시 선을 정해주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본질에 대한 자기 판단이란 게 단칼에 무 자르듯 되는 일이 아닐 테니 어쩌면 그 길을 가 봐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인생 편에서 말했듯이, 차선의 선택이라도 최선의 선택으로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면 본질 찾기에서 무엇을 선택하든, 설령 그 길이 많은 이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결정을 존중해 주는 것이 성숙한 자세가 아닐는지.


  그밖에 행복을 유보하지 말고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 살자는 현재 편과, 무엇이든지 애정을 가지고 다른 관점에서 깊이 봐야 한다는 견(見) 편, 검증되지 않은 문턱의 권위 즉 의사나 판사 같은 직군, 직함의 권위에 굴하지 말라는 권위 편, 대체로 공감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살면서 갖춰야 할 또는 중요하다고 여기는 가치들은 많겠지만 그것들을 모두 완벽하게 갖추거나 실천하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그래도 세상이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도 그럭저럭 돌아가는 건, 부족한 사람들끼리 서로의 결핍을 보듬고 메워주며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마음 저변에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사랑의 마음이 있는 것 같다. 온전한 사랑은 너무 어려워, 집착하고 상처 주고받기에 급급한 사랑밖에 못해 좌충우돌하는 게 우리네 삶이지만 그래도 그런 사랑마저 못한다면, 또는 그런 사랑의 마음을 못 갖게 된다면 글쎄... 더 살고 싶은 이유를 또 찾을 수 있을까?

그러니 내 삶의 중요한 키워드들을 정해본다면, 첫 번째는 사랑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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