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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수 Jun 11. 2020

홀로 산행하면 알아지는 것들

코로나로 집에 오래 머물다 보니 아무래도 운동량이 대폭 줄어들었다. 군살이 슬슬 붙기 시작하고, 손발이 차가워지더니 급기야 오랜만에 들린 주민센터에서 체온을 재었는데, 35. 7도란다. 같이 잰 다른 이들은 모두 최소한 36도 이상인데, 혼자만 생각지도 않은 저체온에 화들짝 놀랐다. 찾아보니 35.8도부터가 65세 이상의 체온 범위란다. 소화도 잘 안되고, 흰머리도 급격히 많아지고, 기억력도 예전 같지 않아 착실하게 하루하루 늙어가고 있는 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거의 20살이나 많은 노인의 체온이라니. 정수리에 얼음물 한 바가지 들이 부은 것 같다.


아침에 눈을 뜨자 "산에 가야겠다!" 마음이 불끈 솟았다. 사는 동네 뒤편에 높지는 않지만 두 어시간 산책하기에 훌륭한 숲이 있다. 중간고사 기간이라 등교와 하교가 제각각 들쭉 날쭉인 아이들에게 일과를 물어보니 오전 8시부터 10시까지 잠시 집을 비워도 될 듯했다. 오늘처럼 딱 정해진 시간만 여유가 나는 날에는 동행할 누군가를 물색하기보다 혼자 훌쩍 다녀오는 게 수다. 아침 설거지를 얼른 마무리하고 모자와 물을 챙긴다.


실로 오랜만에 아침 숲으로 들어간다. 낮엔 벌써 뜨겁지만, 아침 기온은 아직까지는 꽤 선선하다. 초록잎들 무성하게 우거진 숲길에 내딛는 걸음마다 빽빽이 그늘 드리운 키 큰 나무들이 뿜어내는 맑은 산소를 폐 속 그득히 담아본다. 오솔길 옆 개망초들 사이를 한들한들 떠도는 흰나비 한 마리가 잠시 잠깐 내 손 옆으로 동행해주는 게 정겹다. 5월 아카시아 향은 온데간데없이 어느새 6월 진한 밤꽃 향으로 잔잔하다. 뻐꾸기가 뻐꾹, 뻐꾹 간격을 두어 청량하게 울어대고, 길에서 제법 떨어진 숲 저편에서는 모습을 쉬이 드러내지 않는 꿩이 짝꿍을 찾는 건지 끄어억꺼억 소리가 우렁차다.


산에 혼자 오면, 산을 오르는 발걸음도 바쁘지만 그동안 쓰지 않던 오감이 비로소 깨어난 듯 더 바쁘다. 땀이 이마에서 목으로 방울방울 흘러내릴 때쯤 숨을 고르고 벌게진 얼굴을 잠시 식히기 위해 오솔길 옆 벤치에 앉는다. 고개를 들어 물 한 모금 마시며 나뭇가지들 사이에 파란 하늘 한 번 감상하고 고개를 내리노라면 길 맞은편 넓적 바위에 감회색 산비둘기 한 마리가 지나가는 행인들 숫자라도 세듯이 다소곳이 앉아 머리만 주억거린다. 신기한 녀석이다.


다시 부지런히 걸어 정상으로 향하는데 문득 길 한가운데에 몸을 뒤틀고 있는 지렁이 한 마리가 눈에 띈다. 엄마 말 안 듣는 청개구리라도 된 냥, 흐리지도 않고 햇볕 쨍쨍한 날에 지렁이라니. 햇볕에 바싹 구워진 모래가루를 뒤집어쓰고 버둥거리며 괴로워하는 녀석을 보니 지나쳤던 발걸음을 되돌릴 수밖에 없다. 손으로 집어 길 가 풀숲 그늘로 옮겨주고 가져온 물로 듬뿍 녀석의 몸과 주변 땅을 축여준다. 잘 살기를 마음속으로 빌어주고 괜히 발걸음도 가볍게 자리를 뜬다.


드디어 정상에 올라 전망대에서 구름은 좀 있지만 언제 봐도 멋진 남산과 한강변의 전경을 내려다본다. 산과 빌딩 숲과 어우러진 푸른 강은 언제 봐도 생동감있게 시원하다. 미국의 그랜드캐년과 뉴욕시의 전경도 본 적 있지만 글쎄, 내 나라가 아니어서 감흥이 덜했는지... 서울살이 20여 년 만에 서울 사람 다 되었나 보다. 한강변 풍경이 볼 때마다 정이 간다.


이제 돌아가는 길. 출발할 때보다 훨씬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을 내려오면서 앞선 노부부의 뒷모습에 가까워진다. "어, 여기 뽕나무가 있었네. 어, 뽕 하나 저기 있다." 검붉게 탄 뒷목에 선 굵은 주름 있는 아저씨가 잠시 멈추고 몸을 돌려 길 옆 나무 위를 손으로 가리킨다. "에그, 또 그러네. 얼른 갈 길이나 가요." 아저씨를 뒤따르던 아주머니는 자주 있는 일인 듯 아저씨를 가볍게 타박하고 갈길을 채근한다. 별 대응 없이 앞장선 아주머니를 순순히 따라나서는 아저씨를 보며 늙음은 대개 완고하고, 까탈스럽고, 추한 것이라던 평소 생각이 어쩐 일인지 힘을 잃는다.


어쩌면 '굵은 주름에 힘을 빼는 순간 늙음은 잘 익은 누룽지처럼 한없이 구수할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새로운 생각이 머리에 들며 아저씨 뒷모습에 아버지의 뒷모습이 겹쳐진다. 평생 동안 목에 힘줄 줄만 아셨던 분이, 노년에 지병으로 기력이 쇠하시고 자식들도 당신 마음대로 안되었다고 노상 속상해만 하시는 아버지. '아버지도 이제 삶의 무게를 좀 내려놓으시고, 남은 삶 동안 좀 더 가벼운 이야기들을 좀 더 많이, 가족들과 즐겁게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아련하게 가져본다.


땀을 흘리고 난 후에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산을 내려온다. 산에 오르지 않으면 옆에 함께 사는지도 곧잘 잊어버리는 새와 곤충들과 작은 동물들, 꽃과 나무들에게 같은 터전을 나누며 살아가는 생명체로써의 공존감에서 비롯되었는지 새삼스럽게 고마워진다. 심지어 생명이 없는 바위와 돌탑까지도 언제나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음이 고맙다. 산은 어느새 생명의 충만함, 삶의 충만함을 안겨주고, 나는 덕분에 또 살아갈 힘을 얻는다.


혼자 하는 산행은 계획하지 않았던 뜻밖의 생각과 만나는 길이기도 하다. 내가 낯선 아저씨를 보고 아버지를 겹쳐 떠올렸 듯이 말이다. 뭔가 생각이 두서없을 때, 새로운 돌파구가 찾아지지 않을 때 산에 가면 생각의 본질과 껍데기가 쉬이 나눠진다. 단순 명료해지는 사고 역시, 생명감 가득한 숲의 오묘함 덕분이 아닐까 싶다.


자주 찾았던 산이었는데, 왜 한동안 잊고 살았나 싶다. 이제라도 날이 더 더워지기 전에 자주 산에 올라야겠다. 땀과 함께 생각의 찌꺼기들을 배출해내고, 한층 가벼워진 몸과 마음으로 재생되어 돌아오는 곳. 활력은 물론 고즈넉한 고독 속에 삶의 의미까지 돌아보게 해주는 산이 거기 있어 정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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