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em 03.
소통이 되었느냐 아니냐는
말하는 당사자가 아니라
듣는 상대에 의해 결정됩니다.
<마흔, 마음공부를 시작했다> 김병수
나의 '옳음'보다 '마음'을 말하자
"네가 알긴 뭘 알아"
"난 2번 말 안 할 거야"
"들으려는 자세가 안되어있어"
"내 말 들어, 이게 맞다니깐?"
이런 말들은 한 번쯤 들어보기도 하고, 직접 말해 봤을 수도 있다. 이러한 말들의 기저에는 '내가 하는 말들이 맞다'는 무의식 전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과연 나의 '옳음'이란 무엇인가? 내가 옳다고 하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 그렇다면, 당연히 상대방이 주장하는 '옳음'도 옳은 것은 아닐까? 우리는 착각한다. 내가 옳다고 믿는 그 기준이 상대의 기준에서도 옳다고 말이다. 항시 아닐 수도 있음을 잊지 말자.
대화와 소통이라는 이름 하에 은연중에 "이렇게 하는 게 맞지", "저게 맞아" 라며 옳다, 그르다의 판단을 내세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맞다"와 "아니다", "잘했다"와 "못했다"를 따지려고 하면 상대를 평가하는 일방통행 자세이다. "나는 맞고, 너는 틀렸어"라고 말하는 건 답안지 채점 때나 하는 말이다. 지위의 차이, 경험의 차이, 학벌의 차이 그 어떤 이유에서든 무조건 강요하는 듯한 말의 태도를 취하고 있다면 다시 돌아보자.
만약, 상대와 대화 중,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 말하는 상황이라면,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나의 깊은 감정은 무엇인지 다시 돌아보아야 한다. 내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이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예로 배우자가 양말을 아무렇게나 벗어놓아, 양말을 빨래바구니에 넣으라고 여러 번 말하는 상황이 있다고 하자. 그만하라고 여러 번 말해도 상대는 변화가 없다. 배우자는 그냥 아무 의미 없이 한 결혼 전 습관이었음에도, 듣는 입장에서 가르치려 하고, 혼내는 듯한 태도라고 받아들였다면, 책의 저자가 말한 것처럼 두 사람 사이에 소통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울 것 같다.
요구하는 입장에서는 상대방의 그런 행동이 멈추는 것을 바라고 말하는 것이지만, 나는 그 행동을 고쳐주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상대에게 선생도 아니고, 반려동물 훈련사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상대는 내 학생도, 반려견도 아니다. 단지, 나는 더러운 양말이 아무렇게 뒹굴면, 마음이 힘들다고 상대에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상대는 직접 자신의 행동을 돌아볼 것이다. 상대의 어떤 행동으로 인해 내 감정이 힘들다는 것이 주요한 포인트일 수 있다.
결국, 우리는 내 생각과 가치관에선 옳은 것도 상대는 다른 기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상대와의 대화에서 나의 기준과 잣대에 맞춰 강요하듯 말하는 것은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 태도이다. 서로를 동등한 관계가 아닌 상하 서열을 가지고 나의 옳은 생각을 가르치려 하는 것이다. 가르침을 전달하고 받는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대부분 동료, 고객, 가족, 친구, 지인 등으로 이루어진 일상 관계에서 이러한 태도를 자주 보인다.
대화를 떠나 소통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나의 옮음만 강조해서 상대방에게 말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소통을 할 때도 상대의 행동에 대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을 말하는 연습을 해야 상대방도 귀를 여는 자세를 보일 것이다.
존중의 소통 방법
서구권 드라마에는 이런 장면이 정말 자주 나온다. 어른들이 청소년이나 아이뿐만 아니라 같은 어른들끼리도 "그 문제에 대해 말하고 싶어?", "언제든 이야기하고 싶으면 말해도 괜찮아"라고 묻는다. 이런 대사는 관계에 대한 태도를 잘 보여준다. 지상파 드라마 50% 이상 시청률이 나오던 시기부터 봐오던 한국 드라마와는 정말 차이가 있는 부분이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상대의 고민과 아픔을 헤아리고, 대화를 해도 괜찮을지 묻는 태도는 경이로운 수준이었다. 한국어로 이런 말을 하면 낯간지러워 나도 선뜻 꺼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이처럼, 존중하며 소통하는 법이란 상대의 문을 노크하면, 상대가 문을 직접 열어주는 것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소통이라는 것은 상대도 나도 서로를 마주 보며,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에 초첨을 맞춰야 한다. 들으려고 하지 않는 상대와 소통하고 싶다면 기다릴 줄 알아야 하고, 상대의 시선에서 생각해 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경험이 적은 것 같다고 생각되는 상대와 소통할 때는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하되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먼저 묻고 듣는 자세를 보여주어야 한다. 성인뿐만 아니라 아이와 대화할 때도 이런 존중이 필요하다. 아이는 어리기 때문에 아이들이 하는 말들이 옳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하는 대목이다. 오히려 더 순수한 날 것 그대로의 사실일 수 있다.
나는 어린아이들이나 직장의 후배 동료들 한테도 항상 배울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연차를 내세우며 내 기준의 옳음을 강요하는 태도로 소통하지 않는다. 경청하고, 직접 해보게 하는 방식을 취했다. 방향만 이끌어 주고, 칭찬해 주는 것이 선배로써, 팀의 리더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결국, 후배와 나, 회사 입장 모두 윈윈 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자부한다. 어느 순간, 헤어짐이 왔을 때, 나와 같은 선배가 되고 싶다는 그 후배의 마지막 인사말이 오늘 나에게 용기가 되고, 위로가 되는 것을 보면, 소통은 결국 마음이 마음에 닿는 일이 아닐까 싶다.
주위에 문이 닫혀있는 상대가 있다면 노크해 보자. 문을 여는 것은 내가 아니라, 상대라는 것을 명심하자. 문 닫히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먼저 문을 열고 다가오는 횟수가 많아진다면 소통이 편해졌다는 뜻이 아닐까. 내가 옳다며 문을 강제로 열려고 하지 말자. 강제로 연 문에 상대는 놀라서 창문 밖으로 달아나 버릴지도 모른다. 아니면, 자신이 먼저 그 부서진 문에 다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