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em 05.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원한다.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은 사람이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고통은 인생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영원한 행복은 신기루와 같다.
<멘탈을 회복하는 연습> 데이먼 자하리아데스
행복의 가격
매일매일 복권에 당첨된다면 어떨까?
인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이 즐겁고, 행복함이 가득할까?
만약 1,000원씩 당첨돼도 괜찮은가? 아니면 어떤 날은 100만 원, 또 어떤 날은 1,000만 원이 당첨된다면 어떨 것 같은가? 매일 정해진 금액으로 당첨되면 즐겁겠지만 복권 특성상 금액을 미리 알 수는 없다.
나에게 당첨 금액이 중요한가, 아니면 매일 당첨된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한가? 어떤 것이 더 나를 사로잡는지 생각해 보자.
실제로 나는 1,000원 주고 산 즉석복권이 계속 당첨되는 일을 맛봤다. 당첨된 금액만큼 계속 같은 즉석복권으로 교환했는데, 그중에 한 두장은 자꾸 당첨되는 것이다. 덕분에 설레는 마음으로 긁는 재미를 며칠 동안이나 느낄 수 있었다. 천 원, 이천 원, 오천 원의 소액 당첨 확률이 로또보다 낮다곤 하지만 몇 번이나 반복되다니 참으로 신기한 경험이었다.
1일 차: 1,000원
2일 차: 5,000원
3일 차: 2,000원
4일 차: 5,000원
5일 차: 2,000원
6일 차: 2,000원
7일 차: 2,000원
그렇게 나의 일주일간의 꿈같은 시간은 마지막 복권을 긁고난 후, 드디어 끝이 났다. 내게 남은 것이라곤 0원도 아니었다. -1,000원이었다. 그러나 나는 일주일 만에 끝난 19,000원어치의 행복—아니, 1,000원의 행복이었을까. 단돈 1,000원으로 7일 동안 자그마치 168시간의 기쁨을 얻을 수 있었다.
나는 몇 번이나 새 차를 탔고, 볕이 잘 드는 작은 집에서 지냈고, 가고 싶었던 여행도 떠났고, 지긋지긋한 빚도 말끔히 갚았다. 집에 굴러다니는 작은 동전 하나로 복권을 긁으며 행복한 상상 속에서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꽉 차버린 풍선이 결국 터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내가 1,000원을 주고 산 건, 복권이 아니라, 풍선처럼 부푼 나의 기대와 희망이었다. 행복한 꿈이 단번에 헛된 꿈이 되어버린 순간이었다. 남은 당첨 금액이 없었기 때문이다. 매일 당첨이 반복될 땐, 기쁨이 중요했지만, 돈으로 치환되지 못한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을 땐, 당첨 금액이 중요했다. 행복은 저자가 말한 신기루처럼 보였다가 안보였다.
만약 1,000원이 매일 당첨된다면 1년에 365,000원도 받을 수가 없다. 당첨된 1,000원으로 새 복권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권을 사지 않고, 당첨이 될 수는 없다. 그러나, 행복한 상상은 8,760시간 동안 할 수 있다. 그러다, 어떤 날에 100만 원이 당첨된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까? 당첨된 100만 원 중에 얼마큼 새 복권을 살 것인가—구매 제한이 없다는 가정하에 여러 장을 살 것 인가? 아니면 어차피 매일 당첨된다는 가정이 있으므로 단 한 장만 살 것인가? 우리는 분명 여러 장을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신기루를 실제로 존재하는 곳으로 만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어떤 금액이 당첨되든 상상의 시간은 같다. 다만, 당첨 금액이 클수록 상상의 크기가 점점 커질 것이다. 그런데 과연 행복의 크기도 커질까? 풍선처럼 터져버릴까 두렵진 않을까? 얻어 본 적이 없는 이야기이기에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그런데 왜인지 물음표는 생긴다.
어쩌면, 행복은 풍선을 가득 채우지 않았을 때, 신기루는 신기루로 남겨 놓았을 때 행복의 가치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미지의 영역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은 돈과 등호(=) 관계가 될 수 없다. 아직 당첨 여부를 알 수 없는 복권을 들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포켓 안의 즐거움 꺼내 쓰기
매일 복권을 긁어 사는 사람들의 세계를 다룬 이야기 소재가 생각났다. 당첨된 금액은 하루가 지나면 소멸된다. 어떤 날은 0원으로 살아야 하고, 또 어떤 날은 최고 금액이 당첨되어 그 돈으로 하루를 살 수 있다면 과연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최고급 호텔에서 최고의 만찬을 즐길까? 아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일, 모레, 그 언젠가 또 당첨될지 모르는 날까지 버틸 수 있는 복권을 미리 사놔야 하는 것은 아닐까? 매일을 불안에 떨며 말이다.
드라마 '오징어게임 시즌2'에서 나온 노숙자들의 '빵과 복권' 선택 장면 중, 대다수가 선택하는 복권은 희망의 끈 같은 존재였는데, 내가 상상한 이 세계에선 불안과 두려움의 존재가 되어버렸다.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의 불안을 희망으로 덮으며, 소소한 즐거움을 위해 매주 복권을 구입한다. 그런데 만약, 즐거움이라는 것 자체를 돈으로 살 수만 있다면 얼마의 비용을 지불할 의사가 있을까.
우리는 많은 즐거움과 재미를 위해 비용을 아낌없이 지불한다. 쇼핑, OTT구독료, 배달비, 비행기 티켓, 자동차, 새 집까지. 생활에 필수인 것 외에도 나의 만족과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돈을 소비한다.
그러나, 즐거움도 돈으로 살 수 있는 세상이 있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즐겁지 않은 채 하루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마치 시간이 곧 생명과 화폐가 되는 세상 속에서, 삶과 희망을 위해 처절한 사투를 그린 영화 '인 타임'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에서 시간이 부족한 주인공들은 희박한 미래를 찾기 위해 즐거움 따위 누릴 시간조차 없다.
그렇다면, 대가를 지불해야만 얻는 소비가 아닌, 즐겁고 싶을 때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즐거움'이란 아이템을 주머니에 넣고 다닐 수 있다면 어떨 것 같은가. 나는 풍요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
복권처럼 기다림을 통해 얻는 즐거움이 아니라, 포켓 안에 넣어둔 스마트폰을 꺼내듯, 필요할 때마다 소소한 기쁨들과 즐거움을 떠올려 보면 어떨까? 햇살 따뜻한 산책길, 친구가 보낸 메시지, 반려견의 스트레칭 같이 가격표가 붙지 않은 것들 말이다. 이처럼 즐거움이란 언제 올지 모르는 기대를 하며 대기하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일상을 발견하고 꺼내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몇 해 전, 동료와 함께 업무에 필요한 빅사이즈의 소품을 주문한 적이 있었다. 그 소품이 사용되어야 하는 날짜가 며칠 안 남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막상 받은 택배상자를 열어 보고 우리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주문을 실수한 바람에 초소형 사이즈로 잘못 배송 온 것이었다. 시간이 없어 발로 뛰어야 하는 업무상 차질이 발생한 엄중한 사건이었지만, 동료와 나는 인터넷에 보이는 이미지만 보고 선택한 우리의 과오 앞에 쓰러지고 말았다. 큰 소품이 들어있어야 할 박스 안에 뜬금없이 초소형 물건이 들어있으니 말이다. 마냥 즐거운 상황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우리는 순간의 당황스러움을 재미로 꺼냈다.
나무위키에서 '즐거움은 행위 그 자체, 또는 상태로 인한 행복'이라고 설명한다. 즐거움이란 항상 유쾌할 때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길을 걷던 두 친구 중 한 명이 넘어져서 다리에 상처가 났다고 해보자. 다치고 아픈 고통이 있어도 자신의 발에 걸려 넘어지는 상황 자체가 재미있어 즐거웠던 순간으로 기억에 남을 수 있다.
저자는 언제나 행복하고 싶다는 기대를 놓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멘탈이 바스러졌을 때,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줄 아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행복을 포기하라는 말이 결코 아니다. 그러나 삶을 살아가면서 언제나 행복할 수는 없을지언정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즐거움마저 신기루로 두고 싶지 않다.
즐거움은 행복으로 가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퍼즐 조각이다. 밋밋했던 일상에서 당첨 순간을 만들어내는 역할로 제격이다. 매일 포켓에서 즐거움 한 조각을 꺼내 하나씩 이어 맞춰나간다면, 기다림으로 생성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욕심을 냈다. 장바구니에 즐거움의 조각들을 한가득 담았다. 그렇게, 스스로 복권을 당첨시키는 삶을 시작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