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버의 연봉명세서

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19

by 이루나

쌀쌀해진 날씨는,

성과 평가 시기가 다가오고 있음을 알렸다.


강가 마을, 생태보호 회사에 다니는

'비버'는 매년 열심히 둑을 쌓았다.


하천구축 담당 비버는,

강한 이빨로 나무를 갉아 단단하게 둑을 쌓고,

진흙으로 새는 틈을 메우고,

끊임없이 보수하며 둑이 붕괴되지 않도록 관리했다.


나뭇가지 하나를 어떻게 놓는지에 따라

댐과 하천이 범람하기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끈기를 가지고

쉼 없이 반복해야 하는 작업이다.


올해 여름은, 갑작스러운 호우로

위험천만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성실한 비버는 집요했다.

밤새 불어난 강물을 붙잡기 위해

단단하게 재공사하고, 쉴 새 없이 헤엄쳤다.


묵묵히 일한 비버 덕분에,

강물의 흐름은 다시 안정되었고,

재난을 최소화했다.


비버는 연봉명세서에

올해 성과가 반영되기를 간절했다.

"이번엔 성과가 좀 반영되겠지?"


비버는 떨리는 마음으로

연봉명세서를 마주했다.

숫자는 고요했다.

평화로운 물길처럼 잔잔했다.


비버의 평가 코멘트는 늘 같았다.

"충실하게 본인의 임무를 다함"


비버가 담당하는 일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히려, 한 번의 실수가

크게 드러나기 때문에 조심해야 했다.


그렇게 비버의 업무는,

늘 물 밑에서 진행되었다.


반면,

옆부서 '수달'의 평가는 달랐다.


홍보담당 수달이,

'생태계 캠페인 조회수 2000만 달성'으로

추가 보너스가 지급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귀여운 얼굴과

유선형의 매끈한 몸을 가진 수달은

뛰어난 수영 실력을 뽐내며,

특유의 친화력으로 물고기 먹방을 선보였다.


최상위 포식자인 수달은

하천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조절하기 위해,

크기가 큰 외래 어종을 위협하고,

작은 어종은 보호하는 캠페인을 펼쳤다.


화면 속 수달은 물 위에서 웃으며

"지속 가능한 강을 함께 지켜요!"라고 외치고 있었다.


비버는 이번 성과평가가 야속했다.

'안전하게 물 길을 관리한 건 난데,

수달은 편하게 물 위에 누워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네.'


수달은 성격도 워낙 사교적이어서,

회사에서 아이돌 뺨치는 인기도 누리고 있었다.


그 정도로 수달은

반짝이는 존재감을 드러냈다.


점심시간.

수달이 다가와 비버에게 말을 건넸다.


"비버님, 올해도 물길 완벽했어요.

덕분에 영상 찍기 진짜 편했어요!"


"비버님 아니었으면,

캠페인은 생각도 못했어요."


비버는 수달의 말에 생각했다.

'그래,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생태계 보호에 보탬이 된 거야.'

'다만, 숫자로만 증명되는 게 아쉽네..'


비버는 연봉명세서를 다시 열었다.

특별 성과급은 없었고,

숫자도 여전히 그대로였지만,

이번엔 다르게 보였다.


비버는 더 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대신,

내년 목표를 구체적으로 세웠다.


둑 붕괴방지 유지율 80% →100%

둑 건설 개수 1개 추가

물길 흐름 지수 200% 향상


그리고,

커뮤니케이션 설득 능력 향상


비버는 달빛이 비친

물 표면에 꼬리를 내리쳤다.

"찰싹—"


"내년엔, 내 성과를 드러내고,

물길에 빛을 내는 법도 배워봐야겠어."





물 위의 반짝임이 있다면,

물 밑의 흐름도 함께 공존한다.


모든 일은 그렇게 같이 존재한다.


세상이 아무리 뛰어남만을 주목해도

보이지 않는 자리를

묵묵히 지키는 이들도 많이 있다.


덕분에 우리는,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하루를 보낸다.


오늘도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손끝으로

세상의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의 연말이 다가오기 전,

각자의 모든 자리에서,

담담히 일터의 하루를 지탱하는 모든 이들이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