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의 퇴사 사유서

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18

by 이루나

청개구리는 늘 '반대'로 살아왔다.

"굴개굴개"


공부하라고 할 땐, 놀았고,

자라고 하면, 밤을 새웠다.


항상 '고집불통'이었다.


청개구리는

어른들의 말이 귀에 남았었다.

'그래서 네가 늘 제자리인 거야.'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였던

청개구리는 생각했다.

'반대로 살아도 제자리인가 봐.'


그래서 이제부턴,

'순응'해보기로 결심했다.


상사가 말하면 고개를 끄덕였고,

회의시간엔 '좋은 것 같습니다.'라며 동의했고,

다른 업무를 시켜도 '알겠습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한 동안 고요하게,

물결 하나 일어나지 않았다.


[1]

청개구리는

출근길이 멀어 아침마다 서둘렀다.

연못에 띄어진

잎사귀를 몇 번이나 옮겨 뛰어야 했다.

미끄러운 논두렁길도 지나야 했다.

매번 열심히 점프했다.


그러나,

도착할 때쯤엔 이미 지쳐있었다.


너무 멀었다.


[2]

밤새워 준비한 보고서를 상사에게 퇴짜 맡은 날.

선배와 동료들이 숙덕숙덕거렸다.

왜일까, 기분이 이상했다.


청개구리는

화장실에서 몰래 조용히 울었다.

"개굴... 흡"


아니, 울음이라기보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서러움이 새어 나오는 소리였다.

가까스로 안정시킨 청개구리는 자리로 돌아갔다.


창피함이 몰려왔다.

그래서,

늪으로 숨어버리고만 싶었다.


[3]

어느덧,

순응하는 직장생활이 익숙해지자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끔,

밀웜 보너스가 들어오면

청개구리는 잠시 늪을 잊었다.

"그래, 맛난 먹이가 최고지."

"개굴—"


그렇게,

하루하루 또 견뎠다.


[4]

한 번은 외부미팅을 갔다.

그런데,

황소개구리 회사에서 이미 승기를 잡은 듯했다.


줄지어 앉은 큰 덩치들 사이에 껴서

청개구리의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다.


돌아오는 길,

청개구리는

울음이 목구멍 끝에서 맴돌았지만,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그날의 울음은

'개굴' 대신 '꿀꺽'이었다.


[5]

어느 날, 회의에서

동료가 낸 의견에 대해 상사가 물었다.

"청개구리씨, 다른 의견 없어요?"


청개구리는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닫았다.

'괜히 말했다가 또 튄다고 하겠지?'

"네, 없습니다."


그렇게 매번 순응했다.


지나가던 동료가 말했다.

"청개구리씨, 요즘 조용해서 좋아요."


'좋다는 게, 무슨 의미지?'

'칭찬일까? 길들여진 건가?'


아,

"내가 나답지 않았구나."


[6]

그날은 비가 왔다.

창밖에서 들리는 빗소리에,

청개구리의 몸이 자꾸 들썩였다.


상사가 새 아이디어를 요청했다.

청개구리는 아이디어가 샘솟았다.

신나게 일을 마무리했다.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돌아온 상사의 답변은 예상과 달랐다.

"이게 왜 필요하죠?"

"원래 하던 일에 집중합시다."


늦은 귀갓길 밤.

비는 세차게 내렸고,

청개구리는 간신히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개굴개굴개굴... 굴개굴개... 굴개..."


빗소리보다 커다랐던 목청은

한참이 지나서야 잦아들었다.


그만 울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하고 싶었다.


청개구리는 폴짝 뛰었다.

멀리 가진 못했지만,

"첨벙—"

작은 물결이 퍼졌다.


'그래,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지.'



퇴사 사유:

반대로 살았더니 피곤했지만,

순응하니 더 피곤해졌습니다.


이제는 반대도 순응도 아닌,

그냥 제 방향으로 가보려 합니다.


퇴사일: 다음 비 오는 날


서명: 청개구리 올림.



청개구리는 오늘, 앞으로 뛰었다.

"점—프"





"누구를 위한 방향"인 것인지의 문제이다.


내가 향한 방향이,

정말 나의 것이었을까?


저마다의 퇴사 사유가 어떠하든,

"자신만의 방향을 찾는 일"임엔 틀림없다.


'반대'는 때론 반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용기의 다른 이름일 수 있다.


중요한 건,

'뛰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뛰었다고 해서,

'제자리'인 건 아니다.


그렇게,

자신을 향해

한 번은 뛰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