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짧은 우화 #10
"아—악! 내 월급 어디 갔어!"
짧은 앞 발로 두 볼을 감싼,
햄스터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 한가운데 놓인
텅 빈 해바라기씨 자루.
며칠 전까지만 해도 빵빵하게 차 있던
햄스터의 소중한 '월급'이었다.
평소엔 펠릿 사료만 신중하게 골라 먹고,
해바라기씨는 따로 모아,
'씨앗치료'를 하며 늘 행복감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자루는 텅 비어 있었다.
"꺄아아악~!!! 내 월급이 사라졌어!"
"내 작고 소중한 해바라기씨..."
햄스터는 발을 동동 구르며
집 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다.
이불속, 터널 속, 쳇바퀴 안쪽,
사막모래 속, 나무톱밥 아래까지,
온 집안을 몇 번이고 헤집었다.
햄스터는 아무리 찾아도 해바라기씨가 안보이자,
이웃 친구들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용의자는 총 3명.
늘 분주하고 말 많은 앵무새.
소리소문 없이 다니는 고양이.
마지막으로, 얼마 전 이사 온 로봇청소기.
햄스터는 짧은 앞 발로
머리를 감사 쥐고 고민에 빠졌다.
'분명, 누가 훔쳐간 거야.. 도대체 누구지..?'
햄스터는 먼저, 앵무새의 집을 찾았다.
앵무새의 집엔 해바라기씨 껍질 흔적이 안보였다.
"앵무새야, 혹시 우리 집 해바라기씨 봤어?"
앵무새는 깃털을 세우며
나뭇가지 위를 왔다 갔다 움직이며 말했다.
"씨앗! 씨앗! 누가 먹었다! 누가 먹었어!"
햄스터는 앵무새의 말에
씨앗을 도둑맞았음을 더 확신했다.
다음은 고양이.
햄스터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큰 소리로 물었다.
"고양이야, 누가 내 씨앗 훔쳤는지 봤어?"
"혹시, 너는 아니지? 네 털이 여기 떨어져 있어..."
고양이는 귀찮다는 듯,
꼬리만 살짝 움직이다 자리를 피했다.
햄스터는 대답 없는 고양이가 의심스러웠다.
그러다,
로봇청소기가 윙— 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햄스터는 매일 정확히 10시마다,
집 주변을 지나가는 로봇청소기가 생각났다.
"엇! 로봇청소기 너지?"
"네가 내 해바라기씨 다 먹은 거 아냐?"
햄스터는 로봇청소기 위에 올라타 물었지만,
원하는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삐— 제가 답을 찾지 못했어요.
충전을 위해 돌아갑니다."
햄스터는 탐문에 지쳐 누워
가만히 기억을 더듬었다.
'며칠 전에는 쳇바퀴 돌고 너무 힘들어서 한 줌 더 먹었고..'
'그제는 스트레스받아서 이빨갈기하느라 먹었고..'
'어제는 가만히 TV 보면서 하나씩 꺼내 먹었는데..'
햄스터는 뭔가 이상했다.
어젯밤, 해바라기씨 자루 앞에 앉아서
한 톨 한 톨,
남김없이 다 먹었던 것이 그제야 기억났다.
"이럴 수가.. 진짜 범인은 나였어..."
"내가, 나도 모르게 그렇게 다 먹었다고..?"
햄스터는 볼을 감싸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햄스터의 볼이 유난히 통통했다.
'응?... 설마?'
양 볼을 눌렀더니 해바라기씨가 우수수 떨어졌다.
'뭐야, 내가 언제 이걸 다 넣어놨지?'
'내 월급을 내가 다 먹은 거였다니!'
쏟아진 해바라기씨를 보며,
햄스터는 다짐했다.
"다음 달엔... 진짜,
한 번에 다 먹지 말고, 아껴 먹어야지."
그날 이후로 햄스터는,
자루를 또 열심히 채웠지만,
결국은 또 금세 통장이 텅장이 되곤 했다.
월급이란...
결국, 햄스터의 입으로 들어갔다.
우리의 월급은 왜 그렇게 자꾸 사라지는 걸까?
아껴 쓰겠단 다짐은 매달 반복되지만,
월세나 관리비, 통신비, 교통비 등 고정비에
각종 보험료와 비싸진 식비까지.
이제는 없으면 안 되는 구독 서비스 이용료와
등록만 하고 몇 번 안 가는 운동비까지
매달 지출되는 항목은 늘어날 뿐이다.
저축과 투자를 열심히 해보지만,
월급을 '충분히 모은다'는 말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렇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소비하면서 느끼는
작은 행복이 남기도 한다.
다만, 행복을 조금만 나눠 쓰면 어떨까?
기억도 못하고, 무의식 중에 몰아 쓰는 건
어쩌면 진짜 행복이 아니지 않았을까.
순식간에 사라질,
작고 소중한 월급이지만,
누가 뭐래도
스스로에게
큰 행복과 위로가 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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