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Urbandaddy Jan 07. 2019

아빠와 21개월 아들의 여행_오사카

 

그래서 여행은 어떠셨어요?

21개월 아기가 아빠와 둘이 여행 간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웠는지, 사전에 여행 계획을 들었던 지인들이 한결같이 물어본다. 그중에는 친구, 동료들 뿐 아니라 소아과 선생님을 비롯한 동네 분들도 많은 관심을 보였다. 내 답변의 요지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였다.

즐겁고 재미있었지만 이 여행 콘셉트는 아직 아이에게 잘 안 맞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배운 것이 많았던 여행이었습니다.
이래저래 도전과 힘듬이 많았던 여행이었고, 단둘이 여행은 아빠 육아의 끝판왕이었습니다. 이렇게 하고 돌아오니 이제 정말 못할 게 없다는 자신감이 더 생기네요.


힘들지 않고 재미만 있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힘들었던 기억이 더 추억으로 남듯 이번 오사카 여행은 여러 방면에서 유익한 여행이었다.  
 
 어떤 상황에 닥쳤을 때 내가 고통받고 마음이 어려운 이유는 ‘내가 설정한 기대치와 다른 결과 때문에’라고 생각한다. 한없이 긍정적인 기대를 하다가 갑자기 부정적인 결과 또는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할 때 충격을 받고 걱정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매사에 최악의 상황을 전제하는 것도 걱정만 늘어날 뿐이지만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나의 전제는 ‘당연히 힘들 것이다’였다. 힘들었어도 기대치와 맞아 맘으론 편했던 여행이었다. 예측 가능한 불확실성은 어느 정도 사전에 제거했지만 알고도 제거할 수 없는 가장 불확실성이 큰 요소, 바로

‘언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르고 기분도 시시각각 다른, 하지만 내가 설득할 수도 없고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21개월 아이’ 

가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전제를 설정하였다. 그래서 제대로 고생하지만 추억은 많이 쌓아보자라는 마인드로 시작한 여행이었다. 
 
결론적으로 이번 오사카 여행은 향후 내가 아이와 함께 장기여행을 가기 위한 예행연습의 일환으로, 향후 어떤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지 배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중 몇 가지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아이에게 '낯섦' 이란 정말 큰 이슈이다.
 이번 여행으로 내 시각이 크게 달라진 건 아이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것을 인지한 것이다. 역지사지로 생각해 보면 성인들도 변화를 마주할 때 스트레스를 받고 새로운 자극이 왔을 때 100% 편안하지만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오사카에서 되도록 많은 경험을 시켜주고 싶다는 건 나의 과한 욕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아이는 평소에도 여자 어른들에게는 편안하게 다가가지만, 남자 어른들에겐 가족을 제외하곤 편히 다가가진 않는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는 생소한 남자 어른 둘과 자기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생소한 아이 둘 이렇게 온갖 낯선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던 것이다. 아빠들끼리는 친한 터라 내가 이 부분에 대한 세밀한 고려를 놓쳤음을 깨달았다. 그냥 '아이들도 있으니 금방 친해지겠지'라고 가벼이 넘겼던 것이 문제였다.
 
사람의 낯섦 뿐 아니라 지역적 낯섦까지 합쳐지니 결과적으로 아이는 한시도 나에게서 떨어져 있으려고 하지 않았다. 발을 땅에 대려고 하지도 않고, 계속 안아달라고만 하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했다. 여러 관광지를 다니며 아이를 힙시트에 하고 다니다 보니 자연스레 내 체력도 금세 바닥났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아이가 새로 만난 사람과 환경을 편히 접하도록 내가 어떤 노력들을 했었어야 했다.  1) 다른 아빠들이 아이와 친해질 수 있도록 말을 걸어주거나 같이 놀 수 있는 방법 찾기와 2) 아이들 세명이 함께 즐겁게 놀 수 있는 놀이를 하기 등이 구체적 방법일 수 있겠다.  
 
 1.1) 
많은 이동보다는 한 군데를 중점적으로 파는 것이 낫겠다. 
 위 1번과 연관하여, 여러 곳을 돌아보는 관광형의 여행 콘셉트보다는 한 군데만 여러 번 가도 좋을만한 여행 콘셉트가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의 물체를 다양하게 탐색하는 발달 시기이기 때문에, 같은 곳을 여러 번 가서 익숙함을 더 느끼고, 탐색은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곳, 수영장 등이 잘 구비된 리조트 등이 좋은 대안이라고 생각한다.

 

1.2) 아이가 익숙한 물건을 많이 확보해둬야 한다

집에서 아이가 자주 접하던 물건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된다. 낯섦을 줄이기 위해 애착물을 함께 가져왔더라면..이라고 오사카에서 되뇐 기억이 난다. 짐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책은 딱 한 권만 가져갔는데 너무 아쉬웠다.

 아이는 집에서 '비행기'라는 책을 즐겨 읽었는데 그 책을 가지고 실제 비행기에 탑승을 하니 그림과 현실세계의 실물을 대사 할 수 있어 아이에겐 더없이 좋은 자극이었다. 그림책에서만 보던 것의 실물을 보게 되니 유심히 쳐다보며 신기해하는 눈치였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그 책과 더 친해지게 된 것 같았다. 아이의 우군을 많이 만들어주는 것, 차기 여행에서 내가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항이다. 

마르고 닳도록 읽은 책

2) 비상식량은 구비해두어야 하며 언제든 몸에 지니고 있어야 한다
 일본 음식이 덜 자극적이고 한국 음식과 비슷한 면이 있어 한국에서 음식을 많이 안 가져가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결론적으로는 어떤 상황이던 아이가 먹을 음식의 대안은 있어야 된다. 비상식량을 한국에서 준비하는 것 못지않게 항상 내 가방(아이 용품이 담긴 가방)에 있어야 한다. 첫째 날 방문한 카이유칸(수족관)은 꼭대기에서부터 나선형으로 걸어 내려오며 걷는 구조로 되어있는데, 관람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이는 배가 고프다는 신호를 나에게 보냈고, 먹을 것을 가방에 챙겨 오지 않아서 관람을 포기하고 수족관을 나와 인근의 식당으로 향해야만 했다. 나선형의 통로를 안고 빠르게 내려오는 것도 힘들었지만 아이가 배고픔을 못 견뎌서 힘들어하는 모습이 더 사람을 다급하게 하였다. 그 이후로는 가방을 챙길 때 먹을 것을 항상 마련하게 되었다. 
 
 3) 낯선 공간에서 평소보다 쉽게 지치고유니버설 스튜디오와 같은 테마파크는 3-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사람이 많고 번잡하고 새로운 자극이 많은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 4시간을 보내자 아이는 나에게 안겨 바로 잠들었다.  유니버설 스튜디오에서는 재입장 규정이 없어서 바로 3분 거리의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눕혔다. 3시간 반 동안 숙면을 취한 것을 보면 아이들도 많이 피곤했던 것 같다. 4시간 놀고 3시간 반 방에서 낮잠을 자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하루 일정을 짤 때 둘러보는 시간과 휴식시간을 50:50으로 안배하면 적절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4) 나 역시 짜증과 스트레스가 생기다 보니 본의 아니게 아이에게 푸념을 하게 되더라.
나는 평소에 짜증을 많이 내지 않는 편이고 다혈질이 아니지만, 아이를 책임지며 여행을 하다 보니 스트레스가 누적되고 짜증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이 짜증의 근원은 1) 나에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 아이, 2) 그로 인해 나도 아무것도 즐기고 할 수 없음이었다. 많이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푸념이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아이도 모든 문장을 알아들을 수 없지만 내 푸념의 뉘앙스를 알아챘는지 울먹이는 표정으로 내게 반응했다. 
 아이의 표정을 보고 정신이 바로 들었다. 내가 경계해야 했던 중요 원칙
 아이가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부정적인 언어로 함부로 말하지 말 것
 자신의 힘듦을 아이에게 전가하지 말 것
 이 두 가지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세상의 갑질 문화에 대해서 비판하고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라고 수없이 외쳤지만 아이에게 갑질을 했다는 생각이 들며 더 겸손하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사랑하기 때문에라는 변명보단 언젠가 또 참을성의 한계를 상회하는 상황이 오면 동일한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잘 기억하는 것이 중요했다.
 
 5) 아빠와 아들이 둘만 갔다는 사실만으로도 워킹맘인 엄마에게는 리프레시와 동기부여가 된다.
 
많은 육아 콘텐츠가 워킹맘의 '힘겨운' 삶을 다루고 있을 정도로 워킹맘의 역할은 육체적 정신적 체력이 많이 소모된다. 아마도 많은 워킹맘의 머릿속에는 ‘아이 없이 하루만 푹쉴 수 있는 시간이 있었으면’ 이란 위시리스트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막상 하루만 아이가 없어도 보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만 말이다. 
 2박 3일간 아빠와 아들이 집을 비우니 아내에게 한번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평소에 하지 못한 재정비의 시간이 생겼다. 잠도 충분히 자고 편히 저녁 약속도 잡고 말이다. 귀국해서 집으로 왔을 때 아내는 파이팅이 넘치는 상태였다. 두 남자 고생했다며 말하는 엄마의 말속에서 힘이 느껴졌으며 아이와 놀 때도 새로운 활력이 있었다. 



 


이전 09화 아이와 함께한 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