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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츄럴본킬러 Aug 22. 2019

역도 벨트 파는 영어 강사님 맞나요?   

80년 생 올해 마흔, 애 둘 엄마의 커리어 격변기

대체 나의 3번째 직업을 어디서부터 정의를 하면 좋을까? 무엇을 파는 사람이라고 하면 좋을까? 구매대행이란 개념을 어떻게 설명하고 왜 굳이 역도인지, 벨트인지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무슨 일을 하냐는 질문에 그 찰나의 순간, 내 머릿속을 훑고 지나가는 생각이다.


일단은,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대략 수입 스포츠 의류와 장비들의 구매를 대행하고 소량은 제조 판매까지 하고 있다고 이야기한다. '역도 벨트 파는 영어강사'라는 호칭은 사업자를 내고 얼마 안 되어 누군가가 나에게 SNS 메시지를 보내며 물어본 말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역도 벨트 파는 영어강사'가 맞냐는 질문이 너무 인상적이었고 재미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내가 판매하는 물건들 중  역도 벨트는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 되었다.


잠시 거쳐갔던 일들을 제외하고 커리어의 변화를 크게 묶어 이야기한다면 나는 3가지 카테고리에 속하는 직업을 가져왔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했던 곳은 지금은 엄청나게 성장해버린 화장품 회사인데 기획팀에서 해외업무를 담당하는 일을 맡아 대략 1년 정도 짧게 일했다. 그만두고 나올 때는 나름대로는 큰 포부를 가지고 퇴사를 하였지만 나에게 의미 있는 곳이었음을 시간이 지나서야 알게 되었다.  작은 회사라 몰랐는데 경쟁률이 300:1을 넘었었다. 그때는 영어 하나만 잘해도 그렇게 입사가 가능한 곳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자격증도 변변하게 없는 문과 출신 졸업자였는데. 심지어 영어 토익 점수도 고득점은 아니었고,  입사 후 멘토의 이야기로는 영어 롤플레이에서 내가 꽤 좋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노란색 나비가 시그니처 로고였던 회사. 지금은  라인을 확장하고 수출도 활발하게 하고 있다.

영어를 좀 한다는 이유로 PR자료와 패키지의 영문 설명서도 작업을 했던 기억이 난다. 퇴사의 이유와는 상관없이 아직도 나는 전 회사의 상품을 애용하고 있다.


   





지금도 기업 영어 교육 서비스에 종사하는 나는 화장을 매일 할 수밖에 없다. 매끈해진 피부만큼 기분 좋은 아침도 없다. 여자 나이 마흔이면 쌩얼보다 화장한 얼굴이 내 얼굴 같은 느낌^^





  화장을 정성껏 해도 립스틱이 없으면 오늘 왜 화장을 안했냐고 혹자는 어디가 안 좋은 데가 있냐고 묻는다. 정말 싫어....

어느 순간부터 파우치 안 필수 아이템이 되어버린 레드 립스틱...









어쨌든 호기롭게 퇴사를 결정하고 유학 자금을 위해 어학원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영어 강사라는 직업이 두 번째 직업이 되었고, 처음으로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나로서는 내가 중고등 학생을 그렇게 오래 가르칠 수 있었다는 사실이 아직도 경이롭다.


아마 강사라는 직업이 장수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절대 죽지 않는 대한민국의 사교육 시장과 다른 분야보다 상대적으로 쉬운 이직 때문일 것이다.  강사로써의 나의 커리어는 강산이 변하고도 남은 긴 시간만큼 많은 우여곡절이 많다.  지금 사장님 소리를 들으면서도 강의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있기도 하다.


누가 강의를 그만하라고,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직업이 강사 아니야?? 란 소리를 했다가 나에게 개같이 욕을 먹고 나는 집에 와서 눈물을 펑펑 쏟았다.

유통을 하는 지금에야 아직도 배움의 과정 속에 있지만, 마음속 깊이 '강의는 나의 숙명'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물론, 오래 한 일인 만큼 익숙하고  쉽고 편하고 시간당 페이도 꽤 괜찮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수출입담당-영어교육-스포츠 용품 유통으로 이어지는 과정에는 '영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영어라는 베이스를 깔고, 나는 환경의 변화에 따라 할 수 있는 일을 찾았고 또  주변 환경에 맞추어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레  그 일이 오랫동안 커리어로 정착을 한 셈이었다.


강사에서 유통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는 바로  '운동'과  '육아'이다.


둘째를 낳고 강의를 하며 한없이 떨어지는 체력을 키우고자 동생의 권유로 시작한 운동이 몇 년째 이어지고 관련 용품들을 주변인들과 공유하고 찾다 보니 오지랖 넓은 성격 탓에 앞서서 공동구매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남동생과 나는 학원을 같이 운영했는데 지금은 남동생도 체육관을 운영하며 선수 트레이닝과  온라인 영어 강의, 그리고  오프라인 강연까지 겸하고 있다. 우리는 떨어져서도 같이 일하는 셈. 나의 주거래처이며 홍보 담당자이기도 하므로. 게다가 책도 3권이나 출간했으니 글 쓰는 데 있어서는 선배인가?



대충 이런거죠! 제가 파는 그 벨트란 것은.


장비를 사면 가방이 필요한 법, 운동은 장비빨이 아닌가요? 운동 중 장비는 패션을 완성시켜주고 운동 능력을 업그레이드 해주죠!


그리고 이런 것들도 팝니다. 운동에는 패션이 너무 중요하더라구요.  바야흐로  자기 표현의 시대니까요




그러다 보니 역도 벨트 파는 영어강사란 호칭이 붙었다. 단골들 중에 '사장님'하는 분도 있지만 '선생님'이라고 하는 분들이 아직은 많다. 직업과 직업 사이의 격렬한 충돌은 없었지만 벨트를 판매한 지 2년이 가까워지는  지금에서야 육아와 강의, 그리고  판매자라는 여러 가지 포지션에서 시간 배분과 우선순위로 인한 심리적인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의 문제....


주변 사람들은 애 둘 케어하며 강의 다니며 판매에 주문에 배송까지 어찌 다 하냐고 대단하다고 놀라고 누군가는 무엇 때문에 그리 바쁘게 사는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보다 잘할 수 있는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돈에 눈이 멀었냐는 이야기도 들어봤다.  


(아니 저기, 그런데 대체 무슨 상관입니까? 만약에 그렇다면 어쩌려고요?)


늘 그렇듯 정답은 없지만, 능력이 된다면 여러 분야에 진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강사와 판매자 중 어떤 것이 더 좋은지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한다.


' 저는 늘 탐색 중이에요. 저에게 어떤 재능이 있는지. 근데 지금은 역도 벨트를 잘 파는 것 같아요.  제가 강의를 잘하는 줄 알았는데  두 직업이 다 고객응대가 중요해서 그런지 사람들 사이에서 일하는 게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강의도 하고 역도 벨트도 팔고 있죠.  아 , 그런데 왜 역도 벨트냐고요?  저는 역도가 좋거든요.’


결론은 강의도 좋아서 하는 것이고 역도 벨트도 좋아서 파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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