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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반그리너 Jun 19. 2023

1화. 퇴직금마저 통장을 스쳐 지나갔다

손에 쥔 142만 2656원, 어디에 써야 할까

사진: Unsplash의ecemwashere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명언(찰리 채플린)은 이럴 때 두고 하는 말이다.

  142만 2656원. 퇴직에 퇴직 소득세를 뗀 후, 집 사느라 빌린 신용대출을 갚고 나니 통장에 찍힌 금액이었다. 퇴직금 받아 집 한 채 사는 데 보탰으니 나쁘지 않은 성적표라고 해야 하나. 머릿 속에선 '18년간 일했는데 손에 쥔 게 고작 142만 원?'이라는 생각이 멈추지 않았다. 

  좋아할지 슬퍼할지 복잡한 감정이 가라앉고 나니 허무함이 밀려 왔다. 지난 18년간 월급을 스쳐 보내기만 했는데, 퇴직금마저 그럴 줄은 미처 몰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상여금 잘 나올 때 사둘 걸. 몽클레어 패딩이 자꾸 눈에 밟혔다.

  신용대출만 없어도 막연히 꿈꿨던 소규모 카페-붕어빵과 스페셜티 커피, 거기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서점형 카페가 나의 사업 모델이었다-하나쯤은 차릴 수 있었다. 현실은 통장 잔고 142만 원. 이마저도 자동 이체 걸어둔 월세, 학원비, 공과금으로 순식간에 사라질 판이었다. 어떻게든 지켜내야 했다. 다른 계좌에 서둘러 이체하고 생각했다. 이제 이 돈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스스로 찍은 마침표

  갑상선 호르몬 수치는 점점 떨어지고, 위염과 장염은 번갈아 찾아왔다. 심한 빈혈에 자꾸 눕고 싶고, 어깨 통증은 만성이 돼 머리까지 저렸다. 건강상 이유를 들어 퇴사하겠다고 했지만 그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었다. 

  나는 방송국 보도본부에서 경제 산업 뉴스를 만드는 데스크였다. 영어로 책상이란 단어가 직책 이름이 된 이유는 단순하다. 하루종일 책상에 앉아있기 때문이다. 15년 이상의 기자 경력을 거치면 대다수 기자는 차장에 이어 부장이 되는데 이를 데스크라 부른다. 

  데스크란 한마디로 기자와 회사원의 중간지대에 있는 존재다. 현장이 아닌 책상에 앉아서 취재기자를 지휘하고(라고 쓰고 깬다고 읽는다) 기사를 고치는 게 주된 업무다. 회사 안에서는 기사에 대한 각종 조율을 맡는다. 말이 조율이지, 주로 윗선으로부터 기사를 놓고 깨지는 일이 다반사다.

  나는 기자 생활 15년차에 데스크가 됐다. 현장에서 팀장을 맡아 한창 재밌게 기사를 쓰던 때였다. 적당한 책임감과 자유로움, 성취감을 느끼던 시기에 승진 소식을 듣자 덜컥 겁부터 났다. 전쟁 경험이 부족한 군인이 갑자기 사령관이 된 기분이었다. 어느 날부터 기자실이 아닌 회사로 출근해 회사에서 퇴근하는 전혀 다른 삶이 시작됐다. 

  오전에는 책상에 앉아 편집회의에서 부장이 어떤 종류와 강도로 깨지고 왔는지 기민하게 살핀다. 부장의 전달사항을 기자에게 전달한다. '그건 위에서 현장을 몰라서 하는 얘기'라며 반발하는 기자를 달래 오늘 가야 할 목적지를 잘 설명한다. 오후 마감 때는 내가 생각했던 목적지와 한참 다르게 쓰여진 기사를 고쳐 끝내 목적지로 데려다놓는다. 그러면 외면했던 깨달음이 서서히 밀려온다. 나는 오늘도 하루의 절반 동안 이 책상에 앉아있었구나, 그리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한다. 

  어느 조직이나 중간관리자는 필요하다. 언론사에도 데스크가 필요하다. 현장에서 기자가 쓴 기사를 까다롭게 검증하고 조율해 최종 결과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일. 직원 한두 명의 온라인 매체도 아닌 100년 역사를 지닌 언론사에서 누군가는 해야할 일이다. 문제는 그 역할을 내가 맡았다는 것이다.

  기자를 꿈꾸며 살았지, 데스크는 내가 꿈꾸던 자리는 아니었다. 더 넓고 좋은 책상으로 올라가는 것도 나의 목표는 아니었다. 매일 기사 마지막 줄에 나가는 바이라인의 힘으로 살았는데 그것조차 사라졌으니 목표를 잃은 기분이었다. 원치 않던 자리에서 바닥을 드러내는 것보단 내 손으로 마침표를 찍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 

  분명, 내가 설 수 있는 다른 무대가 있을 거야. 

142만 원은 어디로

  사직서가 수리되면 인사팀으로부터 퇴직 절차가 담긴 메일을 받는다. 거기에는 노트북과 사원증을 반드시 반납해달라고 써있다. 내 분신이자 밥줄이었던 이 노트북이 알고 보니 내 것이 아니었구나. 원래 내 것도 아닌데 뺏기는 것 같은 이 기분은 무엇일까. 

  사원증도 마찬가지였다. 내 집처럼 드나들었던 광화문 건물이 사실은 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 이 사원증을 뺏기면 나도 외부인처럼 신분증을 맡겨야 들어올 수 있었다.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은 냉혹한 무대에 제발로 걸어 들어온 셈이다. 할 줄 아는 건 기사 쓰고 고치는 것 뿐인 지식 노동자가 다룰 줄 아는 유일한 무기는 노트북이었다. 카페를 차리려면 에스프레소 기계를 사야하고, 치킨집을 내려면 튀김기계를 사야하는 것과 같다. 142만 원 가운데 무려 100만 원을 들여 OO전자에서 파는 가장 가벼운 노트북을 구입했다. 

  그리고 남은 42만 원을 들고 쇼핑몰로 향했다. 옷 잘 고르는 대학친구 A를 불러 30만 원 가량의 회색 정장 한 벌을 구입했다. 성공한 작가이자 강연가로 서게 될 무대를 꿈꾸며. 

  입을 날이 오긴 오겠지?

(2화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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