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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아 Sep 25. 2020

결혼을 위한 동거라고?

대학가나 1인 거주 형태가 많은 동네에선 동거하는 커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도 동거 커플이 꽤 있었다. 그땐 동거를 쉬쉬하던 시절이었다. 결혼을 위한 동거보단 함께 있는 게 재밌고 생활비도 아낀다는 이유가 많았다. 최근엔 주거비와 데이트 비용을 아끼기 위해 동거를 결정하거나, 결혼제도에 대한 반대나 출산, 육아 등 결혼 이후의 삶에 대한 부정으로 결혼 대신 동거를 택한 커플도 많다. 또한, 남녀 커플만이 아니라 다양한 커플과 동거인들로 동거가 다양한 가족 형태를 만들기도 한다. 어떤 이유건 난 동거를 반대하지 않는다. 둘이 선택할 일이다. 하지만 결혼을 위해 동거한다? 글쎄, 의문이다.


“전 적어도 3개월에서 6개월은 살아보고 결혼할 거예요.”

“6개월 같이 살면 모든 걸 알 수 있을까?”

“그래도 둘이 잘 맞는지 살아보고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어떤 거? 양말을 말아서 벗거나 치약을 중간부터 짜 쓴다거나 그런 일? 아니면 식습관? 성생활? 라이프 스타일?”

“살아보면 결혼을 실패할 확률이 낮아지지 않을까요. 결혼도 연습이 필요한 거 같아요.”

“연습해서 능력이 향상되는 일이라면야...”


얼핏 보면 둘이 잘 맞는지 살아보고 결혼을 결정한다는 건 합리적으로 보인다. 개인과 개인이 만나 함께 사는 연습은 어느정도 가능하다. 하지만 결혼을 결정하는 충분한 연습이란 논리적 이유는 조금 부족하다. 동거는 결혼의 ‘모든’ 연습이 될 수 없다.


동거도 결혼과 마찬가지로 이삼십 년 이상 다르게 살아 온 두 남녀가 함께 산다. 여기선 제도적인 결혼을 말하므로 남녀라고 칭하겠다. 그녀와 그는 같이 살며 서로 잠버릇은 어떤지, 양말은 어떻게 벗는지, 치약은 어디서부터 짜는지, 집안일은 나누어서 하는지, 나쁜 습관은 없는지, 잉여시간은 어떻게 보내는지 등등 많은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동거와 결혼의 가장 큰 차이가 있다. 동거는 가족이 개입하지 않는다. 동거인끼리는 가족의 생일과 기념일, 제삿날, 명절을 챙기고, 그와 그녀의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거나 의무적인 전화, 주말 식사, 가족 여행을 고민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시때때로 집에 찾아오지 않을뿐더러 아기를 가지라거나 살림, 경제 활동 등을 간섭하지 않는다. 모든 부부는 아니지만 많은 부부가 결혼 후 상대방 가족 때문에 부부싸움을 한다. 사소한 싸움부터 되돌릴 수 없는 싸움까지 말이다.


그래서 난 동거는 찬성하지만, 결혼 결정을 위한 동거는 글쎄, 라고 답한다. 아무리 많은 것이 서로 잘 맞으면 뭐 하나. 때론 백 가지의 이유보다 한 가지의 이유가 더 큰 법이고, 신뢰와 책임은 연습으로 되는 게 아닌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글쎄, 이 물음에도 적확한 답은 없다.


모든 결혼은 불안하다. 나 역시 불안했다. 결혼은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가족이므로 내 선택이 실패가 될까 두려웠다. 하지만 난 그냥 나의 촉을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어떤 삶도 연습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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