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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아 Sep 28. 2020

밥 때문에 부부싸움

효도는 셀프, 라는 말이 있다. 결혼 한 남자가 아내에게 안부전화, 주말식사, 가족여행 등을 요구하는 남자에게 많이 하는 말이다. 많은 남자가 결혼하면 효자가 된다나.


결혼하기 전, 결혼 한 사람들을 보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시댁에) 얼마나 자주 전화를 해야 할까?”

(시어머니와) 얼마나 자주 만나야 하나?”

고민한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결혼을 해보니 나 역시 그 질문을 피해갈 수 없었다. 알고 보니 맘카페에 정기적으로 올라오는 질문이자, 그때마다 뜨거운 감자가 되는 질문이었다.


결혼 초창기 그와 내가 다투는 이유는 단 하나, 시어머니와의 식사 혹은 만남 때문이었다. 가끔 함께 식사나 외출을 하길 원했던 그였지만, 그의 가끔은 나에겐 너무 자주였다. 몇 번의 다툼 끝에 2주에 한 번 ‘정도’ 함께 식사하는 것을 규칙으로 정했다. 하지만 2주는 금방 지나갔다. 나에게 2주 ‘정도’란 때론 3주, 4주였지만 그에겐 그냥 2주였다. 식사 시간은 말 그대로 식사를 위한 시간이 되었다. 시큰둥하게 식사 약속을 잡거나 식사가 끝난 후엔 별 것 아닌 말 한마디로 우린 싸웠다.


“뭐가 불편해?”

“그냥 불편하지.”

결혼 생활 이십 년, 삼십 년이 지나도 시어머니는 불편한 사이 아니던가.

“집에 오시면 집 청소도 해야 하잖아.”

“대충 하면 되지.”

집에 오면 안 보는 척 베란다와 냉장고를 훑어보신다. 아무리 못 본 척 한다고 해도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사실 식성도 맞지 않고 별달리 대화거리도 없는 재미없는 식사자리다. 물론 종종 식사를 하는 것 자체가 싫다는 게 아니다. 왜 밥 먹는 게 의무여야 하는가 의문일 뿐이다. 의무가 되니 더 소극적이 되어버렸다. 학창시절 공부하라는 소리에 책을 폈다가 다시 닫았던 그 마음과 같다. 누군가는 밥 먹는 게 뭐 그리 힘드냐며 나를 탓할지 모른다. 또 누군가는 그럴 거면 왜 결혼했냐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아무렇지 않은 일이 누군가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아닐 수 있지 않은가.


친구 A는 매주 일요일마다 함께 시댁에서 밥을 먹는다고 했다. 아기가 태어나고부터 시작된 일이랬다. 그러나 식사보다 시댁 식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이 더 큰 스트레스라 했다.

“셀프 퇴장하면 안 돼?”

“메시지에 빨리 대답 안했더니 얘, 넌 뭐하는 데 대답을 안 하니? 그러더라. 아마 바로 전화 올걸?”

나는 아직 폴더 폰을 쓰시는 시어머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리고 밤마다 아기 보고 싶다고 영상 통화도 해.”

영상 통화는 연애할 때나 하는 거 아니었나. 이제껏 시어머니께 전화 안부를 제대로 드린적은 없다. 남편과 나는 각자 집에 각자 안부를 묻고 있다. 난 결혼 후 당연하다 생각한 일이었지만, 매주, 매일 시댁에 전화를 '드려야'하는 며느리들이 꽤 많다. 더군다나 시어머니와 연애하는 것도 아니고 왜 영상 통화를 해야 하는가. 손주가 예뻐 그렇다지만, 아기를 보여주는 게 의무는 아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나에게도 나중에 영상 통화를 요구하면 어쩌나 걱정했다. 내 소중한 저녁시간을 이렇게 소비할 수는 없다.


그랬다. 내가 비혼주의자였던 이유였다. 나는 전통적 가족주의나 가치관에 능동적인 순종을 경멸한다. 결혼이라는 제도의 부당함보다 결혼 후에 오는 피로감이 더 컸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더 상처받거나 상처 주는 일 따윈 하기 싫었다. 결혼 전이나 결혼 후나 마찬가지다.


왜 여자는 결혼을 하면 시댁에 전화를 해야 하고 식사 약속을 잡아야 하는가. 내 부모와 내 형제에게도 자주 전화하지 않는데 말이다. 유치해보이지만 꽤나 심각한 공통의 질문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시댁에 전화를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고 남편과 혹은 시댁과의 갈등의 이유가 되었으며 더 많은 사람이 꼭 필요할 때 아니고는 전화를 하지 않기 위해 싸움의 싸움을 거듭하고 있었다.


결혼을 했다고 강제적인 의무가 생기는 것은 없다. 그 무엇도 의무는 아니다. 다 개인의 상황과 성향에 따라 하면 된다.

“우리 집은 원래 이래.”

“다른 사람들도 다 하잖아.”

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전하고 싶다.

“우리 집은 안 그래요.”

“그건 다른 사람이죠. 전 아닙니다.”


시어머니와의 관계, 시댁과의 관계는 비즈니스 관계 정도가 딱 적당하다. 서로 이익을 따지자는 말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배려, 어느 정도의 예의, 어느 정도의 친밀감이면 충분하다는 의미다.


난 좋은 며느리가 되기 위해 결혼하지 않았다. 난 나의 오늘이 그와 함께라면 어제보다 즐거워질 것 같아 결혼했다. 그러니 즐겁지 않은 일은 조금 모르는 체하며 산다. 이기적이라 해도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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