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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아 Oct 09. 2020

둘만의 독서 모임

취향이 다른 두 남녀가 오래 살다 보면 비슷해지는 구석이 생긴다. 


부부는 외모도 닮아간다고 하지 않던가. 아, 나와 닮은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확률이 높다고 하니 이건 아닐 수도 있겠다. 아무튼 우린 그렇게 짧지도 길지도 않은 연애를 했다. (사실 나는 그에게 지금도 연애의 ing라고 우긴다.) 연애 시절엔 서로의 다름이 마냥 재밌었다. 서로에게 모두 새로운 경험이었으니까. 하지만 결혼 후 우린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할 것과 혼자 할 것을 나눴다. 


혼자 할 것은 서로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혼자 하지만 함께하고 싶은 것은 의견을 묻는다. 그중 하나가 책 읽기다. 그는 나와 책 취향이 전혀 다르다. 그가 고르는 책은 대부분 경제서, 경영서, 자기계발서다. 함께 대형서점도, 헌책방도 가고, 도서관에 가서 잔뜩 책을 빌려오지만, 서로 다른 책을 고르곤 했다. 그래서 나는 함께 읽었으면 하는 책은 소개했다. 책방을 연 후에는 읽지 않아도 알았으면 하는 책도 소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그는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보였다. 필요한 책을 필요한 때에 읽던 그가 가방에 책 한 권을 넣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 책 재밌어? 무슨 내용이야?”

“읽을 만해? 지난번 그 책 다 읽었어?”


젠더 문제에 관한 책과 여성으로 사는 삶, 육아와 관련한 책 몇 권도 함께 읽었다.

“이 책은 너무 부정적 시각으로만 쓴 거 같아.”

“아니야, 그게 현실이야.”

“진짜?”

“그래, 실제로는 ......”


책을 읽고 나면 우린 아주 짧은 둘만의 독서 모임을 한다. 책 내용은 어땠는지,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그 상황이라면 어떻게 할 건지. 때론 서로의 상반된 의견에 당황하기도 하고, 다른 의견을 존중하기도 하고, 날 선 대화를 이어가기도 한다. 평소에 나누기 민감한 주제도 책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아주 진지하게 앉아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책방에 함께 있는 날이나, 침대에 기대 책을 읽다 말고 이야기 나눈다. 그러다 서로 좋아하는 그림책이 같다는 걸 발견했고, 오래 전 같은 책을 다르게 읽은 걸 기억해냈고, SF 단편소설을 둘 다 좋아하는 걸 알게 됐고, 요즘 관심 있는 주제도 알아갔다.


오늘 그의 가방엔 내가 얼마 전 논문을 쓰며 읽었던 책이 들어있다. 회사를 오가며 일주일째 읽는 중이란다. 다음엔 어떤 책이 그의 가방에 들어 있을까. 나도 그가 읽은 책을 골라 책상에 얹어 두어야겠다. 


우린, 조금씩 더 닮은 구석이 늘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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