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일기] 퇴사하던 날

은희경, 《생각의 일요일들》

by 구선아

“지금 나의 선택이 나머지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까, 이런 생각 이제 하지 않는다. 어딘가 조금 높은 곳에서 흘러내려온 물줄기가 여울을 만나 잠깐 멈춰서 거기 담그고 있는 내 종아리를 휘감고 돌더니 다시 흘러간다. 흘러오는 대로 흘려 만나고 흘러가는 대로 흘려보내려 한다. 예상도 안 하고 돌아보지도 않게 되기를.”

- 은희경, 《생각의 일요일들》


9년을 꼬박 한 회사를 다녔다. 대학원을 채 마치지 못하고 얼떨결에 입사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회사였다. 세 번의 면접을 거쳐 합격 연락을 받은 날, 친구들과 조촐한 파티를 했다. 치킨과 맥주, 몇 가지의 음식을 둘러놓고 축하인사를 받는 어색한 자리였다. 마치 어릴 적 평소에 입지 않는 옷을 입고 평소에 먹지 않는 음식을 차린 채 잔뜩 멋 부린 생일파티 날 보다 어색했다. 하지만 이제 돈을 제대로 벌 수 있다는 기대감과 대기업 로고가 박힌 사원증을 목에 걸 수 있음에 설레었다.


한 달이나 지났을까 파티를 함께 한 친구들에게 곧 회사를 그만 둘거라 말하곤 했다. 허세였는지 진심이었는지 그 시작은 기억나지 않지만 꽤 오래 입버릇처럼 말했고, 그 후로 꽤 오래 그만둘 시간이 없다며 남들보다 열심히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회사 동료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퇴사를 했다. 학교에 진학하고 책방을 열고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고민한 시간은 불과 몇 분. 누군가 끌어당기는 듯 했다.


멋지게 사표를 던지면 끝인 줄 알았지만 남은 휴가를 쓰고 자료와 자리를 정리하고 여러 장의 서류에 사인을 하고 여러 명의 상사와 임원과 기억나지 않는 인사를 나누느라 여러 날이 필요했다. 그렇게 마지막 출근 날,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간 대표 이사실이었다.

“후회하지 않아? 지금이라도 그곳에 갔을 거 같아?”

그곳. 광화문 광장이 촛불로 활활 타오를 때 내가 있던 그곳. 문화정책 실행을 위해 청와대 직속기관으로 만들어진 곳. 여러 인연으로 인해 내가 1년을 머물렀던 곳.

“네. 제 선택이었죠. 선택에 후회하진 않아요. 많이 배웠습니다.”

그리고는 이젠 가십과도 같아진 몇몇 이야기를 나누고 허리를 깊이 숙여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이젠 정말 마지막인가 싶었지만 엘리베이터 앞에서 만난 어느 팀 상사가 말했다. 우연히 만난 게 아니라 나를 쫓아 나선 것이었다.

“회사 밖은 전쟁보다 더 해. 그만두고 뭐하려고.”

“공부도 더 하고 작은 책방 하려고요.”

“그건 돈이 안 되잖아.”

“돈은 뭐, 하하.”

“돈은 뭐라니 살아봐라. 돈이 최고다. 다른 거 없어.”

나는 예의 있는 웃음으로 얼버무렸지만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기도 전에 호기롭게 콧방귀를 꼈다. 회사를 다니지 않아도 내가 월급 정도도 못 벌까. 물론 그 생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적지 않은 월급을 나에게 줬구나 알게 됐지만 말이다.


지금도 가끔 매달 들어오던 월급과 매년 꽂히던 인센티브가 생각나고 퇴근과 함께 일 스위치를 끄던 날들이 떠오른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과거는 후회스럽고 모든 미래는 불안하다. 그래서 나는 어느 순간의 선택도 돌아보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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