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었더니 금방 들키고, 술래가 되었더니 성 빼앗겨, 언제 언제까지나 성 빼앗겨, 언제까지 술래인 숨바꼭질. 날 저물면 집이 그립다.”
- 가네코 미스즈, 「숨바꼭질」 《내가 쓸쓸할 때》
“내 동생 곱슬머리 개구쟁이 내 동생. 이름은 하나인데 별명은 서너 개.” 어릴 적 이 노래는 내 동생을 위해 만든 노랜 줄 알았다.
곱슬머리 내 동생은 심통난 표정을 자주 했고 뛰어 놀기를 좋아했다. 둘 다 고집이 세 자주 싸웠지만 난 언제 그랬냐는 듯 동생을 예뻐했다. 내가 예뻐하는 모습은 고스란히 사진으로도 담겼다. 지금은 사진첩이 모두 없어져 사진은 없지만 매우 또렷이 기억나는 사진 두 장이 있다. 한껏 곱실한 머리에 파란색 줄무늬 내복을 입고 식탁 사이에 다리를 얹고 잔뜩 땡깡 난 얼굴의 동생 사진, 꼬꼬마인 내가 더 꼬꼬마인 동생을 끌어안으려 하자 싫다고 짜증섞인 울음으로 빠져나가려는 동생 사진이다. 지금도 가끔 어른인척 하는 동생을 볼 때면 그 사진들이 생각난다.
우린 가끔 아빠 눈을 피해 함께 일탈했다. 한 번은 수영장 강습을 땡땡이 치고 오락실에 갔다. 오락기 위에 주인 잃은 돈을 주워 실컷 오락을 하고 아이스크림도 하나씩 사먹었다. 완전범죄를 꿈꾸며 신나게 집에 돌아왔지만 이미 땡땡이를 들켜버린 후였다. 눈물 쏙 빠지게 혼난 후 다시는 학원을 빼먹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그 후로 우린 몇 번의 땡땡이를 다시 시도했고 성공했다. 또 한 번은 동생과 함께 아파트를 돌며 집집마다 스티커를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열쇠수리 스티커였다. 한 장 붙이면 몇 십 원을 줬던 것 같다. 용돈이 넉넉하지 않았던 우리에겐 풍요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는 돈이었다.
그렇게 일탈을 함께 하던 꼬꼬마 동생이 어느새 훌쩍 자랐다. 갑자기 당황스러운 일이 생겨도 동생은 매사 침착했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조급해하지도 도망가지도 않았다. 김치를 못 먹던, 땡깡 부리던 꼬꼬마 동생은 이젠 없었다. 나보다 더 큰 어른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