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 거야.”
“기다리는 거야 버릇이 돼 있으니까.”
- 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
삐삐를 가졌던 중학교 시절, 울리지 않는 삐삐를 계속 확인했고 삐삐가 드르륵 울리고 나면 쉬는 시간만 기다리며 공중전화로 달려갔다. 그 시절의 우린 누군가의 울림을 기다렸고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다렸다.
지금은 기다림이 사라진 시대다.
몇 초의 인터넷 로딩도 몇 분의 대기시간도 몇 장면 느긋하게 전개하는 드라마도 우린 더 이상 기다리지 못한다.
약속 날짜와 시간, 장소를 정하고 가슴 졸이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도 사라졌다. 전화와 문자, 메시지 그리고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로 매 순간을 공유한다. 어느 영화에서처럼 같은 카페 1층과 2층에서 기다리며 만남이 엇갈리는 일은 더 이상 생기지 않는다. 또 우린 약속한 상대방이 좀 늦더라도 초조하게 기다리지 않는다. 이미 그가 언제 도착할지 어떻게 올지 알고 있다. 그 약간의 시간을 무언가로 때우면 된다. 기다림이 사라진 세상 편리하고 효율적이지만 약간의 낭만은 함께 사라진 것만 같은 요즘이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직도 삶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누군가는 졸업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어른이 되길 기다리고 누군가는 월급날을 기다리고 누군가는 여름휴가를 기다리고 또 누군가는 겨울을 지나 다시 봄을 기다린다. 기다림은 사라졌지만 진짜 기다림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 역시 어제도 오늘도 어떤 고도를 기다린다.
어쩌면 살아가며 만날 수 없는 고도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