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일기] 행복은 거대한 것이 아니었다

황정은, 《디디의 우산》

by 구선아

“사랑을 가진 인간이 아름다울 수 있으며,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아름답다고 여길 수 있는 마음으로도 인간은 서글퍼지고,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d를 이따금 성가시게 했던 세계의 잡음들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행복해지자고 d는 생각했다.”

- 황정은, 《디디의 우산》


처음.

언제나 처음은 있었다.

첫걸음마, 첫눈, 첫사랑, 첫 시험, 첫 해외여행, 첫날밤.

처음은 설레면서도 두렵기도 하고 무한히 기억될 것 같지만 또 다른 처음에 흐려진다.


내 인생의 첫 시험은 수능시험이었다. 수능시험 이전에도 첫 받아쓰기 이후 수많은 시험이 있었지만 내 인생의 시험이라 할 만한 크기는 아니었다.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생각했던 수능시험을 치르고 그렇게나 울었다. 후회했고 불안했고 두려웠다.


그러나 스무 살의 추억이 흐릿해질 때쯤 알게 되었다. 1989년도 영화 제목처럼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었다. 그리고 세상엔 더 어렵고 많은 시험이 남아 있었다.


이제 어른의 나이가 된 지금에야 안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기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좋은 성적은 좋은 대학은 많은 기회를 가져다주지만, 그 어떠한 기회도 나를 행복 앞에 놓아 주진 못한다.


행복은 거대한 것이 아니었다.

나에겐 결핍과 상실이 없는 상태가 행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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