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nk Gehry, Punk Rock Star

게리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 Part 1

by urbansubstances

2025년 12월 5일, Frank Gehry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급하게 키보드를 들었다. 불과 며칠 전인 11월 27일, 클래식 건축의 거장 Robert A.M. Stern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 “이 시대의 영웅이 또 한 분 가셨구나“ 하며 마음을 추스르던 참이었다. 그런데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또 한 명의 거대한 별이 졌다.


전통의 수호자 (Stern)와 파격의 아이콘 (Gehry)이 연달아 우리 곁을 떠났다. 자연스러운 세월의 흐름이라지만, 우리 시대의 건축 영웅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간다는 사실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Robert A.M. Stern & Frank Gehry 할아버지s

이 전 글을 쓴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새 글을 쓸 쿨 타임이 다 차지 않았지만, 오늘은 내가 기억하고 동경했던 게리 할아버지에 대한 개인적인 생각을 남기고자 한다.


게리는 원래 캐나다 토로토 출신이다. 본명은 Goldberg. (성을 Gehry로 바꾸신 건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부친의 건강 문제로 가족이 미국 LA로 이주해서 쭈욱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훗날, 미국 서부 전설의 건축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개인적으로 게리는 모든 건축인들의 "첫사랑" 혹은 "풋사랑"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 할아버지의 작품을 모르고 건축의 길을 선택한 사람도 거의 없을 테고 누구든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가질 무렵 꼭 충격을 받게 되는 건축가 중 한 명이다. 나 역시 어릴 때에 굉장히 그를 동경하고 열렬한 fan이었다. 뭔가 입문자들의 아이돌 같은 느낌의 존재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것이 이 할아버지의 커리어 평생 동안 화려하고 신기한 형태 스타일의 건축만을 했을 거라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이 분의 건축 스타일의 시발점 같은 프로젝트인 본인의 집 "산타 모니카 자택"은 1978년에 완성되었다. (1977년에 집 구매해서 뜯어고침) 50살이 다되어서 자기의 스타일을 "본격적으로" 구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유명한 산타 모니카 자택 (Frank and Berta Gehry Residence). 출처: Flickr

그럼 그 전까지는 무슨 프로젝트를 했을까? 초창기의 그는 철저한 "실무형 건축가"였다. 다시 말해서 돈 되는 일을 마다하지 않고 다 했었다고 한다. 게리는 자기 회사를 차리기 전 Victor Gruen이라는 건축가 밑에서 일했다. 이 분은 미국 교외 쇼핑몰의 창시자 같은 사람이었다. 여기서 게리는 예술이 아니라 철저한 상업 건축, 예산 관리, 개발업자 다루는 법 등의 많은 실무적인 (건축과 학생들이 기피할만한) 것들을 배웠다.


33살에 게리는 독립을 하였는데, 바로 미술관이랑 콘서트홀을 지었을까? 그럴 리가. 게리는 금수저 집안 출신이 아니었다. 그는 상업용 인테리어, 쇼핑센터 레노베이션, 주차장 같은 아주 별 볼 일 없는 프로젝트들로 사무실을 꾸려나갔다. 이렇게 그는 나중에 "예술"을 하기 위해 상업을 수단으로 이용할 줄 알았던 반전 매력이 있었다. 무려 20년 가까운 무명 생활 동안, 그는 현실과 타협하며 야금야금 자기의 건축 스타일을 성장시켜 나갔던 것이다.


그럼 그가 자기 스타일을 구현하고 바로 스타가 되었을까? 이번에도 아니다. 우리가 아는 "Starchitect" (스타 건축가)가 된 것은 환갑이 다 되어서다. (굉장히 신나는 환갑잔치를 벌이시지 않았을까.) 그는 천재이기 이전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묵묵히 버텨낸 생존자였다.

게리: 하 맙소사,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다니...

그의 초기작인 "산타 모니카 자택"에서도 보이지만, 그의 특징은 돈이 없어서 쓴 재료들을 "디자인"으로 "상당히 잘" 승화시켰다는 점이다. Plywood (합판), Chain link fence, Corrugated metal 등의 평범하고 싸구려스러운 자재들로 세상에게 충격을 선사했다. 이게 그의 건축 스타일의 시작이 되었다. 그는 자신의 접근 방식을 "cheapskate aesthetic (짠돌이 미학)"이라고 표현했다. (이제 와서 우리는 그의 대단함을 칭송하지만, 그 당시 이웃들은 "집값 떨어진다"며 그를 고소하려 했다고 한다. (충분히 그럴만하다.)

게리: 내 집 내 돈 들여 내 마음대로 고쳤다. 뭐 어쩌라고?

게리의 프로젝트들을 보면 그의 건축은 굉장히 Punk Rock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는 젊어서부터 반골기질이 충만한 아웃사이더였다. 건축가들이 아닌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저렴한 재료로 엘리트주의에 찌든 독단적인 기득권 건축계에 공격적이고 불경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냈다. Jimi Hendrix가 이빨로 기타를 뜯었듯이, Frank Gehry는 건축의 형태를 사정없이 물어뜯고 해체했다.


알아보니 나만 게리에게서 펑크 락을 느낀 게 아니었다. 비평가 Jorge Arango는 그의 집을 ”opportunistic punk rock (기회주의적 펑크 락 건축)“이라 불렀고, 다른 비평가들도 그의 작품들을 (특히 초창기) 펑크스럽다고 분석한 경우가 있었다. 게다가 게리의 태도 역시 펑크 그 잡채인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14년 스페인 오비에도 (Oviedo)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게리는 “당신의 건축은 기능보다는 구경거리를 위한 장식적인 건축 아니냐” (=당신 건물은 실용성은 없고 그냥 겉멋만 잔뜩 든 쇼 아니냐)는 식의 한 기자의 공격적인 질문에 말없이 가운데 손가락을 날린 적도 있다. (아주 유명한 사건이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 지어지고 디자인되는 건물의 98%는 순전한 똥 (pure shit)이다. 디자인 감각도 없고, 인간에 대한 존중도 없고, 아무것도 없다. 그것들은 그냥 빌어먹을 건물일 뿐이다. 아주 가끔, 뭔가 특별한 일을 하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아주 소수지. 하지만 맙소사, 우리 (그 소수)를 좀 내버려 두라고! 우리는 우리 일에 전념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상업적인 일을 구걸하지도 않고, 홍보 담당자도 없다. 나는 누구에게 전화도 안 한다. 나는 누군가 나에게 일을 의뢰할 때만 일한다."


이 발언과 행동이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자, 나중에 게리는 시차 때문에 너무 피곤했었고 질문에 욱해서 그랬다는 사과 아닌 사과를 했다.

묵직하다. 뭔가 비현실적이고 사이버 펑크적인 느낌. 출처: The Guardian

개인적으로 그의 프로젝트들을 보면, "산타 모니카 자택"같은 그의 초창기 건축은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초기 펑크 밴드 Sex Pistols 나 The Clash, The Ramones 같은 음악이 생각이 나고, 그가 스타가 된 이후의 프로젝트 "빌바오 구겐하임"이나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등을 보면 Green Day나 The Offspring처럼 더 대중적이고 상업적이며 더 "성공한" 느낌의 펑크 밴드 음악이 생각이 난다. (물론 절대 전자가 후자보다 낫다는 게 아니다. 둘 다 훌륭하고 너무 좋다. 그저 내 눈에 그의 성장 과정이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그의 후기 프로젝트들은 초기의 저항 정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세상이 열광하는 세련된 스타일로 강화시키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Sex Pistols & The Offspring.

뭔가 짤막하고 담백한 추모글을 쓰고 싶었는데 글이 예상보다 길어졌다. 그만큼 그가 우리 시대에 남긴 흔적이 크고, 내 마음속에도 그에 대한 많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남아 있었던 것 같다.


게리 할아버지에 대한 남은 이야기는 다음 글, Part 2에서 이어서 하겠다.


편히 쉬세요 할아버지.


다음 글: Gehryfornia Drea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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