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 Par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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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nk Rock의 씨앗은 영국과 뉴욕에서 뿌려졌지만, 꽃을 피운 건 캘리포니아였다. 그리고 이 흐름은 게리의 건축 인생과 소름 돋을 정도는 아니지만, 기가 막히게 겹친다.
70년대 후반 - 80년대 초의 Punk (Black Flag, the Germs, Circle Jerks 등등)는 LA와 그 주변을 기반으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아주 거칠고 폭력적이며, 날것 그대로의 음악의 꽃가루가 캘리포니아에 흩날리던 시기는 공교롭게도, 게리의 건축 스타일의 시발점이라고 볼 수 있는 산타 모니카 자택 (1978) 시기와 일치한다. 그는 싸구려 재료들로 건축계에 날것의 펑크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90년대 중반이 되었다. Green Day의 "Dookie" 앨범과 The Offsrping의 "Americana" 앨범이 전 세계 차트를 씹어먹던 시절이다. (이들 역시 캘리 출신이다.) 초기 펑크보다 훨씬 세련되고 촉촉한 사운드의 Pop Punk or Neo Punk가 (나를 포함한) 젊은이들을 열광시킬 때, 게리 역시 빌바오 구겐하임과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 을 통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의 건축도 초기보다 훨씬 매끄럽고 유려해졌으며, 전 세계가 사랑하는 메이저 장르가 되었다.
게리의 초기작들은 주로 캘리포니아의 산타 모니카와 베니스 지역에 있다. 이곳들은 70년대 후반 "Dogtown"으로 불리며, 스케이트보드 문화와 펑크 락이 융합된 발원지였다. 이곳 공기의 성분 자체가 펑크였던 것이다.
도대체 캘리포니아는 어떤 곳이길래 이런 돌연변이들이 나왔을까?
지구상에서 현실판 "사기맵"으로 꼽히는 곳은 단연 미국이다. 국토 면적, 지형, 개발 가능한 토지 총량, 국방력, 자원 등 모든 면에서 타국을 압도할 치트키를 쓰고 시작한 나라다. 그런 미국 안에서도 건축적으로 사기맵인 곳은 바로 캘리포니아다.
이유는 날씨에 있다.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고, 습도도 낮기 때문이다. 사람 살기 좋은 날씨일 뿐 아니라, 건물 살기에도 좋은 날씨다. 창호, 단열 등에 매달릴 필요가 적고 (거의 없고), 개방적이고, 형태적 실험이 가능하고, 날씨로 인해 재료가 망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뉴욕 같은 경우는 날씨가 서울과 비슷하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 그리고 서울보다는 덜하지만 미국 서부에 비해 훨씬 습하다. 뉴욕의 건물들은 여름의 습한 더위를 견뎌야 하고, 겨울에는 영하의 온도와 폭설을 견뎌야 한다. 마치 사람이 두꺼운 옷들을 껴입어야 하듯이, 건물도 단열재를 두껍게 넣고, 열을 막거나 보존하기 위해 보이는 곳, 보이지 않는 곳들의 디테일로 꽁꽁 싸매야 한다. 건물들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덥거나 추우면 고통받는다. 습하고 더우면 곰팡이들의 파티장이 되고, 추운 겨울에는 미세한 틈으로 스며든 물이 얼어버린다. 물은 얼음이 되면서 덩치가 커지고 주변 재료를 밀어내는 깡패 같은 힘 (Hydraulic Pressure)을 발휘한다. 이 힘은 콘크리트도 쪼갤 정도로 느리지만 강력하다.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건물은 서서히 병들고 파괴된다.
반면, 캘리포니아의 건축은 "얼고 녹는" (Freeze and Thaw) 고통을 평생 모르고 산다. 얇은 합판 한 장으로 벽을 세워도, 내부와 외부가 뻥 뚫린 공간을 만들어도 얼어 죽을 일이 없다. 게리가 그렇게 자유분방하게 건물을 찢고 구부리고 비틀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축복받은 기후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기맵에도 딱 하나의 치명적인 페널티가 있다: 캘리포니아에는 지진이 있다.
Structural engineering (구조 공학) 입장에서 보면, 캘리포니아는 난이도가 하드코어 하다. 일본처럼 지진 관련 난이도가 극악은 아니지만, 한 번 오면 세게 올 수 있기에, 언제 올지 모르는 지진 때문에 구조 계산이 복잡해지고 관련 규제도 까다롭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 “지진”이라는 제약이 게리의 건축스타일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뉴욕이나 유럽 같은 비지진대 지역은 벽돌, 석재, 콘크리트 같은 무겁고 딱딱한 재료들이 선호된다. 하지만 이런 재료들은 지진에 취약하다. 지진이 날 경우, 유연하게 버티지 못하고 와르르 무너지는 brittle 한 (힘이 가해졌을 때 변형이 거의 없다가 갑자기 파괴되는) 자재들이다.
캘리포니아에서는 지진을 버티기 위해 건물들이 대체로 가볍고, 유연해야 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이곳에서는 목조나 철골이 발달했다. 이들은 흔들리되, 부러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리의 주요 아이템인 plywood, metal, chain link, titanium 등은 전부 초경량 자재들이다. 이 자재들은 지진에 저항하기에 가장 가성비가 좋은 아이템들이다. 만약 게리가 뉴욕이나 보스턴 같은 도시에 있었다면, 그 구불구불하고 구겨진 형태를 돌이나 벽돌로 쌓을 생각에 그의 정신이 나가버렸거나, 건축을 관뒀을 것이다.
캘리는 구조적으로는 힘들지만, 역설적으로 가벼운 재료들을 강요함으로써 게리에게 무한한 형태의 자유를 선물해 준 것이다. 흔들리는 땅이었기에, 그에게 흔들려 보이는 건축이 허락된 것이 아닐까.
여기에 시대적 배경이라는 레이어를 한 장 더 추가해 보자. 당시 동부는 엄숙한 역사와 전통, 그리고 Mies Van Der Rohe의 영향을 받은 점잖은 유리박스 모더니즘이 지배하고 있었다. (참고로 미스 할아버지는 게리보다 더 이전 시대 사람이다)
하지만, 캘리는 동부에 비해 뭔가 근본 없는 동네였다. 역사가 짧고, 도시의 context나 규제가 많이 헐거웠다. 대신 그곳에는 헐리우드의 상상력이 있었고, 남부에는 항공, 군수, 우주 산업이 밀집해 있었다. 게리의 비정형 건축을 가능하게 한 CATIA 소프트웨어도 원래 프랑스 항공기 설계 소프트웨어였는데, 이것을 건축에 도입할 수 있었던 기술적 토양이 바로 캘리포니아에 있었던 것이다. 헐렁하고 자유분방한 "뭐든 해도 되는" 분위기의 캘리포니아는 게리를 건축적 서부 개척 시대의 무법자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다.
비평가들이 게리의 건축을 보며 자주 하는 말은 게리의 건물은 마치 “지진이 나서 무너져 내리는 순간을 정지시켜 놓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땅이 언제 흔들릴지 모르는 불안정한 대지인 캘리포니아에서, 게리의 불안정한 형태는 묘하게도 그 지역의 정서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 미국 동부의 단단하고 영원불멸한 권위적인 건축 느낌이 아니라, 언제든 해체될 수 있을 것 같은 그 위태로움이 캘리의 본질을 꿰뚫은 것은 아닐까.
미국의 시대적 배경과 게리, 그리고 펑크의 발자취는 아주 절묘하게 (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다) 맞물려 있다. 6-70년대 베트남 전쟁과 히피 문화가 낳은 반권위주의는 게리의 싸구려 재료와 초기 펑크의 거친 사운드를 잉태했다. 90년대 경제 호황과 세계화의 물결은 도시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브랜딩 할 강력한 한 방 (landmark)을 원했고, 게리의 화려하고 압도적인 형태는 이런 자본주의의 욕망을 충족시켜 줬고, 팝 펑크의 신나고 밝은 멜로디 역시 젊은이들의 낙천적인 욕망을 충족시켜 줬다.
결론적으로 8-90년대의 미국, 특히 캘리포니아는 문화 + 기술 + 자본 + 규제 + 기후 버프가 전부 동시에 켜진 사기 맵이었다. 이러한 완벽한 배경에서 프랭크 게리라는 거장의 탄생은 (펑크도)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게리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글로 끝내고 싶었으나, 이번에도 실패다. 이 분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 어쩌면, 내 마음속에서 할아버지를 빨리 보내고 싶지 않은 미련에 그런지도 모르겠다.
남은 이야기는 다음 글, Part 3에서 이어서 하겠다.
그리워요 할아버지.
다음 글: God Save the Geh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