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리 할아버지를 기억하며 - Part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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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고 재밌게 생긴 (instagrammable 한) 게리의 프로젝트들은 전부 사랑받기만 했을까? 아니다. 펑크도 인기에 비례한 비판을 많이 받은 만큼, 그가 스타건축가가 된 만큼 그의 프로젝트에 대한 비판과 논쟁도 많았다: 형태에만 집착한다던지, 홍보를 위한 건축이라던지, 랜드마크를 노리는 디자인, 실제 사용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건축이 아닌 도시 브랜드를 위한 “조각품”이라던지, 반복되는 시각적 레퍼토리로 인한 클리셰화 및 자기 복제화, 구조적, 기술적 문제 (지붕 누수, 뜨겁게 반사되는 표면 등), 건설 비용초과, 유지에 드는 고비용, site context 고려 부족 등등.
그에게 쏟아진 비판들은 펑크가 받은 비난들과 닮은 점들이 있다. 펑크가 시대의 문법을 깨버린 음악 장르였던 만큼 열광을 얻었지만, 그만큼 거센 비판도 따라붙었다.
누군가에게 Sex Pistols의 음악은 그저 악기를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실력이 없고, 시끄럽기만 하고, 음악에 구조도, 철학도 없는” 양아치들의 소음이었고, 거대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Green Day의 음악은 상업주의에 영혼을 판 변절로 비치기도 했다.
게리도 비슷했다. 그가 가진 반항성, 즉흥성, 조형적 폭력성, 기존 규범에 대한 전면 도전이 그를 세계적인 스타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에 대한 비판은 그가 건축계를 흔들어버린 깊이만큼, 그의 파급력만큼 따라붙은 짙은 그림자였다.
펑크가 반항으로 시작해 문화가 되고, 문화가 대중화되며 비판을 받고, 그 비판 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는 구조를 가진 것처럼 게리의 작품들도 비슷했다.
몇 가지 평행이론적인 비판점을 알아보자:
1. 연주 실력 논란, 디자인적 결함
대부분 기타 솔로도 없고 속주나 기교를 부릴 것도 없는 펑크 락은 다른 락 장르에 비해 연주하기 난이도가 가장 쉬운 편이다. 그래서 입문 장벽이 낮으며, 특히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무대 위에서 연주는 제대로 안 하면서 생쇼를 하는 퍼포먼스를 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펑크 밴드들은 종종 연주 실력이 형편없다는 비판을 받았듯, (지금은 아니다) 게리의 파격적인 형태는 치명적인 기능적 결함을 동반하곤 했다. 유명한 사건은 MIT의 Stata Center 소송이다. 3억 달러가 넘는 돈을 들여지은 이 건물이 완공 직후부터 비가 새고, 배수에 문제가 생기자 학교는 게리와 시공사를 부실 설계와 시공으로 고소했다. MIT는 이 하자를 보수하는 데만 150만 달러 이상을 썼다고 주장했다. 여기서 펑크스럽지만 실망스러웠던 점은 게리는 뻔뻔한 태도로 대응했다는 것이다. (물론, 숨겨진 진실이 있을 수도 있다. 예를 들면, 시공사에서 게리가 제안한 디테일을 따르지 않았다던지, 학교 측에서 게리의 디테일이 비싸니 더 저렴한 옵션으로 수정했다던지, etc.) 결론적으로 이들은 몇 년 뒤 합의를 보고 소송을 끝냈다.
LA의 월트 디즈니 콘서트 홀은 아름다운 스테인리스 스틸 곡면이 태양 빛을 오목거울처럼 모아 주변에 태양권을 시전 하는 바람에, 건너편 아파트 온도가 치솟고 주차해 둔 자동차 부품이 녹아내리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곡선의 건물 주변에 있으면 곤란하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 그들은 결국 표면을 사포로 갈아내야 했다.
이것들 외에도 특이한 형태로 인해 비롯된 문제들이 많은 건물들도 꽤나 많지만, 이야깃거리 및 상충되는 견해들이 너무 많을 테니 일단 넘어가겠다.
2. 그 노래가 그 노래, 그 건물이 그 건물
대다수의 펑크 노래들은 거의 다 간단한 파워 코드들로 구성되다 보니, 노래가 다 단순하고 비슷하게 들린다는 비판이 있다. (그래서 빨리 질린다는 비판도)
게리 역시 빌바오 구겐하임이 엄청난 대성공을 거두자, 전 세계 모든 도시는 “우리에게도 저런 랜드마크를 만들어달라”며 게리 사무실에 줄을 섰다. 게리는 당연히 그 요구에 충실히 응답했고, 결과적으로 구겨진 종이 같은 금속 덩어리들이 전 세계 도처에 복제되기 시작했다.
구겨진 티타늄을 보며 사람들은 피로감을 느꼈다. (특히 비평가들과 기자들) 그의 건축은 그 땅의 역사나 context를 깊이 고민한 결과라기보다, 도시 브랜딩을 위한 거대한 조각품을 낙하산으로 떨어뜨린 (parachute architecture) 것 같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독창적이었던 그의 스타일이 하나의 ”상업적 클리셰“가 되어버린 것이다.
3. 변절
펑크가 대중적으로 진화하면서 원래의 펑크를 좋아했던 골수팬들은 듣기 편하고 대중적이게 된 펑크를 비판하고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다. 락은 가난해야 된다던지, 대중들의 입맛에 “타협”하는 펑크는 순수한 펑크가 아니라던지, “상업적” 펑크가 음악의 순수성을 죽인다던지, 이런 식의 순진하지만 그럴싸한 비난은 펑크가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만큼 목소리도 커졌다.
초기의 게리는 싼 재료로 기득권을 조롱하던 저항의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스타가 된 이후 그의 건축은 천문학적인 비용이 드는 사치품이 되었다. 복잡한 형태를 구현하기 위한 시공비 초과, 유지 보수에 드는 막대한 비용은 건축주의 등골에 금을 가게 했다. 그의 건축이 여러 웹사이트나 잡지에 소개가 되고 일반인들이 그에 대해 열광할수록 그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비례해서 커졌다.
그의 건물은 낙후된 도시를 살리는 빌바오 효과를 가져왔지만,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다) 동시에 원주민들을 몰아내는 gentrification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실제 사용자의 삶의 질보다는 관광객의 눈요기와 도시 마케팅이 우선시된다는 비판은 비평가들의 단골 소재였다. 이는 마치 닳아 해지고 찢어진 청바지가 노동 계급의 상징에서 수천 달러 짜리 명품 패션 아이템으로 변질된 아이러니를 보는 듯했다.
2014년 그가 기자에게 법규 한 사건을 (Part 1에 나옴) 다시 보자면 조금 의문이 생긴다. 그의 답변이 욱해서 한 답변이라 조금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긴 하지만, 어쩌면 (부정적으로 해석하자면) 자기의 건물은 비가 새고 비용이 비싸도 98%의 순수한 똥 같은 별 볼일 없는 그저 그런 건물들 사이에서 자신은 사람들에게 충격과 감동을 줄 수 있는 건물을 디자인하니 그것으로 족하다는 것인가? 이것은 기자들 뿐만 아니라 같은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특히 대다수의 건축가들을 광역 도발한 것 아닌가. 그가 그렇게 실제로 생각한다는 것은 건축가스러우면서도 펑크적이고 그렇게 놀라울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공개석상에서 법규를 날리며 정색하며 발언한 것은 경솔했던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만큼 그도 어딜 가든 여기저기서 같은 내용으로 물어뜯어대는 피라니아 같은 기자들과 비평가들에게서 지친 것도 있지 않았을까.
대단한 형태는 거대한 비용과 굉장한 문제들이 뒤따른다. 그리고 이는 자연스럽게 비평가들의 군침을 돌게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여기에 게리가 가졌던 핸디캡을 조금 추가하자면, 상당수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과들과 달리, 게리는 금수저 집안 출신도 아니었고, 굉장한 학벌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리고 다수의 유명 건축가들이 자신들의 건축 스타일과 철학을 이론화하며 책을 내고 후배들을 양성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게리는 자신의 스타일을 이론화하거나 후계자 양성에 큰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지금도 게리의 “후계자”라고 할 만한 존재는 나오지 않았다) 외톨이 늑대 스타일이면서 송곳 같던 그는 아무래도 보수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인 건축계에서 존재 자체가 도발 같지 않았을까. 게다가 이론보다 실천적인 그의 건축 스타일이 세계적으로 사랑받으니 건축 기득권 세력 입장에서는 더더욱 눈에 밟혔을 것이다.
Punk가 소음이라는 비난 속에서 대중화되며 오히려 시대의 아이콘적인 장르로 등극했듯, 게리의 건축 스타일과 그를 둘러싼 비판과 논란은 역설적으로 그를 건축계를 넘어 대중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슈퍼스타로 만들어줬다. 흥미롭게도 누구나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그의 독창적인 "자기 복제"와 "기괴한 형태"가 비평가들에게는 먹잇감이었지만, 대중에게는 그를 아주 매력적인 "캐릭터"로 각인시키는데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덕분에 그는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대중이 사랑하는 존재가 되었다.
2005년 방영된 The Simpsons Season 16, episode "The seven-beer snitch"에 본인으로 출연했다. 이 에피소드에서 그는 음악 공연장을 설계하는 건축가로 등장하며, 작중에서 구겨진 편지를 영감으로 건물을 설계하는 장면이 나온다. (밑에 영상은 짧고 웃기니 꼭 체크해 보세요)
https://youtu.be/1p6rrn-PimU?si=VaXl-ucgQ16Qv0TN
2004년 애니메이션 Arthur의 한 에피소드에서도 본인 목소리로 자기 역할을 연기했다. 심슨과 달리 아이들 만화라 그런지 아주 따뜻하고 자상한 목소리 연기가 인상적이다. (훈훈하지만 그다지 재미는 없다)
https://youtu.be/ogcbzKCb6yw?si=x2jf4AmKiARI-TIG
이 외에도 광고, 강의, 다큐 등 다양한 미디어에 그는 등장했다. 건축가가 이렇게 친숙한 대중적 스타로 소비된 것은 아마 역사상 처음이었을 것이다.
게리는 스스로를 건축가 이전에 예술가라고 말해왔고, 실제로 그는 건물의 스케일을 벗어난 수많은 디자인을 남겼다. 가구, 주얼리, 술병, 향수병, 그리고 조각에 이르기까지 장르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게리 특유의 비틀기와 구겨짐의 미학은 모든 오브제에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래서 그의 디자인은 언제나 즉각적으로 알아볼 수 있고, 그 점에서 그는 건축가를 넘어선 만능 예술가로서 하나의 시각적 아이콘이 되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는 그렇게 “Corporate Starchitect (상업적 스타 건축가)“로 변절되고 삐까뻔쩍한 디자인만 했을까? 웬만한 건축가들은 그렇게 되었을 확률이 높겠지만, 게리 할아버지는 웬만한 건축가가 아니었다. 그는 꽤나 꾸준히 화려한 프로젝트뿐만이 아닌 pro bono (사회 공헌) 프로젝트들도 많이 했다. 그는 96세에 눈을 감으실 때까지 끊임없이 정력적으로 다양한 프로젝트를 했다. (개인적으로 이것도 그가 캘리에 살아서 좋은 환경으로 인한 건강버프를 받아서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몇 가지 프로젝트들 보자면:
- Brad Pitt가 주도한 New Orleans의 허리케인 카트리나 (2008년) 피해자들을 위한 집짓기 프로젝트 “Make It Right"에 참여했다. (의도는 좋았으나 결과적으로는 실패했다고 평가받는 프로젝트였다)
- Judith and Thomas L. Beckmen YOLA Center: LA 필하모닉 청소년 오케스트라 (저소득층 아이들 대상)를 위한 공연장. 기존 은행 건물을 개조했다.
- Children's Institute, Inc. (CII Watts Campus): 저소득층 가족과 아동을 위한 사회복지 시설 설계에 참여했다.
- Jazz Bakery: LA의 비영리 공연 공간에 대한 설계 작업에 참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역시 돈을 버는 프로젝트가 아니라 커뮤니티/예술 공간을 위한 협업이었다. 디자인은 오래전에 끝났으나, 자금 조달 문제로 아직 착공되지 못했다.
- Pierre Boulez Saal (West-Eastern Divan Orchestra Concert Hall): 베를린의 서로 다른 배경의 청년 음악가들이 함께하는 비영리 음악 프로젝트를 위한 공연장 설계에도 관여했다.
- LA River Revitalization: 공공 프로젝트였던 이 계획은 단순한 건물 설계를 넘어, 도시, 환경, 커뮤니티 리듬을 재구성하는 공공적 기획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 중)
마치 펑크 밴드가 성공해서 변절자 소리를 듣지만 세계적인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가 되고, 월드 투어를 돌며 떼돈을 번 뒤에, 다시 자신이 처음 기타를 쳤던 허름한 클럽이나 동네 공원으로 돌아와 무료 공연을 여는 느낌처럼 게리는 Louis Vuitton 회장을 위한 미술관을 짓는 동시에, LA에서 위험하고 가난한 와츠와 잉글우드의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화려한 티타늄을 내려놓고, 다시 겸손하고 따뜻한 재료들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그는 프로젝트도 많고 시간도 없었을 텐데 왜 굳이 이런 프로젝트들을 계속 해왔을까? 게리 정도의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건축가가 물밀듯 들어오는 세계적인 프로젝트들로 엄청나게 바쁘고 할 일이 많은 와중에 그의 사무소가 이런 프로젝트들을 재능기부로 꾸준히 했다는 것은 꽤나 비현실적으로 보일 정도다.
원래 흙수저 출신이니까, 혹은 비싼 건물만 짓는다는 비판에 대한 펑크적인 대답이었을까? 게리는 생전에 “건축이 단순히 건물이나 아름다움 그 자체를 넘어서, 사람들의 삶을 담아내야 한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어린이, 교육, 공공 커뮤니티 공간에 참여한 것은 그가 생각한 건축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믿음이 일정 부분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게리는 자신의 사무소가 가진 창의적 자원을 커뮤니티에 쓰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건축의 본질을 단지 시각적 아름다움만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사람과 사회, 정서적 의미를 만들어내는 더 넓은 행위로 보았다. 많은 비평가들이 비평했던 바와 달리, 그는 단순히 랜드마크와 “새로운 신기한 형태“에만 집착한 건축가가 아닌, 사람과 도시라는 현실 속에서 건축의 역할을 죽을 때까지 고민한 사람 냄새나는 휴머니스트였다.
요즘에는 스타 건축가의 시대가 끝났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세계적인 건축가들은 경제적 낙관과 건설 붐이 맞물렸던 20세기 후반을 배경으로 등장했다. 지금의 세계는 그때보다 훨씬 불안정하고, 빠르며, 예측불허하다. 그런 점에서 게리는 운 좋게 시대를 잘 만난 건축가였고, 그 시대와 배경이 허락한 모든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인 인물이었다. 그는 전 세계를 무대로 가장 자유로(워보이는) 건축을 했고, 엄청난 비판과 논란을 견디며 대중적 명성과 부, 그리고 장수와 사회적 기여까지, 건축가로서 누릴 수 있는 전무후무한 영광의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
게리는 자신의 건축이 오랫동안 남기를 바랐다. 우리가 고대의 건축을 보며 그 시대를 상상하듯, 언젠가 미래의 누군가가 자신의 건축을 통해 20세기말과 21세기 초를 떠올리기를 원했다. AI가 이미지와 형태를 무한히 생산하는 시대에 들어선 지금, 그의 건축은 어쩌면 ‘AI 이전의 건축이 인간의 손과 상상력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형태의 극한’을 보여주는 마지막 증거처럼 남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AI는 급격히 발전 중이고, 몇 초만에 수천 개의 “게리 같은” 형태와 디자인을 만들어낸다. 그렇다면 그의 건축은 무엇으로 남을까. 아마도 그것은 형태만이 아니라, 그 형태를 실제로 짓겠다고 결심했던 시대의 용기이지 않을까. 그의 이름은 창의적이면서도 인간적인 대범함이 빚어낸 영감의 원천으로 기억될 것이라 생각된다.
Goodbye, 할아버지. 당신이 세상에 남긴 연주는 정말 시끄럽고, 아름다웠습니다.
P.S. 프랭크 게리 사무소의 공식 웹사이트에 들어가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세계 최고의 건축 사무소 중 하나인데, 홈페이지가 그냥 동네 건축 사무소보다도 대충 만든 듯한 느낌이었다. 작품 사진이 단 하나도 없고, 화려한 그래픽도 없다. 메인 페이지에는 덜렁 게리의 스케치 하나뿐이다. 바로 이게 건축가의 Swag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