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숙한 건축 산업을 향하여
Bjarke Ingels Group(B.I.G.)은 건축을 하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이름이다. 덴마크에서 설립된 이후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사무실을 둔 대표적인 스타 건축가 사무소다. Bjarke Ingels라는 인물의 스타성과 함께, 수많은 건축인들이 한 번쯤은 일해보고 싶어 하는 회사이기도 하다. 건축계의 애플이나 엔비디아처럼 선망의 대상이자 매력적인 회사다.
2026년 초, 약 80명의 BIG 런던 사무실 직원들과 지지자들이 정리해고 절차를 문제 삼아 런던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회사 경영진이 2026년 1월 5일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대규모 정리해고에 대한 항의였다. 이 시위는 영국 건축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동조합 Section of Architectural Workers (SAW-Unite)가 조직했다.
BIG 측은 "통제할 수 없는 사유"로 2025년 말 런던 스튜디오의 주요 프로젝트 하나가 종료되었고, 그로 인해 최대 72명의 직원을 해고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SAW-Unite는 최근 몇 년간 BIG의 수익이 크게 증가했고 다른 지사들은 대규모 채용을 진행 중인 상황에서 런던 사무실만 대규모 정리해고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노동자들의 분노는 해고 자체보다 방식에 있었다. 정리해고 절차가 성급했고, 의사소통 또한 부실했다고 말했다. 파트너 및 고위직은 급여 삭감을 하지 않은 반면, 주니어 직원들만 해고 위험에 놓였고, 협의는 투명성이 제한된 채 점심시간에 진행되었다고 한다. 노조는 공식 교섭, 해고 대신 가능한 대안 모색, 해고 대상자에 대한 6개월분 소급 지급, 재정 상황에 대한 투명한 공개를 요구했으나,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건축은 있어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경기에 극도로 취약한 산업이다. 소수의 잘 나가는 사무소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건축사무소는 늘 빠듯한 조건 속에서 버틴다. 프로젝트를 따는 것도 어렵고, 어렵게 따낸 프로젝트가 엎어지는 일도 드물지 않다. 그로 인해 팀 단위의 정리해고가 발생하는 것 역시 다들 겪으며 버티는 그저 이 바닥의 일상일 뿐이다. "원래 건축은 그런 거다"라는 체념이 우리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역시 해고 자체가 문제가 아닌 방식의 문제다. 누가 희생을 졌는지, 의사결정 과정이 공정하고 투명했는지, 법적·윤리적 절차를 지켰는지의 문제다. 이 사건이 큰 반발을 불러온 이유는,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슈퍼스타 건축회사의 해고가 비겁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에는 Redundancy Law (정리해고법)가 있어서 20명 이상을 해고할 경우 최소 30일에서 45일간 노조와 협의를 거쳐야 하고, 대상 선정 기준도 까다롭게 규정되어 있다. 그래서 이 시위는 단순한 감정적 반발이 아니라, "법과 절차를 지켜라"는 요구였던 것이다.
참고로 미국은 At-Will Employment (임의고용) 방식이다. 이는 정당한 사유 없이도 언제든 해고할 수 있고, 갑자기 "오늘 당장 나가"라고 해도 법적으로 별 문제가 없다. 프로젝트가 엎어져 팀 전체가 공중분해 되어도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라며 그저 순수한 낭만과 열정으로 버티는 것이 미덕처럼 여겨진다. 건축 업계는 오랜 기간 동안 노동자들에게 아주 강력한 순교자 코스프레 가스라이팅을 해온 셈이다.
BIG London 정리해고 사건이 흥미로운 것은 이 문제가 BIG만의 문제가 아닌 것도 있다.
웹툰이자 드라마 <송곳>에서 프랑스 기업이 한국에 와서 자기 나라에서는 못 하는 짓을 거침없이 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번 사건과 구조가 이와 묘하게 닮아있다. BIG의 코펜하겐 본사는 강력한 노동자 보호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해외 지사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해고가 가능한 구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모두가 동경하는 복지 천국 북유럽 스타일의 "진보적인 이미지"를 가진 회사가 해외에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과 배신감이 이번 분노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 같다.
비슷한 맥락으로, 2023년 노르웨이에서 설립한 세계적인 건축 회사 Snøhetta의 미국 사무소에서 직원들이 노동조합 결성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일이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노조 결성을 지지했던 직원 8명이 해고됐고, 미국 국립노동관계위원회 (NLRB)는 이를 불법 해고라고 비난했다. 당연하지만, 회사 측은 부인했다. 이 사건 역시 북유럽 기반의 "혁신적이고 민주적인" 이미지를 가졌던 인기 많던 회사였기에 더 실망스러웠다.
이 사건 하나로 건축 산업이 바로 바뀌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Snøhetta의 노조 탄압 논란, 최근 미국 건축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노조 결성 시도들과 함께 보면, 스타 건축사무소의 노동 문제가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동안 스타 건축가와 스타 사무소의 힘은 압도적이었고, 많은 건축인들은 그 안에서 일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약자가 되어 극한의 업무 강도를 견디는 구조를 감내해 왔다. 하지만 리스크는 직원에게 전가하고, 수익은 파트너가 독점하는 구시대적 방식에 대한 반발이 이제야 조금씩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처럼 보인다. 이전 글에서 스타 건축가 시대의 황혼을 얘기했는데, 그 연장선에서 웅크리고 있던 건축 노동자들이 이제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것 아닐까.
이제 건축은 더 이상 소수 스타의 헌신이나 열정 페이만으로 유지되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 BIG London 시위는 건축이 더 이상 낭만적인 예술 영역에만 머물지 않고, 하나의 "산업"으로서 투명한 절차와 윤리를 갖춰야 한다는 작지만 강력한 신호라고 생각한다.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점점 커질 것이고, 노조는 더 생길 것이며, 회사들은 억제하려 할 것이다. 이 크고 작은 갈등과 잡음은 건축이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산업"답게 자라려는 과정의 성장통이지 않을까. 이렇게 건축 산업은 비로소 점점 성숙해질 것이라 믿는다.
언제까지 "아프니까 건축이다"라며 버틸 수는 없다. 건축이 진정한 전문직이라면, 그 전문성은 설계 능력뿐 아니라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에서도 드러나야 하지 않을까. 이 사건으로 BIG이 입게 될 이미지 타격은 적지 않겠지만, 이 진통을 거쳐 건축 담론 안에 노조, 노동, 절차 같은 개념들이 안착하길 바란다. 그것이 우리가 꿈꾸는 성숙한 건축 산업의 시작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