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ffort without talent is a waste, but talent without effort is a waste of potential."
"노력 없이 재능은 잠재력의 낭비이고, 재능 없이 노력은 허비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표현 욕구와 자기애가 높은 사람들로, 저마다 약간씩 나르시즘 성향을 가지고 있다. 필자 또한 나르시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본질 또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 그 자체가 이유인 경우가 많다.
물론 타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이러한 '욕구'가 없다고 말하는게 더 이상한거다. 글을 쓰는 누군가가 '나는 나르시즘 성향이 없는데?'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건 메타인지가 잘 안 되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아니면 본인 스스로를 속이며 사는 사람이거나.
트레이딩도 마찬가지다. 트레이딩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높은 사람들이다. 불확실한 시장 속에서 결단력 있게 트레이딩을 하는 행위 자체도 자기 확신과 자신감이 높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파생시장으로 넘어가게 되면 더욱 그러하다. 그들과 나는, 높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과감함을 가진 강심장들이며, 남들은 손발 떨면서 하지도 못할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해나간다.
파생시장에서는 이러한 결단력, 승부욕, 자신감은 필요하다. 그래야 큰돈을 번다. 적어도 내 주변에 트레이딩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높은 강인한 남성 이미지 그 자체이며, 첫인상도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말 그대로 빡세게 생겼다. 한 성깔 하게 생겼다. 실제로 그렇다. (필자는 아이러니하게 정반대다. 어디 가서 성깔있는 여자 같다는 소리 듣는다. 진짜다;;)
필자는 몸도 마른 편이며, 외모도 여성스럽다.(내입으로 이런 말하니깐 웃기다) 대신 내면이 상당히 강한 남자다. 태생적으로 악바리 근성을 타고난 사람이다. 힘쓰는 현장일이 뭐 있냐는 질문에, 나올 수 있는 직업은 다해봤다. 목표를 위해서는 당장 죽어도 상관이 없다는 마인드와 추진력을 가진 사람이다. 때문에 나랑 친한 사람들은 절대 나를 쉽게 대하지 못한다. 일부러라도 겁나 분위기 잡고 다닌다.
오늘은 내 집안 이야기이다. 필자는 어디서 내 이야기를 풀어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흥미롭게 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개인적인 사생활 이야기를 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편이다.
우리 집안은 대대로 잘 사는 집안에 속한다. '완전 부자'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이 보기에 '부자'라고 느껴질 재력은 가지고 있다. 해운대 마린시티에 있는 3대 고층 아파트 중 하나가 우리 본가이며, 촌동네에 전원주택과 땅을 소유하고 있다. 누나는 부산에서 오션뷰가 보이는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필자는 해운대 지하철역 주변 어딘가에 오션뷰가 보이는 아파트에서 혼자 산다.
중요한 건 누나도 나도 집안 도움을 아예 받지 않고, 본인이 이뤄낸 성과라는 거다. 그런 점에서 난 우리 집안이 대대적으로 물려받은 뭔가 재능이나 DNA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외가 쪽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되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은데, 큰 단락만 이야기하자면 외증조할머니는 일본인이며, 외증조할아버지는 한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생계형 이주 케이스이다.(친일파 아니다^^;) 거기서 증조할머니를 만나고, 일이 잘 풀려 일본에서 사업까지 할 수 있게 된다.
당시 시대적 배경으로 봤을 때 일본에서 한국인 신분으로 사업을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인형공장을 했다고 하신다. 내 생각으로는 그 사업의 형태가 소규모였고, 다른 이와 협력/인맥 관계(일본인)를 맺었기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다. 정확한 내막은 모른다. 할머니가 나한테 거짓말을 할 이유는없으니믿을 뿐이다.
그러다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이 터졌고, 증조할아버지가 할머니를 포함한 모든 가족을 데리고 한국으로 다시 넘어오게 되신다. 당시에 전쟁 혼란 속에서 상당수의 일본인이 한국으로 넘어오면서(부산) 한국인과 동화되는 케이스가 많았다.(재한 일본인, 한일 혼혈, 귀환 동포 등등) 그런 케이스 중 하나가 우리 집안이다.
때문에 내 피 속에서는 일본인 피가 아주~ 조금은 섞여 있어서,간혹 누군가 "너 일본인 같아"라고 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그도 그럴 것이 필자는 평소 머리가 길어서 꽁지머리를 하고 다닌다.(남들이 보기에 흡사 사무라이;;).
부산으로 넘어오신 뒤 외할머니는 일본어와 한국어가 유창한 분이셨기에, 당시 부산에서 제일 큰 호텔로 알려진 동래관광호텔(부산 최초 일식, 한식, 양식 호텔)에서 통역사로 일을 하시게 된다. 거기서 호텔 총주방장인 외할아버지와 결혼을 하셨고, 부산에서 생활하게 되신다. 그때 찍은 결혼식 사진이 아직도 있는데, 두 분 다 양복혼례(서양식 결혼식)를 하셨다.
시대적 배경으로 봤을 때 예식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진, 양복혼례는 더더욱 흔치 않은 케이스이다. 외할머니는 집안에 가사도우미도 계셨다고 한다. 흔치 않은 열대과일을 쌓아놓고 드셨다고도 한다. 우리 외할아버지가 호텔 총주방장이셨으니, 가능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어머니가 성인이 되셨을 쯤에는 외할머니는 지역에서 문방구 겸 분식집을 하셨다. 외할아버지는 부동산으로 큰돈을 버셨다.)
이런 집안 재력/자산을 우리 어머니가 지금까지 잘 보존해 오셨고, 자산을 더 불리신 케이스다. 또한 우리 어머니도 정상적인 루트로 인생을 살아오신 분이 아니다. 지금은 지역구에서 제일 큰 미용실, 어린이집 사업을 하고 계신데, 처음에는 작은 미용실 직원으로 일하시면서 가정 어린이집 사업까지 병행하신 분이다. 우리 어머니는 흔한 여성상이 아니다. 정말 강인한 사람이다. 난 우리 어머니를 진심으로 존경한다. (당시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본인 집을 이용해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내 나이 분들은 아마 기억하실 거다.)
아버지 쪽으로는 친부, 양부 두 분 전부 지금 사업을 하고 계신다.(횟집, 인테리어) (우리 어머니는 결혼 두 번 하시고 이혼도 두 번 하셨다... 신랑 복은 진짜 없다.) 아버지 두 분 다 나하고는 지금도 접점이 있지만, 어머니는 두 분이랑 연락도 안 하시고 산다.
우리 누나 이야기도 빼먹을 수 없다^^.. 우리 누나는 스트리머다. 여캠 방송을 하고 있는데, 당장 구글에 검색하면 누나 얼굴 수백개가 뜨기에.. 이름 공개를 쉽게 할 수가 없다. 인지도 있는 스트리머들이 어느 정도 돈을 버는지는 독자분들도 대충 알 거다. 상당히 잘 번다. +누나 친구는 한국에서 활동하는 백만 유튜버다. 이름 알려주면 대부분 안다.
내 이야기는 굳이 안 해도 독자분들이 아실 거다. 비트코인 트레이딩, 브런치, E북 , 카톡 운영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정리를 해보면, 우리 집안은 대대적으로 사업가 기질을 조금씩 전부 가지고 있다. BJ 활동과 트레이딩도 리스크를 감수하고, 자기 자신을 자산으로서 활용하는 것이 일종의 사업 형태니 말이다. 필자는 전업 트레이딩 이전에 아마존 위탁판매, 다른 주제의 전자책 판매 등등 사업도 했고, 온라인에서 다양한 활동도 했었다.
나는 이런 점들이 어쩌면 내가 집안 대대로 재능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트레이딩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회사 생활에 진절머리가 났던 것도, 평소 반골 기질이 심각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필자는 머리가 나쁜 편에 속한다. 공부를 정말 못했고, 일머리가 좋은 편도 아니었다. 그래서 트레이딩을 시작했을 때 진짜 미치도록 팠다. 설렁설렁해서는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2년을 깡통 차고 빚더미에 깔렸을 때도 트레이딩이라는 행위를 포기 안 했다. 남들이라면 포기했겠지만, 앞서 말했듯 필자는 나르시즘 성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남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높은 사람이였기 때문이다. 막말로 내가 망해도 우리 집안 자산으로 평생 놀고먹어도 될 수준이었기에 쉽게 포기 안 한 것도 있다.
내가 트레이딩을 포기하지 않은 제일 '큰' 이유는 우리 어머니가 상당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집안 재력으로 나에게 금전적인 도움이나 개념 없는 금수저로서 살게 내버려 둘 수도 있었는데, 절대 그러질 않았다. 내가 성인이 되고도 그 어떤 금전적 도움을 주질 않았다. 학창시절 그 흔한 용돈 한번 받아 본 적이 없다.
때문에 나는 내가 내 힘으로 성공하고 '증명'해야겠다는 욕구가 상당히 높았다. 난 빨리 부자가 되고 싶었고 잘살고 싶었다. 최대한 빨리 거들먹 거리면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20대 초반 시절, 평생을 살아온 부산을 도망치듯 떠나 경기도에 한 회사에 취업하게 된다. 난 이후 우리 어머니 전화를 100통도 넘게 무시했다. (캐리어 하나 끌고 10만 원 들고 집 나왔다. 놀이터에서 패딩 깔고 자기도 했다.)
거기서 귀인을 만났고, 트레이딩으로 일이 잘 풀리기 시작했고, 브런치를 시작하다 또 다른 귀인을 만나게 된다. 이게 지금까지 내 인생 이야기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썼더니 무슨 주제인지도 까먹어버렸는데, 결론만 말하면 난 트레이딩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재능도 어쩌면 있었다는 거다. 물론 미칠 듯이 노력도 했지만, 재능도 없진 않았다. 그래서 독자분들에게 함부로 말을 못 하겠다. 내가 정말 노력으로 여기까지 왔다고 말이다. 재능 없이 노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노력 없는 재능은 잠재력의 낭비다. 독자분들은 트레이딩으로 성공할 수 있다. 태생적으로 1% 재능이라도 있다면 99% 노력으로 커버가능하다. 그 99% 노력이 정말 하늘을 우러러보고 1% 거짓말 없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