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빠삐용의 주인공 앙리 세리야르는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그는 몇 년간의 감옥 생활 간 총 9번의 탈옥을 시도했었다.
애석한 시간이 그를 백발의 노인으로 만들고, 어쩌면 인생의 마지막을 평온하게 보낼 수도 있었던 악마의 섬 (Île du Diable)에서 조차도 그는 '자유'라는 욕망을 버리지 못했다.
그의 오래 친구 드가는 절벽에서 끝내 뛰지 못하고 투박한 코코넛 주머니로 간신히 몸을 띄워 거센 파도를 헤쳐나가는 앙리를 보며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드가가 마지막에 지은 표정은 앙리에 대한 존경심이었을까. 아니면 미련함 혹은 안타까움이었을까.
남들보다 차트를 조금 더 읽을 줄 안다는 지식만으로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과거의 내가 떠오른다.
믿었던 이들에게 내 현실을 이야기했을 때 그들은 현실적인 조언이랍시고 포기하라고 했고 자연스럽게 나를 멀리하는 것을 느꼈다.
괜히 이야기했나 싶었다.
어느 날 양부와의 말다툼에서 그는 나에게 정말.. 상처 같은 말들을 내뱉었다.
'어쭙잖은 투자나 한다면서 애새끼 잘 키웠네'
엄마를 향한 말이었다. 그날 우리 엄마의 표정을 난기억한다.
그의 말에 동의하는 것인지, 나에 대한 일망의 희망을 짓밟았던 그에 대한 증오였는지는 모른다.
다만 좀처럼 해석할 수 없는 엄마의 표정이 너무 충격적이었다.
엄마는 어떠한 말도 행동도 하지 않았다. 그 적막이 아직도 생생하다.
2년간 가족과의 결별 후 명절에 처음으로 수도권에서 본가로 내려갔을 때 일어났던 일이었다.
이후 부모님과는 더 멀어지게 된다.
'트레이딩'이라는 것은 나에게 있어서 돈을 버는 것 그 이상의 '증명' 그 자체의 수단이다.
내가 옳았음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 나의 결백과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
이런 내가 어떻게 이 짓을 그만둘 수 있겠는가. 무조건 성공해야 되는데.. 무조건 부자가 되야 하는데...
자랑스러운 아들이여야 하는데.
그래서 계속했다. 그냥.. 그냥 골방에 박혀 사람도 안 만나고 계속한 거다. 그랬더니 하늘이 도와준 거다.
잘 보이고 싶은 어린 마음에 슈퍼카를 타고 본가에 마침내 도착했던 그날은 절대로 잊을 수 없다.
아마 내가 이 정도로 성공했으리는 상상하지 못했겠지.
시장이 많이 위축된 것 같은데 당연한 수순이다. 잘들 피했으리라 생각 든다.
내년만 잘 버티면 또 기회가 올 것이 뻔한 시장 레파토리다.
어른들이 인생을 살면서 몇 번 오지 않는 기회를 잘 잡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난 공감하지 못한다.
기회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고 우리 주변에 공존한다. 그저 기회인지 모를 뿐이다.
그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서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으면 된다.
독자분들. 조금만 더 버텨내자. 인생사는 게 어디 쉬운가.
다들 각기 다른 아픔은 과거에 두고 앞으로 나아가보자. 힘들어도 조금만 더 해보자. 그래야 미련이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그게 정말 기회를 놓친 비참한 과거가 되고 후회로 남는다.
난 감성팔이도 동기부여팔이도 아니다.
인생을 살면서 배운 진리를 독자분들에게 전해줄 사명만 가진 사람이지.
또 한 해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