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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율에 매인 육신, <타임 패러독스(2014)>

[퀴네필 스타터 팩 06]

by 수환
인과율에 매인 육신, <타임 패러독스(Predestination)>


영화 <타임 패러독스(Predestination)>는 로버트 A. 하인라인 Robert A. Heinlein 의 1958년작 <너희 모든 좀비는(All You Zombies)>을 원작으로 한다. 이를 스크린에 충실하게 재현한 영화는 완성도가 좋지만 아쉬움을 남기는 측면도 있다.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편수가 정말 많고 그 설정도 다양하다. 메이저한 것만 들어도 타임워프, 타임루프, 타임리프, 타임슬립 등이 있다. <타임 패러독스>는 등장인물이 자신의 의지와 기술로 시간을 이동한다는 면에서는 타임리프물이라고 볼 수 있지만, 미래와 과거를 가리지 않고 오갈 수 있다는 점에서 정석적인 회귀물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주인공이 일의 인과와 모순에 계속해서 엮인다는 설정을 주목한다면 타임루프물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렇게 장르 이름 붙이기에 연연하는 것은 작품이 은유하는 퀴어 시간성을 간과하는 행위일지도 모른다. 극에는 명시적으로 퀴어인 캐릭터가 등장하며, 그를 중심축으로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퀴어 시간성 Queer Temporality 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살펴봐야 한다. 퀴어 시간성이란, 규범적 시간성(이성결혼과 출산 같은 과업을 생각하면 된다)에서 벗어난 대안적인 시간성이다. 인생의 어떤 구간은 (재생산과 관련하여) 성적이며 어떤 구간은 (노화나 장애 등으로 인해) 성적이지 않다는 것이 고전적인(재생산 중심적인) 시간 관념의 특징이다. 그러나 (나이나 인종, 몸의 기능 등을 포함하여) 퀴어한 삶의 경로에서 젠더와 섹슈얼리티는 지연되거나 비선형적이고, 횡단과 재정의로 가득 차있다. <타임 패러독스>는 (우연으로 보이지만) 그 비규범적인 삶의 방식과 순간들에 대한 은유를 담고 있다. 그런데 원작자나 영화의 제작진들이 퀴어 당사자가 아니며 같은 시대 사람들에 비해 특별히 더 퀴어프렌들리한 것도 아닌 듯 해서, 여러모로 묘한 감정이 드는 작품이다.

인터섹스이며 트랜스젠더인 주인공은 자기자신에 대해 알기 전 이미 'sometimes I guess I feel like I'm living in somebody else's body'라는 말을 한다. 나는 항상 어딘가에 충분히 속하지 못했고 어쩌면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우주에 갈 수만 있다면, 그게 비행사 남자들의 시중을 드는 역할이어도 자원한다. 그러나 본인의 평소 의사에 반해, 주인공은 결국 사랑에 빠지고 아이를 낳고 몸이 변화하고 여성독자들을 위한 통속소설을 쓰는 남성작가로 살고 시간여행을 통해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템포럴 요원이 된다. 그가 거쳐야 하는 역설은 그 자체로 세상을 뒤바꾸는 에너지이다. 과거도 미래도 혈통도 역사도 없는 존재, 닭이면서 알이자 혹은 제 꼬리를 삼키는 뱀 우로보로스와 같은 주인공은 비선형적인 시공간에서 퀴어해질 수 밖에 없다. 선형적 구조에 사는 사람들과는 다른 신체와 정체성을 가지고 다른 경험을 하기 때문이다.

<타임 패러독스> 영화는 꽤 볼 만한 작품이다. 두 주연 배우의 연기가 훌륭하며, 깔끔하고 세련된 영상미와 촘촘한 연출을 자랑한다. (원작뿐 아니라 다른 SF 소설에서도 사용된 적 있는) 시간여행과 주인공의 퀴어니스가 병치되는 설정은 주류의, 많은 감상자에게 몰입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 물론 실재하는 퀴어인 우리가 시간여행만큼이나 비현실적인 존재인가, 또 그를 통해서야 재현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도달하면 조금 지겨워진다. 그러나 헤테로규범적인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균열을 내고, 여럿으로 보이던 진실이 사실은 단일하다 말하는 구성은 2025년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다. 원작소설과 영화가 트랜스젠더와 인터섹스의 개념을 혼동 혹은 의도적으로 혼용하고 있고 등장인물들은 내적 동기를 부여받기보다는 장기말 같은 취급을 받는다 해도 그렇다.

원제 Predestination은 예정론, 숙명 등을 의미하지만, 영화는 <마션(The Martian)>의 작가 앤디 위어 Andy Weir 의 단편 <더 에그(The Egg)>를 떠올리게도 한다(원문 https://www.galactanet.com/oneoff/theegg_mod.html, 번역 https://blog.naver.com/reindeerice/220485240551). 인간은 세상을 근사해낸 수치로서의 시간과, 여기가 알의 안쪽인지 바깥쪽인지 가늠할 수 없는 공간에 갇혀 있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진정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지금껏 타자화되어온 신체들이 인간의 것으로 존중받을 수 있다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차별과 혐오가 되풀이되는 세상은 일견 타임루프물과 비슷해 보인다. 그 고리를 끊어야 인간의 유한한 삶에도 의미가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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