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르고 있지만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집에 있으면 눈에 보이는 일은 많다. TV며 책장에 쌓인 뽀얀 먼지도 눈에 들어오고... 유리문에 찍어놓은 손자국도 눈에 들어온다. 예쁘게 키워보겠다고 데리고 온 화초들 위에도 먼지가 뽀얗고, 빨래는 금방 쌓여간다. 방바닥에 머리카락은 도통 누구의 것이 저렇게 많이 빠지는지... 한 끼만 먹어도 설거지는 한가득이고... 문만 열면 쏟아질 것 같은 반찬 그릇도 잘 정리를 해야 할 텐데... 공부하겠다고 사다 놓은 책도 한가득, 읽겠다고 도서관까지 가서 빌려온 책들도 한가득이다. 하지만 하루 종일 누워서 해야 하는데... 할 일이 많은데... 그러다 보면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 아니.. 안 하는 건가? 나는 도통 왜 이러는 거지? 하며 내 원망으로 끝이 난다.
한없이 많아 보이는 일들이 버겁고 무섭다. 남들 다 하는 집안 살림인데... 더더군다나 내 주변엔 애까지 키워가며 일도 해가며 하는 일인데 난 왜 이러나 자책을 수없이 한다. 결국 또 뒹굴거리다 남편이 올 시간에 맞춰 설거지를 후딱 하고, 청소를 한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바보 같다. 제일 한심하다.
어떤 하루엔 남편을 보내고 그냥 서 있었다. 앉으면 누울 것 같고... 그럼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아서... 춥지만 창문을 열어서 밖을 구경했다. 출근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보였다. 이번엔 음악을 틀었다. 그러니... 청소할 용기가 났다. 열심히 먼지를 털어내고... 바닥을 닦기까지 했다. 천천히...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을 들으며 하다 보니 배가 고팠다. 모처럼 먹고 싶은 메뉴도 생각났다. 그렇지만 집에 재료는 없었다. 오랜만에 배달음식을 주문했다. 아... 배달을 받으려면 옷을 갈아입어야겠네... 얼른 씻고 옷도 갈아입었다. 도착한 음식을 맛있게 먹고 치우다 보니 재활용 쓰레기가 눈에 들어왔다. 들고나가 비우고 있는데 햇살이 좋았다. 그래서 그대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았다. 돌다 보니 동네 마트에 세일을 한단다. 그래서 몇 가지 집어 들고 따뜻한 라테 한잔 사들고 집으로 왔다. 별것 아닌데... 기분이 좋았다. 이 기분을 글로 쓰고 싶어 졌다.
요즘도 종종 남편이 나가면 창을 연다. 그리고 또 할 용기가 생기면 천천히 한 가지씩 해 본다. 싱크대는 다 정리했고, 베란다 창고도 정리를 마쳤다. 오늘은... 냉장고 정리를 해 볼참이다. TO DO 리스트를 작성해 가며 그 리스트에 깔려 살 때는 오히려 몰랐던 즐거움이다. 게으른 것 같지만 하나씩... 지금에 만족하기로 했다. 또 엑스레이를 촬영하고 싶은 날엔 그렇게 한다. 다만... 남편이 퇴근하기 전까지...ㅋㅋ 글을 쓰니 들키는 게 많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