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취미생활
시험관을 하게 되면서 기다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난포가 많이 잘 자라기를 기다리고, 채취를 하면 수정이 잘 돼서 분열을 잘하고 견뎌 주기를 기다리고, 그러면서 언제쯤 이식할지를 기다리고, 이식을 하면 결과를 들을 수 있는 피검사 날까지... 이중에 제일 힘든 건 역시 피검사를 기다리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아직 반응도 안 할 시기에 겁 없이 테스트기를 집어 들곤 했었지만... 두 번째 시술부터는 테스터도 무서워서 못했다. 임신으로 나와도 '이게 진짜일까?' 싶고, 아닌 걸로 나오면 '진짜 아닌 건가?' 싶은 마음이 들어서 이다. 믿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안 믿을 수도 없고...
이런 시간을 이겨 내려고 여러 가지 취미 생활들을 많이 하시는데 -물론 나같이 가정주부에 첫째를 시도하고 있는 경우에나 가능하겠지만- 책만 계속 읽어대다가 결국 재 입학을 했다. 방송통신대학교에 입학을 해서 한 학기를 겨우 다니고 회사일로 바빠 휴학 중이었다. 그걸 다시 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무려 6년 만에... 어차피 집에 있기도 하고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무언가 성과 있는 일을 하면 더 기분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왜 어리석은 행동을 반복하는 건지... 난 나의 게으름을 쉽게 잊었던 것이었다.
방통대는 입학은 많이 하지만 졸업은 많이 하지 못한다는 설이 있을 정도였다. 바쁜 삶의 와중에 시간을 따로 내어 일정량의 공부를 잘 해내시는 분에겐 엄청 좋은 학교이지만 게으른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휴학을 했었는데... 나는 그게 기억이 나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다.
계획은 이랬다. 오전에 남편이 출근하면 수업을 두 시간 듣고, 점심을 챙겨 먹고, 간단히 집안일을 해두고 운동을 한 뒤에 저녁을 챙겨두고, 남편이 쉬는 동안 저녁에 두 시간 정도 더 공부하고... 하지만... 남편이 출근하면 하나씩 치우다 집안일을 하고, 그러면 점심 먹을 시간이고, 점심 먹고 소화를 위해 운동을 하고 와서 씻으면 졸려서 낮잠 좀 자고 나면 뒹굴거리나 저녁 준비하고, 저녁식사를 하면 TV는 왜 이렇게 재미있는 드라마가 많은지 한참 보다 자고... 참나... 양심이 있으면 나중에 애한테 공부하라고 잔소리는 안 해야 할 텐데... 양심은 있으려는지...
다행인지 불행인지 코로나로 인해 이번엔 시험 대신 리포트로 대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모두 대체되어 내가 듣는 과목은 5개. 총 10개의 리포트를 써야 하는 것이었다. 또 미루다 미루다... 하루에 한 개씩 리포트를 마무리 해 내야만 하는 스케줄에 다다르게 되었다. 부지런하게 미리미리 하는 분들... 정말 존경합니다. 포기하고 싶기도 했지만 적은 돈이라도 학교에 등록금을 냈으니 포기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덕분에 기대도 하지 않던 좋은 성적을 얻었다. 세상에...
덕분에 시험관 스트레스를 싹! 잊었다. 리포트 쓰느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문제는... 자연임신 시도를 하는 중이었는데... 그것도 신경을 못썼다. 쳇! 나 뭐한 거니? 그래도 매번 임신 실패를 경험하며 좌절하다가 좋은 성적을 받아보니 나도 잘하는 게 있구나 싶어서 땅바닥을 기던 자존감이 한층 업된 기분이었다.
아기를 갖게 되는 것도 눈에 수치로 보였으면 좋겠다. 이번에 노력 부족으로 F고요... 아... 이번엔 이런 부분이 아쉬어서 B입니다. 조금만 더 노력해 보세요. 이런 식으로... 리포트처럼 며칠까지 어떤 주제로 뭘 해야 할지 누가 딱딱 공지도 해주고, 어떤 방향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지 강의도 좀 해주고... 이상하려나? 성적만 잘 나와도 이렇게 기분이 좋은데, 아가가 찾아와 주면 더 좋겠지? 아님... 준비가 덜되 보여서 아직 못 오는 건가? 정답을 누가 알려주면 좋겠네... 밤새워 노력도 해 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