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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Jul 15. 2021

<엄마끼리 공감과 배려를>

얼마 전에 친한 여자 후배와 시내에서 차를 한잔 마신 적이 있어요. 


후배로 말하자면 능력 있는 워킹맘이며 친정도 아주 부잣집입니다. 하지만 이 후배는 돈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개념이 있는 후배지요. 염치도 있고요. 우리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던 곳은 서울에서 제일 큰 쇼핑몰 내에 있는 카페였어요. 아주 사람이 많고 붐비는 곳이었습니다. 서로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서 커피를 한 모금 먹고 큰소리로 이야기를 해야 했어요. 그때였어요. 옆자리에서 어떤 아이의 울음소리가 크게 났습니다. 카페에 손님들이 일제히 그곳을 보았죠. 


친정어머니로 보이는 할머니 한 분과 5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아이. 유모차에서 바둥거리는 둘째. 아이의 엄마는 울고 있는 첫째에게 계속 뭐라고 야단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내 사람들은 자기들 이야기를 한다고 시선을 돌렸지만 제 앞에 있는 후배는 분개를 하며 시선을 돌리지 않았어요. 


“왜 애를 울리는 거야…” 


후배의 불만은 사람 많은 곳에서 아이가 울게 ‘놔둔다 ‘는 것이 불만이 아니라 아이를 ‘왜 큰소리를 치면서 울게 만드냐 ‘에 포인트가 있었던 것이죠. 저는 사정이 있겠지 하면서 적당히 말하고 화제를 다시 돌리려고 했지만 후배는 금방 돌아오지 않았어요. 


엄마나 아빠나 인간입니다. 그래서 육아를 함에 있어서 부모로서의 가져야 할 여러 가지 의무들 보다는 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이 우선이 되겠죠. 그 감정들의 기준은 경험 일 것입니다. 내가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상황을 인지하고 판단하고 결론을 내게 된다는 뜻이에요. 이 후배는 일을 하면서 돌보미 어머님들 중에서도 유명하신 분을 고용했어요.  밤에 들어와서 만나는 하나밖에 없는 딸은 너무나도 소중했을 거예요. 야단 칠 일도 별로 없었을 테고요. 


제가 볼 때 아까 그 엄마는 상황이 이러해 보였습니다. 


‘365일 혼자 육아로 아이 둘을 키우는 와중에 친정에서 엄마가 오셨고, 그래도 같이 도와줄 분이 오셨으니 콧바람이라도 쐬려고 나왔는데 한창 뛰어놀고 싶은 큰 아들이 장난감 투정을 부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할머니까지 왔으니 더 했겠죠. 막무가내인 아들을 들쳐 엎고 밖으로 나갈 아빠도 없어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 짜증도 나고 감정적으로 고통스러웠겠죠. 아이에게 큰 소리를 쳤습니다.’


후배의 여유 있는 가정생활에 대해서 제가 편견을 가지고 싶진 않습니다. 저와 대화에서 편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야. 나도 아들내미 태어나기 전에는 운동도 꽤 한다면 했는데 하나 있는 놈 키우는데 힘들다. 어깨도 아프고 허리도 아프고 근데 여자가 보려면 엄청나겠더라” 


저는 이 이야기를 후배는 일까지 하니 ‘넌 정말 힘든데 고생한다 잘하고 있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꺼냈어요. 하지만 돌아온 후배의 답은 의외였죠. 


“에이.. 뭐가 힘들어. 그냥 청소기 한번 쓰윽 돌리고 그럼 되지..” 


저는 순간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랐어요. 


“그래.. 어.. 뭐.. 사람 스타일에 따라 또 육아를 어렵게 하는 사람도 있고 쉽게 하는 사람도 있지”라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후배는 아까 그 아이의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겁니다. 후배뿐 만이 아니라 우리는 단편적인 모습만 보고 상대를 비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도 같은 엄마라는 테두리 안에서 말이죠.  그것이 인간의 모습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서글픈 구석이 많습니다. 서로에게 말이라도 힘이 되어 주어야 하는데 말이죠. 


언젠가부터 우리는 워킹맘에 대해서 엄지를 추켜 세우며 칭송하는 분위기에 살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집에서 전업으로 살림만 하는 엄마들은 그냥 놀고 있는 사람 취급합니다. 또 다른 게 뭐가 있을까요? 아! 모유수유가 있겠네요. 모유가 좋은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주고 싶어도 나오지 않아서 못 주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방송에서 나오는 전문가들이며 모유수유를 몇 년 동안 하는 사람들은 주고 싶어도 못 주는 사람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모유수유를 못하는 엄마들은 귀찮아서 죄다 분유를 먹이는 것처럼 말을 하니까요. 


또 찾아봅시다. 자연 분만과 제왕절개가 있습니다. 자연분만으로 태어난 아이는 면역력도 좋아지고 이런저런 장점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이것 역시 하고 싶어도 산통만 죽어라 받다가 못하는 엄마들이 있습니다. 


자연분만에 모유수유를 못한 엄마들은 미디어에서 쏟아내는 정보들을 보고 혼자 상처를 받습니다. 큰 죄를 지은 것 같기도 하고요. 자연 분만도 못하고 모유도 못 줬는데 아이가 자주 아프면 더 눈치가 보입니다. 그것 때문인가?  여기서 더 나아가면 불임부부들에게는 아이가 있는 것조차 감사할 일이겠죠. 아이의 성별이 뭐가 중요하겠어요? 


공감과 배려가 있는 아이로 키우자고 육아책에서는 유행처럼 외치고 있어요. 공감과 배려가 있는 환경에서 자라나면 아이들에게 일부러 공감하고 배려하라며 가르치지 않아도 배우지 않을까요? 


저는 이런 글을 엄마들에게 공감을 얻고자 썼다기보다 아빠들이 함께 생각을 해 주셨으면 해서 씁니다. 저도 몰랐어요. 아내가 수술로 아이를 낳았고 모유수유를 못했습니다. 저도 총각시절에는 모유수유가 필수인지 알았고 수술은 아주 특이사항에서만 이뤄지는 것인지 알았어요.  


 우리 남편들까지 부담 주지 말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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