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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Jul 16. 2021

<영어와 자존감>

아이들에게 영어 이름이 필요한가?


여전히 병원에서 수유로 고군분투하고 있었지만 방법이 달리 없었다.


병원에서는 일주일 입원이 예정되어 있었고 며칠이 지나는 동안 여전히 우리 아들은 태명인 ‘남산이’로 불렀다. 아들은 우리가 남산도서관 바로 아래 동네인 서울 후암동에 살 때 태어났기 때문이다. 이름이 고민됐다. 나는 시나리오를 쓰면서도 등장인물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이제는 내 아이 이름을 지어 주자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늘 그렇지만 모르면 검색을 했다. 살면서 아기 이름 짓겠다고 구글에 물어볼 줄을 상상도 못 했다. 검색 결과는 다양했다. 작명소에서부터 한글 이름 짓기에 영어 이름까지. 특별한 소득이 없이 마우스 스크롤만 드르륵드르륵 하고 있었다. 불현듯 영어 이름은 어떻게 짓는 건지 궁금했다. 해당 사이트를 들어갔다.

그 사이트는 글로벌 시대에 좋은 뜻의 영어 이름을 태어나면서부터 지어주고 영어유치원이나 유학을 대비해서 글로벌한 아이로 키우자는 것이었다. 내용은 대충 이랬다. 알파벳 순으로 수많은 이름이 있고, 그중 인기 있는 이름, 요즘 유행하는 이름 등 카테고리를 나뉘었다. 그리고 이름을 클릭하면 해당 이름의 어원이 소개되어 있는 식이었다. 나는 영어 이름을 태어나면서부터 짓는 것이 어색했다. 약간 웃기기도 했고 이렇게까지 영어 이름을 준비해야 하나? 하는 의문도 생겼다. 결국 나는 혼자서 이름을 쥐어짜 내다가 작은 할아버님과 아버님의 지인을 통해 이름을 받았다. 10여 개의 이름 중에 선택했다. 사람들마다 이름은 부르기 쉬워야 하고 나이가 들어서도 어색하지 않은 이름이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오히려 반대로 생각했다. 이름은 조금 부르기 까다로워야 이름으로 이야기를 더 나눌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 이름은 ‘휘운’으로 정했다. 지금도 여전히 한 번에 알아듣는 사람은 없다. 휘윤, 희운, 희윤, 이운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럼 몇 번이고 다시 고쳐 알려줘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그래서 난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혹시 모르니까 여권을 미리 만들어 놓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여권을 만들면서 휘운에 대한 영어 철자를 검색하던 중 또 영어 이름 작명에 관한 사이트가 보였다.

**아래 글은 당시 메모장에 써 둔 글을 옮겨왔다**

<아이에게 영어 이름이 필요할까?>


얼마 전 TV 뉴스를 보니 영어 이름 작명이 유행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우리 이름들이 한자어로 되어 있어, 아이가 태어났을 때, 사주에 맞춰 작명을 하는 건 익히 들었지만, 영어도 그에 맞게 알파벳이 주는 기운과 의미를 담아서 짓는다고 했다. 그 가격이 엄청 비쌌다. 그러니까 조금 많이 빠른 부모를 두었다면 아기들은 돌이 지나기도 전에 영어 이름도 갖게 되는 것이다. 우리 아기 이름은 아버님과 작은 할아버님 그리고 아버님의 지인이 각각 지어 주신 이름 중에서 택했다.

문휘운.

나는 '휘'자를 영어로 어떻게 표기해야 되나 고민하던 중에 10여 년 전 캐나다에서 필름 스쿨을 다니던 시절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나는 캐나다인 친구와 한 팀이 되어 학교 지하 편집실에서 열심히 편집 중이었다. 그때, 학교 재학생이 아닌 파트너의 친구가 놀러 왔다. 그 백인 친구는 의례적으로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나는 '희주'라고 했다. 그 친구는 눈썹을 실룩거리더니 몇 번 더 발음을 물어보았다. 나는 ‘HEE JOO’라고 영어 철자까지 동원하며 알려주었다. 그 백인 친구는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물었다. 나는 내 이름의 한자어 뜻을 영어로 풀어서 의미를 설명해주었고, 그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많은 동양인 유학생을 만났지만 이렇게 이름을 알려주는 사람은 처음 봤어. 다들 영어 이름이었어.” 그 친구가 덧붙였다.

“여기 이 북미에는 수 천명의 데이비드가 있고 수 만 명의 제임스가 있지만... 이제 내가 아는 HEE JOO는 너 단 한 사람이야”

아.. 그 순간.. 난 뭔가 민망하고 닭살 돋았지만 감동적이었다. 요즘 다들 유치원을 가면 4살 이후면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초등학교에서도 영어수업을 듣는다고 한다. 난 4살부터 영어유치원에 보낼 형편이 될지도 궁금하지만 보낼 생각도 없다.

그럼 영어 이름은 왜 지어줄까?

아마도 원어민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부를 때 쉽게 기억하게 하려는 것일 거다. 나도 유학 가기 전에 주변에서 영어 이름 하나 만들어가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유학 가기 전 회화 학원을 다니면서 교포 출신 선생이 나에게 Ryan(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스필버그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그 라이언이다. 유학 초기에는 좀 사용했지만, 위에 있었던 일로 사용하지 않는다. 일본으로 유학 간다고 사람들이 창씨개명하라고 하진 않는다. 이것은 아마 우리가 얼마나 영어에 ‘쫄아’ 있는지 모여주는 결과이다.

영어권에서 태어나서 그 나라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교포 2세나 3세들이 영어 이름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오히려 한국어 이름을 가진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영어 선생님을 위해서? 아마 한국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더 기억하기 쉬울 것이다. 다만 발음이 힘들겠지. 그것은 그 영어 선생의 노력이 필요한 것이지 애써 학부모가 배려해 줄 일은 아니다. 그 아이들은 나처럼 할아버지나, 아버지 혹은 지인들이 정성 들여 좋은 뜻으로 짓고 그 이름들 중에 부모가 엄선해서 고르고 골라 선택한 이름 일 것이다. 그런 이름을 외국 선생의 입에서 불리게 하고 아이가 성장해서 외국으로 나가 더 불려지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쫄지 말자. 그리고 무턱대고 다들 짓는다고 짓지 말자. 내 아이의 이름이 현지 영어 선생이 발음하기 어려우면 몇 번이고 알려주면 좋겠다. 그리고 덧붙여서 이 아이의 이름이 무슨 뜻인지도 설명해주면 더 좋겠다.

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것은 이름과는 상관없이 영어라는 것에 우리가 얼마나 주눅이 들어 있는지에 대한 에피소드이다.

절친한 후배 중에 영어 선생님이 있다. 그 후배는 중국 베이징에서 한국식 입시 학원에서 수년간 영어 선생님을 했었다. 후배가 중국에 있을 때, 중국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이때 식사를 하면서 후배는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형, 중국에 오면 참 신기한 게 많아. 근데 그중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역사유적지도 아니고 사람들도 아니고 우리 한국 학생들이야”

나는 한국 학생들이 재미있다고 해서 의아했다.

“한국 애들이 왜?”

“우리 한국에서는 영어를 12년을 배워도 제대로 못 하잖아?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아무튼 12년을 배웠는데 말도 글도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쓸 줄도 모르는 건 정말 큰 문제거든.. 근데 여기 한국애들은 중국에 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6개월 정도면 중국말 엄청 잘해”

“대박인데. 중국어 어렵잖아?”

“그렇지. 그런데도 잘해. 신기해 그래서”

“이유가 있나?”

“내가 볼 때는 심리적인 요인이 있는 거 같아”

“심리적인 요인?”

“중국이 요즘 아무래 경제대국이 되고 해도 우리나라 애들 머릿속에는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 한국보다 훨씬 못하다’라는 우월감이 있어. 그래서 중국어를 하면서 문법 틀리는 거 신경 안 쓰고 사용하거든, 근데 영어는 어릴 때부터 영어가 중요 과목으로 분류가 돼서 못하면 안 되고, 그런 게 있잖아. 그래서 원어민 선생님한테 잘 맞춰 주고.”

“아… 그런 게 있네…”

“한마디로 그냥 언어를 부담 없이 배워야 느는데 어릴 때부터 쫄게 만들어 놔서 애들이 영어 앞에서 기가 죽어. 그냥 공부로만 받아들이거든. 중국어 하는 것처럼 마인드를 ‘내가 한국사람인데 중국어 좀 틀렸다고 어쩔 건데?’하는 마인드?”그런 게 좀 필요하지.

너무나 와닿는 말이었다. 특히 현직 영어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하니 더 그랬다. 앞서 소개한 나의 유학시절 에피소드와 중국 에피소드가 합쳐지면서 영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영어 이름이 좋아서 예뻐서 갖고 싶어서 만드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부모님들께서 영어 이름을 아이 스스로가 자라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준비한답시고 미리 만들어 주시는 것이라면 그리고 그것이 영어유치원이나 학원에서 준비 해오라는 요청에 의해서 만드는 것이라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볼 일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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