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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Jul 20. 2021

<누가 육아를 할 것인가>

아내의 출산휴가가 끝나고  가족은 서울 집으로 왔다.


서울 후암동 뒷골목에 위치한 3 빌라. 1층이었지만 주변에 집이 너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탓에 집은 반지하처럼 하루 종일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 종일 전등을 켜고 있어야 했고, 집에는  쿰쿰한 냄새가 났다. 그래도 서울에   있는 집이 있다는 것이 어딘가.

서울에 도착하고 나니 아내도 지치고 나도 지쳤다. 생후 100일도 안된 아기를 며칠 키웠다고 지쳤다는 표현이 웃기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참 힘들었다. 더 힘들었을 휘운이를 재우고 우리는 소파에 널 부러졌다. TV를 습관처럼 켜고 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나는 이제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지금 이 순간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나는 당시에 상당히 조급했다. 어서 빨리 시나리오를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재정비를 해서 감독으로 데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내 나이 30대 후반이었고 시나리오를 내면 그나마 한 번이라도 읽어봐 줄 마지막 나이라고 생각했다. 외국에는 작품만 괜찮다면 나이는 크게 문제 삼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나이가 들면 기존의 이름 있는 감독이 아니고는 ‘감 떨어졌다’라는 선입견을 갖고 시나리오를 읽어주지 않거나 그 나이 때까지 데뷔를 못했다면 기본적으로 재주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아내의 얼굴을 보았다. 아내는 초점 없는 얼굴로 TV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서 짐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정리를 하면서 계속 생각했다. 내 머리와 심장이 따로 계산법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냉정한 머리는 나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넌 고정 수입이 없잖아. 이제 아기도 있는데 안정을 택해야지. 네가 영화 일로 당장 월급을 최소 200만 원은 벌어와야 생활을 할 거 아니야. 뭐하는 짓이야. 그 나이가 될 때까지 못했으면 접어야지. 이제 갓 태어난 애까지 힘들게 할 셈이야?’

그리고 심장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 야. 무슨 소리야. 네가 지금 영화감독의 꿈을 가진 게 언제부터인데. 지금까지 안된 것은 운이 없어서였어. 정말 너처럼 쉬지 않고 자기 관리하면서, 꾸준히 아르바이트하면서 밤낮없이 시나리오 생각하고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쓴 게 다 헛수고가 된다고? 이건 아니잖아. 넌 할 수 있어.’

짐은 정리를 하고 있었지만 내 머릿속은 쉽게 정리가 되지 않았다. 나는 내 머리와 심장 사이 어딘가에서 불붙은 이 생각들을 그 중간 어딘가에서 합의 보기로 결정했다. 난 아내에게 다가갔다.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는 아내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당신 어때 갑자기 살림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아내의 얼굴에 고민이 가득해졌다. 장인어른은 아내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돌아가셨다. 오빠가 있었지만 당시에 두 분의 오빠가 하는 일도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아내는 일찍 일을 시작해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돈을 벌었고 그런 아내에게 미안했던 장모님은 아내에게 집안일을 일절 시키지 않으셨다.

반면, 나는 유학생활을 포함해서 영화 일을 서울에서 시작하며 자취생활을 이미 12년을 했다. 나도 자취 생활 중반까지는 집에서는 잠만 자는 노총각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게임기와 프라모델이 좁은 원룸에 전시되어 있고, 한쪽 벽면에는 잘 입지도 않는 옷들로 가득 차 있었다. 습관처럼 대부분의 끼니는 배달음식이거나 외식이었다. 그러던 내게 ‘생활’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있었다.

어느 일요일 오전, 매주 일요일은 일주일간 밀린 청소와 빨래를 하는 날이었다. 그날도 나는 프라모델에 쌓인 먼지를 먼지떨이로 조심히 털어내고 있었다. 그때 다른 프라모델을 건드렸고 바닥에 떨어져 박살이 났다. 나의 실수를 자책하며 파손된 조각을 살려보려고 애를 쓰던 중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이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또 다른 내가 유체이탈을 해서 내 방 천장에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경험을 했는데, 부끄러웠다.

돈도 잘 못 벌면서 먹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이 플라스틱 조각에 내 기분이 좌지우지되고 있었고, 유행 따라 산 옷들이 먼지 괴물이 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순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보물 같았던 프라모델을 다 내다 버렸고 안 입는 옷은 정리해서 아름다운 가게에 보내 버렸다. 일본에서 사 온 게임기는 부숴버렸다. 그리고 내 방을 정리를 하고 나니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밥이라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다시 시작했다. 혼자 살지만 해 먹어 봐야겠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고 따라 해 보면서 요령도 생겼다. 요리라는 것을 해보면서 일정하게 반복되는 패턴이 있다는 것을 대충 알게 됐다. 요리학원에 가면 이런 걸 왕창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요리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이왕 배우는 거 자겨증까지 따 보자 해서 도전했다. HRD를 통해서 지원금 카드를 발급받았고 자격증을 땄다. 자취생들을 위한 청소 팁이나 생활 팁들 메모해서 그대로 해보면서 생활이 전반적으로 달라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운동도 체계적으로 시작을 했고 담배도 끊게 된다.

이런 이유로 결혼했을 때 난 이미 살림과 정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습관이 된 상태였다. 이 글로 아내와 나의 살림 실력을 비교해서 아내를 깎아내리려는 것이 아니다. 수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한다. 그들도 남자들처럼 태어나면서 살림이나 육아 요리를 알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다. 남자들 중에서도 살림과 요리를 더 잘하는 사람이 있고 여자들 중에서도 그렇다. 이것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그냥 한 인간의 관심분야가 다른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자가 살림하고 육아하는 것이 여전히 당연시되는 부분이 많다. 이것은 비단 한국만은 아니다. 물론 여자가 수유도 해야 하고, 감수성과 공감 능력이 남성들에 비해서 뛰어나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육아에 조금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부분 역시 사람마다 다른 것이다.

나는 그래서 이렇게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렸다.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휘운이는 1년은 내가 키울게. 우리 형편에 도우미 아줌마를 부르는 것도 무리고.. 내가 나가서 돈을 벌면 뭐 벌기야 하겠지만 일정하지가 않아서 불안할 테고.. 그리고 살림하는 건 내가 낫잖아. 요리도 그렇고. 일단 서로가 자기가 잘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하지만 난 감독의 꿈은 이렇게 쉽게 내려 둘 순 없어. 그건 알아줬으면 해.”

대화의 내용의 정확하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기억이 나는 건 아니지만 얼추 저런 대화를 했다. 아내도 내심 안도하는 모습인 것 같았다. 나에게 괜찮겠냐고 물었다. 아기를 키운 지 이제 겨우 2개월이 좀 지났다. 그동안 아이를 키워온 선배나 친구들로부터 숱하게 많은 육아 에피소드를 들어왔다. 둘 다 앞으로 전쟁을 준비하는 사람들 같았다. 아내는 걱정스럽게 나를 봤다. 나는 '어떻게 되겠지’라는 말로 대화의 마침표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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