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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Aug 01. 2021

<무지한 아빠 또 사고 치다>

아빠가 육아를 하니 처음에는 정보를 어디서 얻어야 할지 몰랐다.


휘운이의 조부모님께서도 아이를 키워 보신지 40년이나 지나 기억이 또렷하지 않았다. 나는 주부들이 많이 다니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맘 카페도 가보고 인테리어 관련 사이트도 가보고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왜냐하면 휘운이는 이제 이유식을  시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출생 4개월 중반 정도에 이유식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많이 부족했던 것 같다. 첫 이유식은 쌀을 갈아서 만든 쌀가루로 만들었다. 입을 오물오물하는 휘운이에게 한 숟갈을 주니 너무 잘 먹었다. 백색의 하얀 쌀가루는 그야말로 설탕가루 같았을 것이다. 휘운이는 준비한 40미리를 다 먹고 계속 입을 오물거렸다. 첫 이유식에 휘운이는 100미리 정도를 먹었다.

생후 2개월 때 수유 후에 트림을 시키지 않고 재웠다가 크게 토하는 모습을 본 후로는 철저히 트림을 시켰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분명한 트림 소리가 들릴 정도로 오래도록 등을 두르렸다. 그런데 너무 많은 양을 한꺼번에 먹인 탓일까. 휘운이의 얼굴이 점점 파랗게 변하는 것 같았다. 입술은 수영장에 오래 놀면 나타나는 푸른 입술처럼 되어갔다.

얼굴의 표정과 눈동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둔해졌다. 나는 점점 당황스러웠다. 어느 순간 휘운이는 호흡이 불규칙하게 변하면서 얼굴의 혈색이 더 좋지 않게 변하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 병원까지는 시간이 부족해 보였다. 그렇다고 구급차를 부르는 것도 이미 늦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휘운이의 사지를 주물렀다. 배도 주무르고 온몸을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크게 달라진 것 없었다. 무서웠다.

5분 정도 사이에 휘운이는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때 또 한의사의 말이 떠올랐다. 앞에서 소개했던 한의사가 그때도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이야기했다. 마치 이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한 듯, 그날 강의 내용이 열 감기에 이어 현실화되어 가고 있었다. 한의사는 이유식을 시작하면 체하는 아기들이 있다. 손쓸 겨를이 없으면 어른 손가락 따듯이 따라고 했다. 이 방법은 양의, 즉 일반 소아과에서 절대 하지 말라고 하는 행위다. 면역력이 약한 아기에서 2차 감염을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소화력이 좋지 못해서 집에 사혈 침이 2개나 있고 소독 솜도 항상 구비되어 있었다. 그나마 천만다행이었다.

그 찰나의 시간에 방법은 이것밖에 없는 거 같았다. 나 같은 경우에는 따면 즉각 반응이 왔다. 나는 휘운이가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를 닮았기를 바라며 휘운이의 손가락을 소독했다. 여러 번 닦았다. 침도 새로운 침을 꺼내 여러 번 닦았다. 사실 지금 여기까지 쓰고 있는 순간에도 이 글을 누군가 본다면 무슨 사이비 침쟁이 글처럼 보게 되지 않을까 겁이 난다. 나는 휘운이의 양손의 엄지 손가락을 한 번씩 찔렀다. 휘운이는 울지 않았다. 그만큼 정신이 없어 보였다. 피는 꽤 많이 나왔다. 양손을 소독 솜으로 잘 닦고 후시딘을 발라 주었다.

거짓말 같았다. 1분도 안 돼서 혈색이 돌아오고 눈동자의 움직임도 돌아왔다. 그리고 손가락 통증이 뒤늦게 느껴진 것인지 아니면 속이 편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천천히 찡얼대며 울기 시작했다. 그런 휘운이를 안고 나도 얼마나 안도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는지 모른다. 우리 둘 다 진정되고 나서 평소 다니던 동네 소아과에 갔다. 별 이상은 없고 소아과 의사로서 사혈침을 찌르는 행위는 하지 말라고 당부하셨다. 하지만 그 순간 그 누구도 휘운이의 얼굴을 보면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유식도 참 못 만들었다. 무슨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당시에도 서점에는 이유식 레시피에 대한 책이 있었다. 한 권도 사보지 않고 인터넷에서 두서없이 대충 찾아보고 만들었다. 단계별로 시기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아기 이유식을 만들면서 내 위주로 만들었다. 둘째 규리를 키울 때는 소유진 씨가 쓴 이유식 책으로 똑같이는 아니지만 최대한 단계별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만들어 주었다.

만약 나중에 규리가 둘째의 서러움에 대해서 표현하는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우리 집은 아들/ 구분 짓지 않겠지만, 어쨌든 , 장난감, 옷가지  많은 것을 물려받을 것이다. 규리는 자기는  것이 없다고 투정을 부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빠가 베타테스터 같이 좋지 않은 육아 방식을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규리는 월등히 발전한 아빠가 키웠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러니 둘째는 둘째대로 좋은 것을 누린 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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