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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Jul 24. 2021

<공간의 중요성>


휘운이가 태어났을 때 살던 집은 결혼하고 나서 두 번째 집이었다. 


첫 번째 집은 등기부등본을 봤을 때 74년도 지어진 집이었다. 계약기간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이사를 한 이유는 윗집에 수도관이 터졌다. 그것도 화장실 관이었다. 검은색 물이 천장과 벽을 타고 흘러내렸다. 스며드는 정도가 아니라 흘렀다. 천장을 고쳐 놓으니 바닥에 보일러 온수관이 터졌다. 오래된 집의 문제가 우리가 사는 동안 한꺼번에 생겼다. 서둘러 이사를 했다. 두 번째 집에서는 윗집 거실 온수관이 터졌다. 우리 집 거실 천장은 물이 스며서 한 방울 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세숫대야를 받혀 놓았다. 휘운이가 이제 막 100일 되었던 시기다. 공사를 시작했고 도배까지 3일~4일이 걸린다고 했다. 100일짜리 아기가 있는 집 거실이 먼지와 공사 자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나는 아침이면 아내가 출근하고 난 뒤 휘운이와 밖으로 나갔다. 휘운이를 안고 남산, 후암동, 남영동, 이태원, 청파동 등지를 걷고 걸었다. 오래 걷다 보니까 유모차가 오히려 짐이 되었다. 식당에 들어갈 때도 버스를 탈 때도, 공중화장실에 갈 때도 그랬다. 이런 환경에서는 많은 아이들은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저상 버스가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한 번은 내가 혼자서 버스를 타고 있는데 아이 셋을 데리고 버스를 타려는 어머님을 본 적이 있다. 첫째는 유치원생으로 보였고 둘째는 3살 정도 되어 보였고 막내는 아기띠로 엄마에게 안겨 있었다. 저상 버스가 아닌 버스에 아기띠를 안고 유모차를 들고서는 도저히 탈 수 없을 거 같았다. 저절로 몸이 움직여졌다. 남 일이 아니었다. 유모차를 들어 버스로 들이고 애들을 잡아 주었다. 그동안 어머니는 버스요금을 치르고 감사하다는 말을 연거푸 하셨다. 버스가 이동하니 유모차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승객들의 발과 발을 지나치며 멈칫거렸다. 다행히 그 어머님은 나보다 먼저 내렸다. 아기들과 유모차를 내려드리는데 도움을 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그 버스 안에서의 공기는 차가웠다. 그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자리를 비켜주는 젊은 아가씨가 한 명 있었을 뿐 다 남의 일이었다. 몸은 움직이지 않았지만 시선은 그 어머니와 아이들에게 꽂혀 있었다. 어쩌면 좋을까? 나도 솔직히 모르겠다. 저상 버스를 늘리고 휠체어만이 아니라 유모차도 버스 내 안전장치에 고정시킬 수 있는 것? 글쎄다 이 모든 것들도 사람들의 인식 변화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 버스 안에서의 차가운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다.


다행히 휘운이 가 이유식을 먹을 시기가 아니어서 가방에 분유, 젖병과 보온병에 따뜻한 물만 넣어 다니면 몇 시간도 괜찮았다. 한 번은 내가 점심을 먹기 위해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햄버거 가게 들어갔다. 갑자기 배가 살살 아파왔다. 큰 볼일을 봐야 할 거 같은데 휘운이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다.(요즘에는 대형 몰에는 좌변기에도 아기를 앉힐 수 있는 거치대가 있는 것을 가끔 본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고 아주머니 세 분이 콜라 하나씩 시켜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나는 다가가서 휘운이를 잠시만 봐 달라고 부탁하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나는 신혼집에서부터 두 번째 집을 거쳐오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우리 가족만의 집을 상상하곤 한다. 이것은 현재 진행형이다. 현관에 들어와서 방과 거실의 분위기는 어떻고, 화장실은, 방은 이랬으면 좋겠다. 온 집이 공사판이 되었을 때, 태어나 처음으로 공간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던 것 같다. 삶의 공간. 집. 환경. 


집은 꼭 지어보고 싶다. 아, 물론 내가 직접 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땅을 사서 내가 수년간 머릿속으로만 가지고 있던 상상의 집을 전문가의 손을 빌어 설계해서 우리만의 집을 짓고 싶다는 뜻이다. 자기 집을 짓고 사는 분들이 모여 있는 카페나 커뮤니티에서 눈팅만 한다. 선배들의 경험을 일단 눈과 머리로만 보고 느끼고 있다. 바람이라고 해야 할지, 목표라고 해야 할지. 아이들이 초등학교 졸업 전에는 꼭 집을 짓고 싶다.


감가상각 되는 것들 중에 제일 말이 안 되는 것이 집값이다. 나도 집값에 따라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할 것이다. 


공사가 마무리가 되고 어쨌거나 그 덕에 나는 휘운이와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었다. 집에서 오도 가도 못한 고양이도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겠지. 휘운이는 100일을 기점으로 아파 보기도 하고 막혔던 눈물샘도 뚫리고 하나씩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그건 나와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고양이들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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