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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Aug 17. 2021

<집에서 노는 아빠>


나는  시기에 주변 친구들, 특히 남자 친구들에게서 부러움을 샀다.


내가 원하지 않는 부러움이었다. ‘마누라가 벌어  주는 돈으로 집에서 노는 친구라는 부러움이다.  표현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적이 없는가? 그렇다. 우리 주변에 주부님들이 남자들에게 듣는 핀잔이다. ‘당신은 맨날 집에 있으면서 뭐 하는 거야?’ 이런  어디선가 들어보지 않았나? 핀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말의 주는 충격이 상당히 크다. 영화 쪽에 같이  담았던 어느 감독님은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드디어 네가 모든 남자들의 워너비, 셔터맨을 실현했구나 축하한다.”또 어떤 사람들은

~ 그러면 형수님이 형님 서포트를   주시는군요.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네요~”

누가 누구를 서포트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성별만 바꿔보자. 보통의 가정처럼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육아와 살림을 한다. 그런데  여자가 꿈을 위해서 한 달에  번씩 공부를 하거나 작품 활동 같은  한다고 치자.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 틈틈이 개인작업을 한다. 이런 경우라면 아내가 남편 내조도 잘하면서 자기 꿈도 실현하는  아닌가? 그런데 나는  다들 놀고먹는 것으로 생각을 할까? 미치고 팔짝 뛰겠다.

그런 소리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육아를  해봐서 하는 소리다. 이해가 되지만 마음에 꽂히는 비수는  두 개가 아니다. 그들은 내가 설렁설렁 아기를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글을 쓰며 노는  안다. 이런 인식이  사회에 가득  있다. 인식이  모양이니 방송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는 육아하는 엄마를 경험해본답시고 아빠들에게 24시간 육아를 며칠 경험하게 해 놓고는 그제야 엄마들의 고통을 이해하겠다는 말을 한다.  이제야. 굳이  아내의 역할을  보고 나서야 이해를 하는가? 하지만,  또한 해보고 나서 알게 되지 않았나. 나를 비롯한 우리 아들들은  이렇게 늦을까? 우리는 이미 우리들의 어머니를 통해서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원인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들은 당신의 아버지 그리고  위의 아버지대를 이어 아무런 물음표 없이 학습되어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직접 경험해야 느끼는 것은 인간의 한계인가 보다. 나의 동성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가 되면 나는 친구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회사 이야기, 승진과  이야기, 비트코인 이야기를 하고 나는 아기의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중에  친구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거들어준다고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친구는 회사에서 여직원들이 육아 휴직을 하면 그렇게 짜증이 났었다고 한다.  회사도 아니라 인력이 부족한데 바쁠 ,  여직원  명씩 육아 휴직이 생겨서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친구가 자기 아내가 임신을 해서 휴직을 내니까 그제야 ‘ 육아휴직이 필요하구나라고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고통은 나눠 가져야 한다. 이제는 그 고통이 가정에서만 나눠야 하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사회가 다 함께 이해하고 분담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는 남자 후배들이 나에게 같은 말을 한다. ‘형님처럼 집에서 쉬면서 글 쓰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래 제발 그렇게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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