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시기에 주변 친구들, 특히 남자 친구들에게서 부러움을 샀다.
내가 원하지 않는 부러움이었다. ‘마누라가 벌어 다 주는 돈으로 집에서 노는 친구’라는 부러움이다. 이 표현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적이 없는가? 그렇다. 우리 주변에 주부님들이 남자들에게 듣는 핀잔이다. ‘당신은 맨날 집에 있으면서 뭐 하는 거야?’ 이런 말 어디선가 들어보지 않았나? 핀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엔 그 말의 주는 충격이 상당히 크다. 영화 쪽에 같이 몸 담았던 어느 감독님은 나에게 이런 말도 했다.
“드디어 네가 모든 남자들의 워너비, 셔터맨을 실현했구나 축하한다.”또 어떤 사람들은
“아~ 그러면 형수님이 형님 서포트를 다 해 주시는군요. 역시 믿는 구석이 있었네요~”
누가 누구를 서포트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성별만 바꿔보자. 보통의 가정처럼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육아와 살림을 한다. 그런데 그 여자가 꿈을 위해서 한 달에 한 번씩 공부를 하거나 작품 활동 같은 걸 한다고 치자. 아이들을 재우고 밤에 틈틈이 개인작업을 한다. 이런 경우라면 아내가 남편 내조도 잘하면서 자기 꿈도 실현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나는 왜 다들 놀고먹는 것으로 생각을 할까? 미치고 팔짝 뛰겠다.
그런 소리를 하는 이유는 아마도 육아를 안 해봐서 하는 소리다. 이해가 되지만 마음에 꽂히는 비수는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들은 내가 설렁설렁 아기를 보면서 내가 하고 싶은 글을 쓰며 노는 줄 안다. 이런 인식이 온 사회에 가득 차 있다. 인식이 이 모양이니 방송을 비롯한 각종 미디어에서는 육아하는 엄마를 경험해본답시고 아빠들에게 24시간 육아를 며칠 경험하게 해 놓고는 그제야 엄마들의 고통을 이해하겠다는 말을 한다. 왜 이제야. 굳이 내 아내의 역할을 해 보고 나서야 이해를 하는가? 하지만, 나 또한 해보고 나서 알게 되지 않았나. 나를 비롯한 우리 아들들은 왜 이렇게 늦을까? 우리는 이미 우리들의 어머니를 통해서 알고 있지 않은가? 나는 이 원인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에서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들은 당신의 아버지 그리고 그 위의 아버지… 대를 이어 아무런 물음표 없이 학습되어 온 환경 탓도 있을 것이다.
직접 경험해야 느끼는 것은 인간의 한계인가 보다. 나의 동성 친구들과 만나는 자리가 되면 나는 친구들과 말이 통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회사 이야기, 승진과 차 이야기, 비트코인 이야기를 하고 나는 아기의 성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중에 한 친구가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거들어준다고 한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친구는 회사에서 여직원들이 육아 휴직을 하면 그렇게 짜증이 났었다고 한다. 큰 회사도 아니라 인력이 부족한데 바쁠 때, 꼭 여직원 한 명씩 육아 휴직이 생겨서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랬던 그 친구가 자기 아내가 임신을 해서 휴직을 내니까 그제야 ‘아 육아휴직이 필요하구나’라고 알게 되었다고 한다.
고통은 나눠 가져야 한다. 이제는 그 고통이 가정에서만 나눠야 하는 문제가 아니게 되었다. 사회가 다 함께 이해하고 분담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는 남자 후배들이 나에게 같은 말을 한다. ‘형님처럼 집에서 쉬면서 글 쓰고 그렇게 살고 싶어요.’
그래 제발 그렇게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