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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감독 Jul 15. 2021



나는 핸드폰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 홈 버튼을 눌러 화면의 시계를 확인하기를 반복했다. 머릿속은 아주 복잡했고 전화를 걸어 무슨 말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컴퓨터 모니터에 저장된 회사 대표의 전화번호를 몇 번을 확인을 했는지 모르겠다. 매번 전화를 해서 내가 보낸 결과물이 어땠는지 물어보는 것은 마치 내가 내 입으로 내가 얼마나 잘 생겨 보이는지 물어보는 것 같았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물어봐야 했다. 신호음이 몇 번 울리지 않았는데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 통화를 하고 있는 내 모습이 유체이탈이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것 같았다. 머리를 연신 긁적이고 나도 모르게 목은 굽신굽신. 수화기 넘어 상대에게 예의가 바르다. 


통화를 했던 대표와 시내에 위치한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다. 사실 나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회사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쩌면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내 머릿속에는 온통 일을 시작하면 어떤 것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계획을 다 세워 두고 있었다. 흥분됐다. 하지만 이런 들뜬 나의 기분은 카페로 들어오는 대표의 얼굴을 보면서 점점 사라지기 시작했다. 


꽤 긴 대화가 오고 갔다. 어떤 뇌 과학 책에서 이런 내용을 본 적이 있다. 사람은 자기가 기억하고 싶지 않거나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정보는 삭제한다고 한다. 아마도 그래서일까?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대화의 내용은 한 문장만 남아있다.


‘감독님, 이 시나리오로 저희 회사에서 좀 더 개발해서 제작하고 싶으신 거 같은데 힘들 것 같아요. 시나리오의 글이 그렇게 썩 좋은 글이 아니고요. 저희 회사에서는 진행하기 좀.. 그런 것 같습니다.’


피가 거꾸로 도는 것 같았다. 기분이 좋지 않은 것 이상으로 불쾌하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나는 그가 적당히 급한 척하며 카페로 들어오는 모습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금방 일어나 부스스하고 떡 진 머리. 지금 만나려는 사람의 중요도를 여실히 나타내는 그의 태도. 시나리오가 거절되었다는 것도 기분이 나빴지만 이미 그가 들어오는 순간, 답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집에 와서 그가 되돌려준 시나리오 뭉치를 책상에 던져 놓고 책상에 앉아서 이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했다. 그리고 한 번에 모든 것을 걸었던 내가 바보 같았다. 나는 조금 전에 거절당한 시나리오를 쓰는데 1년 6개월이 걸렸고 5분 만에 거절당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난 총체적 트러블에 빠졌다. 어디서부터 냉정을 찾아야 할지 몰랐다. 나와 내 새끼가 다 함께 무시당했다는 생각이 압도적이었다. 나는 우선 컴퓨터를 켜서 메모장을 열었다. 그가 나에게 뱉었던 말들을 번호를 매기며 나열했다. 10여 가지의 평이 나열됐다. 마치 사랑했던 연인에게 거절을 당하고 ‘넌 이게 문제야’라며 일목요연하게 나열된 이별의 이유 같았다. 정리된 문장들을 도저히 볼 수가 없었다. 컴퓨터를 꺼버리고 아내에게 말을 할지 말지… 또 고민이 됐다. 고민과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해결 방법도 없이 무수히 반복되는 불안이라는 뫼비우스의 띠를 달리고 있었다.


나는 잠귀가 밝은 탓도 있겠지만 새벽에 자주 깬다. 그래서 꿈을 잘 꾸지 않는다. 불안의 뫼비우스 띠를 달려서 피곤했는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는 산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산길이라고는 했지만 큰 산에 잘 정리되어 자동차도 다닐 수 있을 만큼 넓은 흙 길이었다. 오르막길을 터벅터벅 걸어가고 있는데 경사 제일 꼭대기에 누군가 서 있다. 길 가운데 우산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다.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무심히 길을 계속 오르고 있었다. 점점 길 위에 ‘그것’과 가까워지자 그것이 큰 뱀이라는 것을 알았다. 뱀이긴 했는데 마치 사람처럼 허리를 곧추 세우고 손은 없으면서 마치 손으로 우산을 들고 있는 모양으로 큰 연잎 같은 잎을 머리 위로 들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 자리에 멈춰 섰다. 돌아갈 길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디에도 돌아갈 길은 없었다. 뱀이 나를 돌아봤다. 허리를 사람처럼 세운 채 나에게 기어 왔다. 천천히. 나는 뒷걸음질 쳤다. 뱀은 속도를 내 점점 빨리 다가왔다. 그리고 일 순간 뱀은 나에게 달려들었다. 나는 겨우 몸을 피해 도망쳤다. 


다시 주변을 돌아보았다. 주변은 빽빽한 숲이었고 아무리 찾아도 길은 없었다. 나는 살금살금 길 가장자리로 몰래 지나가려고 했다. 다시 뱀은 나를 발견했고 나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에는 난 피하지 못하고 물렸다. 손목을 물렀는데 피가 났다. 그렇게 뱀에게 잡혔고 난 잠에서 깼다. 꿈이 너무 생생했다. 한 번도 이렇게 생생한 꿈을 꾼 적이 없었다. 


저녁, 아내가 퇴근하고 우리는 저녁을 함께 먹고 있었다. 아내는 그날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고, 나는 그날 알바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잠깐 잊고 있었던 전날 밤 꿈 이야기도 했다. 아내는 어디서 들은 적이 있는데 뱀이 돈을 상징한다고 로또라도 사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웃었다. 나의 인생에 그런 요행은 한 번도 작용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TV를 보며 밥을 계속 먹었다. 그때 불현듯 내 머릿속에 한 생각이 떠올랐다. 


태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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