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야 한다는 강박
2010년 개봉한 영화 인셉션의 장면들이 아직도 문득문득 생각이 나곤 한다.
그때에는 좋은 영화, 좋은 감독에 대한 자각이 별로 없을 때여서,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회사 직원들과 좀 친해져 볼 겸 신작이나 한편 보자며 영화관으로 향했을 뿐이었다.
큰 고민 없이 어릴 적 좋아했던 디카프리오가 주인공이라는 이유 때문에 선택한 영화였는데
이게 웬걸,
영화 중반쯤에는 스크린에 빨려 들어가듯 앞으로 몸이 쏟아지는 날 옆사람이 붙잡았을 정도로 몰입하게 되었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대단한 연출력에 압도당했기도 했지만,
나를 송두리째 흔들었던 건 마리옹 꼬띠아르 (극 중 '멜')를 죽음으로 몰고 간 무의식 속 깊은 믿음
'이 세계를 떠나야 한다.'
는 강력한 메시지와 그녀의 행동들이었다.
그 이전에도 오랫동안 살아온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나 다양한 경험과 모험을 겪어내는 소위 '성장 영화'들은 많았었지만, 인셉션 속의 멜과 같이 몽환의 세계를 갈망하고 늘 강박에 시달리는 캐릭터를 나는 그때 처음 보았고 내가 너무 크게 공감하고 있음에 놀라기도 했었다.
그러고 보면 나는 늘 내가 사는 세상을 떠나고 싶다, 떠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왔던 것 같다.
지금, 여기에서 살고 있는 것이 불행하고 슬플 때도 있었고 벅차게 행복한 순간들도 많았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나는 여기를 곧 떠날 사람, 떠나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역마살'이 끼인 것처럼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살 운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철저하게 정적이며 굴 속을 파고들듯 집순이 생활이 가장 적성에 맞는 사람이기에.
나의 이상한 강박은 늘 내가 이곳이 아닌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이라고 여겨 왔다는 것이며, 스스로를 너무 특별한 존재로 생각하는 정신이상자의 궤변이 될까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었다. 나조차도 이러한 생각들이 잠깐 떠올랐다가 곧 흩어지고 부스러져서 사라지는 시시한 망상이라고만 생각해 왔다.
놀란 감독의 대단한 상상력 덕분에 '무의식의 팽이'에 갇힌 현실 도피자의 이야기가 실체를 갖고 다가오게 되었다. 어떤 그림을 그리더라도 그 속에는 나의 유토피아를 담아야겠다는 생각을 이 영화를 떠올리며 하게 되었다. 또 이후로 마리옹 꼬뛰아르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다는 것까지.
나의 유토피아는 내 꿈속에 존재하겠지. 매일 밤 나는 그곳에 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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